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월결사 인도순례 42일차] 요기 총리 "부처님 열반지에 부처님 이름으로 국제대학 설립"
UP주 총리 등 정부 관계자 순례단 대대적 환영 인도 일정 모두 마치고 한국 조계사로 향하다
우타르 프라데시(UP) 주 요기 아디티아나트 총리가 주관하는 환영 인사가 열렸다. 상월결사 인도순례 42일 차인 3월22일 오전 총도감 호산스님을 비롯해 순례단 40여 명이 유피주 수도인 럭낙우의 불교 공원에 자리한 사원을 방문해 총리를 비롯한 문화부 장관 등 주 정부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환영행사가 열렸다. 이 공원은 주정부가 조성하고 관리하는 유일한 불교 공원이다.
공원 입구에는 한글로 상월결사 인도 순례를 축하하는 현수막이 내걸렸으며 불교기를 든 인도 티베트 네팔 등에서 온 스님 불교신자들이 순례단을 맞이했다.
환영행사에는 총리 자비르 싱 문화부 장관, 국제불교사무총장 린포체, 마단뜨 산뜨 국제불교연구소 원장 등 주 정부 관계자와 인도불교 관계자, 인도 티베트 불교 관계자 스님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인도 정부 관계자들은 순례단을 향해 ”손님은 신이라는 인도 속담에 따라 여러분은 신“이라며 부처님 성지를 도보로 순례한 순례공덕을 찬양했다. 또한 이번 순례가 불교 관계에 그치지 않고 날로 강화되는 양국의 경제 문화 인적 협력 관계를 더 강하게 다지는데 획기적 전환점이 될 것임을 거듭 강조했다.
한국 순례단을 대표한 총도감 호산스님은 ”유피주 주정부의 전폭적 지원에 힘입어 안전하게 도보 순례를 할 수 있었으며, 시민들의 적극적 지원에 감격했다“며 유피주와 국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안녕을 기원했다. 호산스님은 “유피주의 지원과 관심은 조계종과 한국불자들에게 영원히 오래 남을 것이다. 아침 저녁 예불을 올리면서 저희는 유피주의 발전 국민들 평안 요기 총리임의 안녕을 기원했다. 유피주 발전과 43일간 순례를 환영해주시고 고생해주신 모든 분들께 안녕과 평화를 위한 기도를 하겠다”며 순례단 스님들과 함께 축원기도를 올렸다.
유피주 문화부 장관은 “도보 성지 순례는 한국 인도 양 언론에서 많이 보도되고 한국 인도 우호관계에 새로운 장을 썼다. 이러한 이벤트를 통해 한 인도 관계가 더 강화됐다”며 순례의 의미를 강조했다.
요기 총리는 인사말에서 부처님 열반지 쿠시나가라에 부처님 이름의 국제 기술대학을 설립할 것이라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요기총리는 순례단 환영사를 통해 순례의 성공적 완수를 축하하고 환영을 표하면서 이번 순례가 앞으로 한국 인도 관계에 큰 전진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요기총리는 또 부처님 성지의 3분2가 우타르 프라데시 주에 있다며 바라나시 쿠시나가라 쉬라바스티 등 불교성지 마다 공항이 운영 중이거나 확장 신설 할 예정이라며 앞으로 한국불자들의 성지 방문을 요청했다. 요기총리는 한국말로 ”축하합니다“인사하며 순례단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주인도 한국대사관 공사도 대사를 대리해 참석하여 조계종 상월결사 순례 성공적 회향을 축하했다.
환영식을 마친 순례단은 럭나우 공항으로 이동해 델리로 향했다. 그리고 3월22일 밤 11시5분 비행기로 출발, 3월23일 오전 인천에 도착한다. 인천공항에 내린 순례단은 조계사가 제공한 버스를 타고 회향법회가 열리는 조계사로 함께 이동한다.
인도 우타르 프라데시 주·델리=박부영 선임기자 chisan@ibulgyo.com
■ 일하러 왔다가 순례객이 된 기자들
취재를 왔다가 감동하여 불교에 귀의한 KBS 성수일 피디의 변화는 상월 순례 기자단의 마음을 상징한다.
