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월결사 인도순례 15일차] ‘세계평화기원법회’ 감동 이어 순례단 구법의 여정 계속된다

반나절 호텔에서 휴식 뒤로하고 니련선하 건너 수자타 아카데미 전정각산 지나 라즈기니로 순례

2023-02-23     인도 비하르 주=박부영 선임기자
상월결사 인도 순례단은 호텔에서 반나절 휴식을 뒤로하고 2월23일 새벽2시 보드가야 시내를 걸으며 순례에 나섰다. 사진은 전정각산을 뒤로 하고 라즈기니로 가는 순례단.

2월22일 인도 보드가야 마하보디사원에서 열린 '세계평화기원대법회'가 끝난 뒤 한국에서 찾아온 스님 신도들은 떠나고 다시 순례단만 남았다. 그리고 반나절 호텔에서의 휴식 시간이 지나갔다. 2월23일 새벽2시 여느 날처럼 새벽예불과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경적소리도 먼지도 날리지 않는 보드가야 시내를 조용히 걸었다. 마하보디 사원 대탑이 바라보이는 사원 뒤를 돌아갔다.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사원 뒤편은 앞쪽과 달리 좁고 허름하다. 길 양옆에 릭샤가 줄지어 서 있다.

시내를 빠져나가자 다리가 나온다. 나이란자나(Nairanjanâ, 尼蓮禪河)를 가로지르는 수자타 다리다. 다리를 건너 수자타 탑을 오른쪽으로 두고 왼쪽 주택가를 지나자 이번에는 물이 말라 모래길이 난 나이란자나가 나온다. 수자타마을은 나이란자나 가운데 자리한 셈이다. 마하보디사원 쪽 강을 나이란자나, 수자타 건너편 강을 모하나라고도 한다. 공식적으로는 모두 팔구강이다.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두 공양이 있다. 하나는 수자타의 공양이며 또 다른 하나는 춘다의 공양이다. 춘다의 공양은 부처님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당신의 열반을 짐작하고 북쪽으로 가던 중 춘다의 공양을 받은 부처님은 그 음식이 상했음을 알았지만, 제자는 먹지 못하게 하고 당신만 드신다. 수자타의 공양은 수자타를 빛나게 한다. 나이란자나 강변 고행림에는 무수히 많은 수행자가 있었다. 부처님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수자타는 강변에 쓰러진 한 수행자를 지극히 공양했다. 아무 조건도 이해관계도 없는 순수한 보살핌이며 배려다. 수자타는 진실한 사람이다. 그래서 영원히 빛난다.

순례단은 캄캄한 새벽 나이란자나를 건너고, 수자타 마을, 전정각산을 지나며 가야로 향했다. 나이란자나 강에는 길상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수자타 마을은 어둠 속에 잠겼다. 여명이 찾아오기 전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아침을 먹었다. 1994년 법륜스님이 수자타 마을 인근에 불가촉 천민마을 아이들을 위해 세운 학교다. 1991년 전정각산에서 성지순례 중 수 여백 명의 아이들이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구걸하는 모습을 보고 발원했다. 주민들은 땅과 노동력을 제공하고 정토회는 자재를 공급하여 학교를 설립했다. 작은 대학 규모의 현대식 건물이다. 순례단은 아침 공양 전 법당에 들러 참배하고 보시함에 시주했다. 수자타의 공양 은혜를 갚으려 수자타에 부처님 학교를 세우고 자립을 돕는 법륜스님 역시 진실한 수행자다.

다시 길을 나서는데 아침이 밝았다. 어둠에 갇혔던 둥게스와리 즉 전정각산이 눈에 들어온다. 부처님께서 정각을 이루기 전 수행했던 불교 최고 성지다. 당시 이곳은 시신을 버리는 공동묘지였다. 부처님은 왜 이곳에서 고행했을까? 시신이 부패해 점차 흙으로 공기로 흩어지는 것을 보며 무상의 진리를 깨우치기 위해서였을까? 생기는 모든 것은 소멸한다. 그래서 허무가 아니라 하루를 살더라도 진실 된 마음으로 후회 없는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 담겨 있는지 모른다.

흙길을 걸어가는 순례단.

순례단은 아침 일출을 맞으며 전정각산을 지났다. 라즈기니로 가는 길이다. 부처님도 이 길을 따라 라즈기니 즉 그 옛날 마가다국의 왕사성으로 가셨다. 그 길은 불교가 세상으로 가는, 강물이 마침내 바다로 흘러가는 것처럼 도도했을 것이다. 사르나트에서 초전법륜을 굴리신 부처님께서 고행하던 이곳을 다시 찾아 불을 섬기던 카사파 3형제를 교화했다. 그들의 제자 1000여 명을 모아놓고 그 유명한 ‘불의 설법’을 펼쳤다.

“욕망의 불, 분노의 불, 어리석음의 불길로 타오른다. 늙음과 병고와 죽음의 불길로, 고통, 갈망, 좌절, 걱정, 공포의 불길로 타오르고 있다….”

눈에 보이는 불이 아니라 마음의 불을 꺼야 한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불을 숭배하던 1000여 명의 배화교도들은 모두 불제자가 됐다. 부처님 홀로 시작하여 5비구, 야사와 그의 친구 50명으로 늘어나 ‘1250비구’로 불어났다.

세상이 이 진리를 받아들일 것인가 고민하며 지친 몸을 이끌고 홀로 떠났던 보드가야에서 사르나트의 외롭고 불투명했던 길. 60여 명의 제자와 함께 사르나트에서 보드가야로 가는 ‘전법의 길’, 1250명의 제자와 함께 가는 보드가야에서 라즈기르로 가는 길. 순례단도 라즈기니로 간다. 전정각산 전체가 보이더니 점차 희미하게 멀어져간다. 가야 외곽을 지나 초중고등학교가 함께 있는 학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길을 나서 목적지 카이야의 한 학교에 도착했다. 보드가야, 팔구강(니련선하), 하리잔토리, 카르하리, 카이야 까지 모두 25km를 걸었다.

15일 차 행선 역시 길은 멀고 불편했다. 모래가 발을 붙들고 앞뒤로 달리는 차량은 안전을 위협했다. 3월이 다가오면서 날은 점점 더 뜨거워졌다. 하루를 쉬었지만 쌓인 피로를 풀기에는 많이 모자란 듯 목적지를 10여 km 앞둘 즈음에는 발걸음이 느려지고 몸도 많이 휘청거렸다. 아직 절반도 안 지났지만, 몸은 이미 많이 지쳤다. 정신력 만이 힘이다. 정신력을 지탱하는 힘은 진심이다. 부처님은 불을 섬기는 카사파 형제 중 맏형에게 “당신은 과연 진실된 성자인가?”라고 물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최고의 교단 지도자라는 교만에서 벗어나 부처님께 무릎 꿇었다. 수자타 여인이 일면식도 없고 숱하게 많은 수행자 가운데 한 사람인 싯다르타를 지극한 마음으로 공양한 것도 사람에 대한 진실 된 마음을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순례단을 걷게 하는 힘도 진심이다. 이 한 걸음 한 걸음이 정말로 한국불교를 중흥하는 생명존중의 길임을 한 치의 의심 없이 믿는 그 마음이다. 육신이 힘들수록 마음은 가볍고 단순해진다. 오직 순례 생각 뿐이다.

가야 시립학교 학생들이 순례단을 박수로 환영하는 모습.
공사 구간을 지나는 순례단.
순례단 행선 모습.
행선 중 휴식.
아침공양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