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월결사 인도순례: 편집국장이 좇은 붓다의 길⑨] “한국불자들의 순례, 인도불자들의 잠을 깨우는 것”
상월결사 인도순례:편집국장이 좇는 붓다의 길
여기는 부처님 나라
부처님께서 나고 깨닫고
가르침을 전하고 입멸하신 곳.
이 땅을 일생일대의 가르침으로 여기고
우리의 걸음은 신행 원력의 희망으로 삼아
가슴에 부처님을 모시겠나이다.
순례단의 새벽 발원문이 어둠을 향해 나아간다. 발원문 소리는 더 높아졌다. 인도순례를 시작할 때의 초심을 다시 떠올리며, 스스로를 다잡는 것이다.
3월17일 상월결사 인도순례 37일차를 맞는다. 쉬라바스티로 향하는 순례단은 여전히 시다르트 나가르(Siddharth Nagar)를 걷고 있다. 시다르트나가르는 출가 전 ‘부처님의 땅’이라는 뜻이다. 부처님의 땅 시다르트 나가르는 인도에서도 낙후지역 가운데 하나다. 큰 도시를 찾아보기 힘든 지역, 어둠이 깊다. 수 km를 걸어도 빛 하나 보이지 않는 길을 순례단은 헤쳐나갔다. 함께 걷는 도반의 랜턴에서 나오는 빛은 걸음을 인도하는 또하나의 도반이다. 멀리에서 순례단의 행렬을 보면 작은 불빛이 줄 맞추어 춤 추듯 조금씩 나아간다.
곳곳서 만나는 불가촉천민들의 불교로의 개종
부처님 성지에 부처님과 관련된 지명이 남아 있는 것은 인도인들에게 부처님의 존재가 그만큼 크다는 의미일 것이다. 인도에서 명맥을 잃었던 불교가 다시 되살아 난 것은 1950년대의 일이다. ‘바바사헤드(아버지)’ 암베드카르의 영향이다. 물론 지금도 소수종교다.
부처님의 땅에서 불자들을 만나는 일은 순례단에게 반가운 일이다. 순례단 지원팀이 두번째 휴식지 자리를 잡는 동안 낯선 주민 10여명이 다가왔다. 손에는 불교기가 쥐어져 있었다. 전날 숙영지에 찾아와 이동경로를 확인하고 순례단을 기다리던 이들이었다. 200m 거리에 더 좋은 공간이 있으니 그 곳을 휴식지로 써도 좋다는 말을 건네왔다. 그 자리는 집이 딸린 병원과 약국의 앞자리. 지원팀은 기꺼이 자리를 옮겨 휴식지를 마련했다.
휴식지에 도착한 순례단은 자리를 제공해 준 불자들에게 감사 인사와 함께 공양물로 들어온 라면과 단주 등을 선물했다. 15분 정도의 휴식시간에 불과했지만, 불자 주민들은 정성껏 모은 공양금을 내놓으며 안전한 순례를 기원했다.
휴식지의 주인은 마노지 고탐(Dr. Manoj Gautam) 씨와 리투 고탐(Dr. Ritu Gautam) 부부. 20년 전 델리에서 의학을 공부하다가 불교를 접한 뒤 개종했다고 한다. 고탐 부부는 “모든 생명은 존귀하며, 인간은 평등하다는 불교사상에 매료돼 불교를 믿게 됐다”며 “지역 주민들이 이런 시골 마을을 걸어서 순례하는 모습을 보고 큰 감화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불교 커뮤니티에서 순례단 소식을 접하고 너무나 기뻤다며 3일 전 기억을 떠올렸다. “부처님 성지를 걸어서 순례하는 스님들을 환영하고 공양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은 큰 행복”이라며 “공양금 보다는 공양물을 올리고 싶었으나 우리의 공양물이 순례단에게 도움이 될지 확신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더 많은 불자들이 모이기로 했으나 이른 시간인 탓에 모두 모이지 못한채 순례단을 맞은 것이라며 숙영지로 찾아가 한국의 예경의식을 보고 같은 불자로서의 동질감을 느껴보고 싶다는 바람도 털어놨다.
“주민들에게 좋은 인상…포교에 도움될 것”
이날 숙영지는 순례단이 도착하기 전부터 환영과 구경 나온 손님들로 북적였다. 도착 1시간 전부터 숙영지 근처에는 이미 300여명의 인파가 몰렸다. 순례단이 숙영지에 다다르자 함께 따라온 주민들까지 500여명을 육박했다. 이들 중 불교기를 든 한 무리를 형성한 20여명의 사람들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그들은 인도불교계를 이끌고 있는 인도불교소사이어티(The Buddhist Socioty of India) 시다르트나가르지부 이트와지회 회원들. 한국불교 순례단 소식이 인도 언론을 타며 내부 공유가 이뤄져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인도불교소사이어티는 1956년 암베드카르가 설립한 단체로 되살아난 인도불교를 상징하는 단체다.
아닐 쿠마르 고탐(Anil Kumar Gautam) 이트와지회 회장은 “우리나라 땅에 있는 부처님 성지를 외국의 스님들이 와서 걷기순례를 하는 모습을 보니 우리도 각성하게 된다”며 “순례단이 이 지역에 머물고 순례하는 동안 우리 소사이어티 회원들은 함께 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전날 숙영지와 이날 숙영지를 연이어 방문했으며, 한국의 의식을 지켜보며 그 장엄함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숙영지 입구부터 환영의 꽃가루를 뿌리며 순례단을 환대했던 인도불교소사이어티는 “한국의 스님들이 시골마을 구석구석을 돌며 보여주는 모습은 포교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한다”며 “불자의 한사람으로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이심전심’ 인터뷰 “알아서 써도 좋다”
이날 행선 중 중간기착지인 아침공양 장소는 바르니(Barhni) 마을에 있는 영어학교(English Medium Upper Primary School). 순례단이 마을을 지난다는 소식에 주민들이 장소를 제공했다. 4500여명 규모의 이 마을 대표 야소다 난드 미스라(Yashoda Nand Misra) 씨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함께 나누는 문화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순례를 환영하기 위해 장소를 제공하게 된 것”이라며 “어제부터 장소를 준비하기 위해 풀을 베고 청소를 하는 등 책임감을 갖고 준비했다”고 말했다.
“마을주민들이 어젯밤부터 순례단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그는 “차량을 타고 성지순례하는 분들을 보기는 했지만 걸어서 순례하는 분들을 보는 것은 처음”이라며 “인도문화와는 달리 수행자들이 줄을 맞춰 걷고 철저한 규율에 따라 움직이는게 멋지다”고 했다.
옆 마을에서 만난 주민 디레스 싱(Dhires Singh) 씨는 “아차라가(매우 좋다)”는 말과 함께 “알아서 써도 좋다”고 했다. 의미를 묻자 “이미 마음을 함께 나눴기 때문에 당신의 마음은 이미 나의 마음과 같다”며 “당신이 느끼는 마음을 그대로 적으면 그것이 곧 내 마음”이라고 했다.
순례단은 순례 38일차인 3월18일 부처님의 땅 시다르트 나가르 경계를 벗어나 기원정사, 천불화현탑 등지가 있는 쉬바라스티 지역에 접어들게 된다.
인도 우타르 프라데시주=박봉영 편집국장 bypark@ibulgy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