기자들은 업무상 왔다가 순례단 일원이 되었다. 순례단과 함께 걷고, 함께 야영하며, 함께 먹고, 발가벗고 함께 목욕하며 자연스럽게 하나가 됐다. 기자들은 더 좋은 영상을 담기 위해 달리고 뛰고, 밀밭으로 들어가다 미끄러지고, 길가에 놓인 오물을 밟는 등 몸을 던졌다. 일 욕심도 있지만, 아픈 다리를 이끌고 계속 부글거리는 속을 부여잡고, 죽어도 버스는 타지 않겠다며 이 악물고 버티는 노스님들, 상대적으로 체력이 약한 우바이와 비구니스님들의 투혼을 보며 받은 감동이 기자들을 더 땀 흘리게 했다.
순례단이 70대 후반부터 60대, 50대 중후반으로 나이가 많은 반면 기자들은 30, 40대가 주류로 상대적으로 젊었다. 또 무겁고 많은 방송 장비 때문에 차량을 이용해, 차에서 잠시 쉴 틈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 취재진들은 무거운 장비를 들고 대부분 시간을 걸었다. 앞뒤로 왔다 갔다 했으며, 원거리 영상을 잡기 위해 먼 들판을 뛰어가기도 했다. 순례단 못지 않게 많이 걸은 것이다.
상월결사 인도 순례단에 파견된 기자는 모두 16명. 불교신문 2명, 법보신문 1명, 현대불교 1명 등 교계신문 4명, 불교방송과 불교텔레비전이 각 4명 씩 8명이다. 교계 언론사 외에 KBS가 부처님 오신날 특집 다큐멘터리 취재 차 4명을 파견했다. 불교신문이 처음 파견된 기자가 극심한 장염으로 인해 중간에 교체한 것을 빼면 15명이 순례 전 일정을 함께 했다.
기자들은 나이가 상대적으로 젊지만 똑같이 병을 앓았다. 장염이 가장 많았고, 감기 몸살도 적지 않았다. 물집 무릎 등도 거의 대부분 거쳤다. 그럼에도 투혼을 발휘했다. 특히 일요일을 빼고 매일 아침 유튜브로 생중계 했던 불교방송 박준상기자는 심한 감기 몸살에도 불구하고 기다리는 불자들을 외면할 수 없다며 라이브를 강행하는 책임을 보였다.
기자들은 잠을 자는 시간을 빼고는 종일 근무였다. 순례단의 하루 일정은 새벽 2시 도량석으로 시작해서, 인도시간 10시 이전에 숙영지에 도착해 행선을 마무리 한다. 10시30분에 숙영지에서 점심을 먹고 4시에 저녁 공양 까지 순례단은 휴식을 취한다. 5시 저녁예불을 하고 순례 초반에는 저녁 예불을 마치면 하루 정리시간이었다가 중반을 지나 현지인들이 찾아오면서 저녁 예불이 중요한 일정이 됐다. 하루 일정을 마치면 8시쯤 잠자리에 든다.
기자들은 그러나 숙영지 도착을 하면 더 바쁜 일정이 시작된다. 그날 행선을 정리해서 원고를 작성해 인터넷에 올리는 일을 해야한다. 가급적 한국 시간 퇴근 전 마무리 하려면 점심공양을 건너 뛸 수 밖에 없다. 방송은 행선 중 하지 못한 인터뷰를 개시한다. 숙영지에서 떨어진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몇 시간에 걸쳐 인터뷰 한다. 짐도 풀지 못하고 점심도 헐레벌떡 가장 나중에 와서 먹는 일이 다반사인 방송국 피디 기자들이었다.
