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월결사 인도순례 특별기고] <2>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상월결사 인도순례를 보고 : 우리는 오직 걸을 뿐 이 시대에도 끊이지 않는 살생과 죽음, 삶의 고통을 우리는 어찌해야 한단 말입니까? 세계의 지성, 세계의 종교들은 어떻게 해결의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단 말입니까? 한국의 불자 108명은 대답했습니다. 오직 기도함으로써, 걸음으로써 스스로에게 가한 고통을 견디고 완성의 길을 향함으로써, 그들의 스승이 제시했던 평화의 길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여느 때처럼 불시에 스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지금 머하시능교?”
“그냥 있습니다.”
“퍼뜩 오이소.”
스님께서 서울에 오시면 계시던 작은 오피스텔과 나의 집은 걸어서 15분 정도의 가까운 거리였습니다. 기다리시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드리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잰걸음으로 갑니다. 스님께서는 오피스텔 현관문을 열어두고 계셨습니다.
“스님.”
부르고 들어서는 오피스텔 내에는 해질녘 황혼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습니다. 절을 하자 마주 절을 하십니다. 스님은 앉아서 절을 받는 법이 없었습니다. 제가 절을 올리면 꼭 맞절로 받으셨습니다. 탁자를 두고 마주 앉으니 뚜벅 입을 여셨습니다.
“자효야.”
이런 식으로 저를 부르시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네.” 하고 대답하니 문득 혈육과도 같은 정이 느껴졌습니다.
“인도에 가고 싶다.”
도착하면 여권과 신분을 알만한 것들은 모두 버리고 걷고 싶다고 했습니다. 생명이 다할 때까지 걸으리라고 했습니다. 노스님의 절절한 바람이 저의 가슴을 쳤습니다.
설악 무산.
제게는 스승이었고, 때로 큰형님 같았던 스님을 바람 불고 비 오는 이 세상에서는 뵐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 걷고 싶어 하시던 그 길을 걷고 있는 108명의 순례자들을 봅니다.
얼마나 황홀한 길입니까?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룸비니,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보드가야, 처음으로 법의 수레바퀴를 굴리신 사르나트, 최초의 불교사원인 죽림정사가 세워진 라지기르, 수닷타 장자가 기증한 기원정사가 있는 쉬라바스티, 최초로 비구니 승가가 생성된 바이샬리, 열반지 쿠시나가르.
아, 부처님 생애의 7대 성지를 모두 가다니…. 그것도 1167km를 오직 걸어서 43일을….
부처님 이후 2600년, 한국의 불제자들이 부처님께서 걸으셨던 그 길을 따라서 걷고 있는 모습은 장엄하고 거룩합니다. 그들은 왜 걸을까요? 스승이 걸어서 그 길을 가셨기 때문입니다. 고대 북인도의 한 왕국에서 왕자님으로 태어났던 부처님. 귀하고도 귀한 그분이 오직 육신으로 걸어서 가신 길이기 때문입니다. 길에서 태어나셨고, 걸으며 한 생을 사시며 전도하고 포교했던 스승의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길의 종교입니다.
상월결사란 무엇입니까?
“상송결조(霜松潔操) 수월허금(水月虛襟)”
서릿발 선 소나무처럼 맑고 깨끗함이여.
물에 비친 달처럼 텅 비어 묶인 곳이 없어라.
회주이신 자승스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많은 대중들이 43일 동안 걷는 모습을 불자들이 보고 신심을 내서 내 이웃에게 부처님과 인연 맺도록 역할을 하는, 한국 불교중흥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씨앗을 심자는데 의의가 있다.”
출가자가 줄어들고 있고, 신도도 줄고 있는 1700년 한국불교의 위기를 포교로서 극복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조계종 총무원장 시절에 직접 뵈었던 저에게는 먼지를 뒤집어쓴 채 땀을 흘리며 인도의 거친 길을 합장하고 기도하며 걷고 계시는 자승스님의 모습이 충격이었습니다. 평소보다 많이 여위신 모습에서 고행의 어려움이 전해왔습니다.
