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월결사 인도순례 27일차①] UP주서 큰 환대를 받은 순례단…흙먼지 마당에 카펫이 깔리다
비하르 주에서 UP 주로…주정부 차원의 환영행사
3월7일 27일차 행선은 두바울리야를 출발해 24km를 걸어 삐삐라까낙에 숙영지를 마련했다.
새벽 2시 도량석을 시작으로 하루 일정을 시작했다. 2시30분 행선에 나서 마다착을 지나 마쵸아에서 아침 공양을 했다. 전날처럼 제방길이 죽 이어졌다. 제방길에 이어 마을을 지난 순례단은 얼마 뒤 작은 도시에 들어섰다. 비하르커드다. 비하르 주와 우타르 프라데시(UP) 주 경계에 위치했다. 주 경계선을 넘자 주정부에서 환영나온 인사들로 시내는 북새통을 이뤘다. 타악기들로 구성된 악대 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주 공직자들이 나와 화환을 순례단 목에 걸어주며 환영했다.
부처님께서 활동했던 성지(聖地)는 현재 인도의 UP 주, 비하르 주, 네팔에 걸쳐 있다. 비하르 주에는 부처님이 깨달으신 보드가야, 전정각산, 영축산 죽림정사가 있는 라즈기르, 바이샬리, 케샤리야 대탑 등이 있다. 열반지 쿠시나가르, 기원정사가 있는 쉬라바스티, 초전법륜지 사르나트, 부처님의 고향 카필라바스투는 UP 주에 속한다. 네팔에는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룸비니가 있다. 비하르 주는 대한민국 정도의 넓이에 인구는 1억3천 명에 달한다. UP 주는 한반도 크기에 인구가 2억 명이 넘는다. 주 하나가 인구 대국이다.
UP 주는 순례단이 2월9일 도착할 때부터 주정부 장관이 공항에 나와 영접하고 경찰을 동원해 철통 밀착 경호를 펼칠 정도로 대대적으로 환영하더니, 주 경계선을 넘어오자 기다렸다는 듯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이들의 환대는 숙영지 준비에서도 드러났다. 똑같은 학교에 숙영지를 마련했는데 바닥에는 먼지가 나지 않도록 카펫을 깔았고, 햇볕이 들지 않도록 천막을 쳤다. 비하르 주와 다른 점도 있다. 도착 때부터 느꼈지만 UP 주는 환영단 공무원에 여성이 한 명도 없는 것이 특이했다. 27일차 주 경계선을 넘어 갈 때도, 숙영지 앞과 숙영지에 미리 기다리고 있던 많은 공무원, 주민대표도 모두 성인 남성이었다. 그런 점에서 비하르 주가 여성에게 좀 더 개방적인 듯 보였다. 그러나 이는 주마간산식으로 스쳐가는 이방인의 단견일 뿐이다.
다음 날 새벽에는 파질나가르(Fazilnagar)를 지난다. 숙영지에서 4km 떨어져 있다. 파질나가르는 경전에 나오는 파바마을이다. 춘다의 집이 있는 곳이다. 부처님께서 망고나무 아래 쉬고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춘다가 공양을 청하는 그 마을이다. 파질나가르에서 열반당까지는 고팔가르를 지나 10km 이상 더 가야한다. 부처님께서는 상한 음식으로 인해 배탈이 나 도저히 걸을 수 없어 간신히 움직이셨다. 목도 몹시 말라 아난다에게 물을 달라고 한다. 아난다가 얼마 전 500대의 마차가 지나가 마실 수 없다며 세 번이나 듣지 않았지만 부처님 말씀대로 강물은 마실 수 있을 만큼 깨끗했다. 쿠쿠다 강에서 목욕을 하시고 다시 기운을 차려 몸을 움직였지만 결국 얼마 가지 못하시고 사라나무 아래 누워 열반에 드신다.
파질나가르부터는 부처님께서 마지막으로 목욕하셨다는 쿠쿠다강, 말라족이 다비를 했다는 히라냐바티(Hiranyavati), 경전에서만 보던 그 현장을 내일 28일차 순례단이 지나간다.
열반지를 앞둔 순례단의 마음도 특별하다. 보드가야와 바이샬리와 달리 복잡한 심경이다. 영축산 전정각산 등에서는 순례단 모두 환희심을 느꼈다고 했는데 쿠시나가르는 다른 곳과는 다른 복잡한 심정을 갖게 했다. 열반의 땅이기 때문이다. 지해스님은 “쿠시나가르가 5번째인데 올 때마다 마음이 착잡하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성지여서 아무래도 마음이 복잡하고 숙연해진다”고 말했다. 내일 도보로 찾아가는 열반의 땅은 어떤 모습으로 기다릴까?
한편, 전날 묵었던 두바울리야 학교 교정에도 마을 사람들이 대거 찾아와 저녁예불도 지역 주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봉행했다. 찾아오는 아이와 주민들을 빈 손으로 돌려보내 아쉬워 하던 차, 전날 봉은사에서 간식을 가져와 그동안의 아쉽던 마음을 달랬다. 각 조 조장 스님들이 예불을 마치고 주민들 손에 단주를 채우고 간식을 선물했다.
인도 비하르주·우타르 프라데시주= 박부영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