다시 걷는 상월결사 "나부터 평화가 되자"
상월결사, 고운사서 ‘마음방생 평화순례’ 인도순례 이후 7개월만 4000여 사부대중 함께 화엄일승법계도 걸으며 부처님 가르침 되새기고 차별이 없는 세상 오기를 전쟁 없는 세계평화 기원
1년 만이었다. 내 마음부터 평화를 이뤄 세상의 평화를 이루겠다는 목적으로 진행해왔던 ‘마음방생 평화순례’가 다시 걸음을 내딛었다. 지난해 10월 구례 화엄사 순례 이후 지난 2월부터 3월까지 43일간 대장정을 펼친 ‘인도순례’라는 대작불사를 수행하느라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었다.
상월결사(회주 자승스님)는 10월28일 올해 첫 마음방생 평화순례 장소로 의성 고운사를 선택했다. 조계종 제16교구본사 고운사는 길이 아름다운 사찰이다. 고운사길은 사시사철 계절의 변화를 자연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특히 최치원문학관에서 시작해 고운사 경내로 이어지는 2km 길은 ‘천년숲길’이라는 이름을 붙인 특별함이 있다. 맨발로 걸을 수 있을 정도로 고운사 스님들이 정성 들여 황톳길을 조성했다.
가을이 한참 무르익고 있는 이날 오전 최치원문학관에 사부대중이 모여 길을 마주했다. 무려 4000여명. 평소 2배가 넘는 인원이다. 지난 1년간 잠시 쉬었던 평화순례에 대한 목마름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날 순례에는 상월결사 회주 자승스님을 비롯해 조계종 원로의원 동명스님, 제16교구본사 고운사 회주 호성스님, 주지 등운스님, 동국대학교 이사장 돈관스님, 조계종 교육원장 범해스님, 포교원장 선업스님, 총무원 총무부장 성화스님, 제2교구본사 주지 성효스님, 제9교구본사 동화사 주지 능종스님, 제25교구본사 봉선사 주지 호산스님, 재정분과위원장 설암스님을 비롯해 35명의 중앙종회의원이 참석했다.
이와 함께 서울 조계사 주지 원명스님, 봉은사 주지 원명스님, 주윤식 조계종 중앙신도회장, 윤재웅 동국대 총장, 채석래 동국대의료원장, 장정화 대한불교청년회장, 이달희 경상북도 경제부지사, 최주원 경상북도경찰청장, 김주수 의성군수, 김광호 의성군의회 의장, 장근호 의성경찰서장 등이 참석했다.
오전10시 입재식이 열렸다. 상월결사 회주 자승스님은 동국대 이사장 돈관스님이 대독한 인사말씀에서 “마음의 방생으로 세상의 평화를 실현하는 신행문화의 공덕과 4년여 동안 상월결사 수행정진이 쌓아온 신심과 원력을 결집해 한국불교의 활력을 불어넣고자 한다”며 “특히 상월결사는 가장 가까운 미래인 대학생 불자들이 한국불교의 미래를 밝히는 주역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최우선의 과제로 삼아 지역 대학마다의 불교동아리를 활성화하고 교구본사를 중심으로 실제적인 지원을 추진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스님은 “대학생 전법을 통한 한국불교의 미래는 오늘 이 자리와 같은 신행문화의 진실한 참여에 기초하고 있다”며 “내 안에서 생명이 자유로울 때, 내 앞의 생명을 키워내고 평화롭게 지켜줄 수 있다. 마음의 방생을 바탕으로 하는 평화순례가 지대한 원력과 실천으로 이어지고, 뭇 생명과 함께 진정한 평화가 어우러져 시대에 맞는 수행과 신행문화가 정착되어 나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회주 자승스님은 고운사 주지 등운스님에게 상월결사 죽비를 전달하며 항상 정진할 것을 당부했다. 고운사 주지 등운스님은 “먼 곳까지 찾아주신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며 “고운사 숲길을 걸으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기를 기원한다. 우리 교구 본말사 스님들도 부처님 법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환영했다.