이 느낌은 2019년 11월11일, 위례에서 있었던 동안거 천막 결사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겨울에 난방기 하나 없는 천막에서 한 끼 공양만 하고 묵언하며 하루 열네 시간의 정진. 목욕도 삭발도 하지 않고 옷 한 벌로 버티는 90일간의 수행.
수도자들이 왜 고행을 하는가? 그것은 수도자들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해야 할 말이 있을 때, 메시지가 있을 때, 수행자들은 고행으로써 표현합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고행을 보며 세상 사람들은 그 뜻을 알고자 합니다.
자승스님께서는 총무원장 8년의 임기를 끝내고 백담사 무문관에 드셨습니다. 거기에는 무산스님의 권유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선연선과(善緣善果). 좋은 인연이 좋은 결실을 맺듯 무산스님 가신지 5년, 인도의 순례길을 걷고 계신 일행의 모습에서 무산의 서원이 이뤄지고 있음을 봅니다.
아름다워라. 고행이여.
부족함을 겪어봐야 작은 물질의 소중함을 알고, 고통을 겪어봐야 화평이 생명임을 압니다.
우크라이나에서, 튀르키예에서, 시리아에서, 미얀마에서…. 이 시대에도 끊이지 않는 살생과 죽음, 삶의 고통을 우리는 어찌해야 한단 말입니까? 세계의 지성, 세계의 종교들은 어떻게 그 큰 문제들에 해결의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단 말입니까?
한국의 불자 108명은 대답했습니다. 오직 기도함으로써, 걸음으로써 스스로에게 가한 고통을 견디고 완성의 길을 향함으로써, 그들의 스승이 제시했던 평화의 길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걷고 있는 모습은 구도의 모습입니다. 그 행렬이 수십을 넘어, 수백이 되고, 수천이 되고, 수만이 되고, 마침내 수억이 되어 전 인류가 떨쳐 일어날 때 소망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귀한 씨앗이 부처님의 나라 인도에서 뿌려지고 있음을 봅니다.
이런 큰 불사를 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준비가 필요했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도움이 필요했을까요?
우리가 보는 것은 상월결사 순례길을 걷는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의 모습이지만 그 결실 뒤에는 엄청난 준비와 노력이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름 없는 숱한 이들의 공덕도 꼭 기억해야만 합니다.
10여 년 전, 심장 대동맥 수술이라는 삶의 힘 든 고비를 겪었던 저는 더 늙기 전에 꼭 찾아봬야 한다는 마음으로 룸비니와 녹야원에 갔었습니다. 그때 태양은 밝고 바람은 맑았었지요. 세계 각국에서 온 참배객들이 경건하게 스투파를 돌며 절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본 룸비니와 녹야원은 거룩한 곳은 그대로 있음으로써 빛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2천6백년의 시간이 바로 어제와 같음을 알았습니다.
근처의 박물관에서는 부처 고행상 앞에서 끊임없이 절을 하는 여성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무슨 소원이 있어 오랜 시간을 절만 하고 있었을까요?
번민과 고통의 연속인 우리의 삶. 그래서 중생이 할 수 있는 일은 끊임없는 기도뿐임을 알려주는 듯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의 순례자들입니다. 주어진 시간을 걷고 걸어 열반의 시간으로 향합니다. 그 순례길에는 빈부귀천이 없습니다. 만인에게 평등한 것은 오직 생의 순례자들이라는 사실 뿐입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그래도 희망이 있고, 꿈이 있고, 내일이 있음을 먼지 투성이와 땀에 뒤범벅이 되어 걷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봅니다.
오, 거룩한 이여.
그대들은 바로 우리 곁에 있었구나.
“지금 머하시능교?”
“그냥 있습니다.”
“퍼뜩 오이소!”
[불교신문 3760호/2023년3월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