이런 일은 각오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니다. 가장 문제는 전기와 인터넷이다. 순례단에서 기자단을 위해 공식적으로 전기 배선을 마련하지 않기 때문에 기자들은 각자 해결해야했다. 전기 문제를 해결하는 일등공신은 기자들이 한국에서 가져온 6단 자전거였다. 이 자전거는 뜻하지 않게 인도인들의 가장 큰 관심을 끈 최고 인기품이었다. 인도 가이드들도 자전거에 흠뻑 빠졌다. 세련된 디자인의 6단 자전거는 인도에 없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기자들은 이 자전거를 한국 가기 전에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전기 서비스를 받았다. 이름이 묘하게도 ‘일렉’인 인도 가이드는 이 자전거에 빠져 숙영지 도착하면 가장 먼저 기자들을 위해 전기를 끌어오고 배선을 설치했다. 덕분에 기자들은 전기 걱정 없이 업무를 처리했다. 기자들은 일렉에게 감사의 표시로 그가 한 달 동안 순례단에서 일한 만큼의 수고비를 각 사별로 거둬 전달하며 그 동안의 노고에 감사를 표했다.
그런데 기자단석이 순례 초반 스님들의 놀이터가 됐었다. 휴대폰 충전이 가능하고 차양막에 의자 까지 있어 쉬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기자석에서 놀던 스님들이 사라졌다. 회주스님이 금지시킨 것이다. 기자들 일하는데 가서 방해말라고 하셨다는 전언이 전해졌다.
회주스님은 기자단 최대 응원자이자 후원자였다. 스님은 기자들이 필요할 때 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해결하는 ‘신통’이 있는 듯 했다. 기자단 접근을 금한 조치가 대표적 사례다. 또 있다. 기자들이 행선 사진을 찍고 영상을 촬영하는데 다들 모자에 마스크를 써서 구분이 되지 않았다. 또 1조부터 8조 까지 순서대로 서는 바람에 늘 회주스님과 가장 가까운 1조나 2조만 영상에 담겼다. 뒤 쪽 까지 담으면 다시 선두로 달려오느라 엄청난 체력을 소모하고 시간도 낭비해야했다. 어느 날 회주스님이 숙영지에서 첫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기자들은 기다렸다는 듯 요청사항을 쏟아냈다. 그렇게 해서 아침 공양 후 30분 가량, 탈모 탈마스크를 하고 조 편성도 매일 바꿨다. 정말 필요한 때에 필요한 숙제를 해결해준 것이다.
틈틈이 간식을 챙기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순례 초반 외부 대중공양은 금지 사항이었다. 공양 외에는 들어오는 간식이 일체 없었다. 다만 회주스님이 현지 군것질이나 음료수 등을 보내는 정도였다. 회주스님은 틈틈이 콜라 등 기자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제공했으며, 나중에는 흔해졌지만 초반에 구경도 못할 때 컵라면을 기자단에 보내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기자들은 언론사 간 보이지 않는 경쟁도 한다. 불교방송이 아침에 유튜브 라이브를 하자, 불교텔레비전이 숙영지에서 라이브를 진행한 것도 경쟁의 발로다. 불교텔레비전 김범수 국장이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뛰고 순례단에 바짝 붙어 따르는 옆에는 어김없이 불교방송 김성민 피디가 더 크고 무거운 장비를 들고 달리고 있다. 그러나 경쟁 하되 순례단 일원으로서 협조와 배려를 더 많이 한다. 좋은 장면은 먼저 한 쪽이 찍으면 다른 쪽이 기다렸다 가는 식이다.
취재 하느라 이리 저리 뛰고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는 사이 기자들도 순례객이 됐다. 수염과 머리가 자라 덥수룩하고, 프레스 조끼는 땀과 흙먼지로 땟국물이 흐른다. 얼굴은 까맣게 탔다. 기자단은 조계사 회향 법회에 순례단 일원으로 맨 뒤에 서서 함께 입장한다. 43일 일정 중 처음으로 카메라를 손에 놓고 취재 대상이 된다.
순례단의 소회처럼 기자들도 함께 했다는 것을 큰 영광으로 여긴다. 순례단이 감동에 젖어 울 때 기자들도 울었다. 어느새 일꾼임을 잊고 순례자처럼 행동하고 생각하게 됐다. 그 신심과 열정을 순례단 대중들이 받아줘 순례단으로 포함시켜 준 것에 감사한다. 한국불교 중흥을 고민하는 상월결사처럼 기자단도 향후 순례의 결실을 어떻게 맺을 것인지 무거운 화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