입재식은 4000여 사부대중이 각자의 마음에 평온을 얻어 세상의 평화를 이루겠다는 발원문을 낭독하면서 본격 시작됐다. “내 마음의 평온으로 온 세상에 평화가 깃들기를 발원합니다. 내가 나의 마음을 맞이하는 순간이 대자유이고 방생이며 평화를 나누는 순례의 시작임을 알아가겠나이다.”
현재 세상의 혼란을 걱정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전쟁은 또 다른 전쟁의 씨앗이라는 부처님 말씀을 잊고 존엄한 생명을 위협하는 폭력이 평화의 땅을 휩쓸고 있습니다.…우리는 함께하는 인류애로써 생명을 키워내는 자애로운 대지 위에서 그들의 고통 곁으로 묵묵히 걸어가고자 합니다.”
아름다운 길을 마주했지만 사부대중은 발원문을 통해 나의 한 걸음 한 걸음의 의미를 무겁게 되새겼다. 입재식을 마친 사부대중이 내딛을 걸음을 더욱 의미 있게 하는 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최치원문학관 공원의 ‘법계도림’이 출발점이었다. 법계도림은 말 그대로 법계도의 숲이다. 신라 의상스님이 화엄사상의 요체를 7언 30구 210자 게송으로 정리한 법성게를 도형으로 표상화한 것이 법계도, 즉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다.
고운사 법계도림을 알리는 표지판에는 이런 글이 써있다. ‘막힌 것 같은데 트이고, 트인 것 같은데 막히고 행복하다 싶으면 안 좋은 일이 생기는 아주 묘한 것이 인생의 길 아닙니까? 멈추지 말고, 욕심내지 말고, 누구를 의식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비우면 길이 열립니다. 같이 나누는 기쁨, 같이 행복하는 기쁨, 같이 걸어가는 기쁨을 이 법계도림을 거닐면서 맘껏 느껴보세요.’
사부대중은 두 손을 모으고 마음속으로 가만히 부처님 가르침을 새기며 법계도를 조용히 걸어 돌았다. 돌다 돌아 나오다 보면 눈앞에 비로자나 부처님이 나타났다. 고운사 길은 길지는 않았지만 그 여운은 짧지 않았다. 500m 정도의 법계도를 돌아 부처님을 만난 사부대중은 2km 천년숲길을 거쳐 고운사로 향했다.
광주광역시에서 순례를 위해 찾은 이미숙(46, 광주 정광중・고 불교어머니회)씨는 “마음방생 평화순례는 처음 참석했다”며 “평소 걷기순례에 관심이 많았는데 많은 분과 함께 걷다 보니 좋았고 마음을 내려놓은 수행이 됐다”고 말했다.
이상훈 한국교수불자연합회장도 평화순례는 처음이다. 이 회장은 “비록 이번 걷기 순례 거리는 길지 않았지만 새벽 4시 출발해 고운사로 오기까지 거쳐 간 길이 전부 평화순례의 길이라고 생각했다”며 “마음방생의 길을 걸으면서 대학생과 청년들도 대오를 이뤄 앞으로 함께하기를 기원했다”고 말했다.
내 마음의 평화를 찾아 차분히 걸음을 내딛던 사부대중은 고운사 대웅보전에 도달해 부처님을 또 한 번 친견했다. 고운사는 상월결사 순례객에게 점심공양과 편의를 제공했다.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진 사부대중은 다시 갔던 길을 되돌아갔다. 총 4.5km의 마음방생 평화순례길은 법계도림에서 시작해 법계도림에서 멈췄다. 상월결사 고운사 마음방생 평화순례의 회향은 각 사찰 주지 스님들이 신도들의 마음 방생을 축원하는 의식을 올리며 마무리됐다.
한편 고운사는 평화순례가 진행된 10월28일 시작해 29일까지 이틀간 ‘제2회 최치원문화제’를 열었다. 고운사 사찰 명칭의 유래로 일컬어지는 신라 명문가 고운 최치원의 유불도 사상을 이어받아 ‘통합과 상생’을 주제로 열린다. 박세리 전 여자골프 국가대표팀 감독의 인백기천(人百己千) 토크콘서트, 어린이 독서 골든벨, 음악회, 학술대회, 문화예술제 등 갖가지 공연 및 행사와 함께 다양한 체험 및 상설행사가 경내 곳곳에서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