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월결사 인도순례 6일차] 환자 속출하지만 갈수록 더하는 인도인들의 순례단 환영 열기
부처님 성도지 보드가야가 한 발 더 가까이 왔다. 사르나트에서 입재식을 열고 매일 25~30km 걷는 순례길이 6일 차에 100km를 넘어섰다. 오직 두 발 만 의지하는 순례길은 성지에 가까워질수록 영적 기쁨은 충만하고 몸은 쇠약해지는 것이 공식이다.
상월결사 인도순례단도 공식을 비껴가지 못했다. 5일 차에 접어들면서 환자가 속출했다. 풍토병 예방을 위해 각종 백신을 맞고 약을 준비했지만 물은 피하지 못한다. 평소 같으면 일없이 넘어갔을 균이 환경이 바뀌고 체력이 저하된 순례단을 엄습했다. 어차피 겪어야 할 고난이지만 예방 할 수 있으면 최대한 조심하는 것이 좋다.
더 이상 상황이 악화되기 전 순례단을 이끄는 회주스님이 주의 조치를 내렸다. “반찬 가지수를 줄여도 좋으니 날 음식은 내놓지 말라. 반드시 불로 익힌 음식만 내놓도록 하라” 순례객에게 가장 흔하면서 치명적 질병은 오염된 물이 일으키는 장염이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회주 스님이 수차례 당부를 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자 더 강력하고 구체적으로 지시한 것이다.
다음날 점심부터 모든 음식은 원래 지시한 대로 생수로 다듬었으며 끓인 물에 데치고 조렸다. 병을 피하기 위해 조심하는 것만이 순례단의 행동 규칙은 아니다. 그 마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마음 가짐이 더 중요하다. 부처님의 자취를 찾아가는 순례는 고행이다. 집을 떠나 길을 나서는 형식은 같지만 여행과 순례가 결정적으로 다른 이유가 고행에 대한 순응이다. 장염으로 속을 끓이고 감기 몸살로 오한에 떨며, 발에 물집이 잡혀, 무릎 관절염으로 한 발자국 내딛을 때 마다 천근 만근의 돌덩이가 누르는 듯 고통스럽지만 이 역시 순례의 과정임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마음 가짐이다.
그래서 회주스님은 “벌에 쏘이든, 족저근막염으로 걸을 수 없어도 그냥 받아들여라. 이 역시 순례다. 다만 중요한 것은 도반이 아프면 챙겨주고 보살펴 주는 배려다. 반드시 모두 함께 도착지 까지 가야한다”
아픈 사람도 문제지만 의욕이나 힘이 넘쳐도 문제다. 새벽 2시 기상인데 1~2시간 전에 일어나 짐을 챙기고 부산스럽게 오가는 바람에 다른 사람의 잠을 방해하는 일도 일어났다. 회주스님은 “본인이 일찍 일어난다고 시끄럽게 해서 다른 사람을 방해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경책했다.
출발 전에 순례 의미, 한국불교의 현재와 미래 등 마음 가짐에 대해 언급했던 회주스님은 환자가 나오기 시작하는 순례 초반에, 사소한 듯 하지만 내버려 두면 순례의 본류를 해칠 수 있는 음식에 관한 문제와 생활 태도에 대해 지적했다.
회주스님의 시의적절한 때 구체적 규칙 지적은 부처님의 율장 제정과 닮았다. 부처님은 불교 교단이 커지면서 각종 생활 태도 규범에서 문제가 생기자 그 때 마다 지적하고 고쳐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 등을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따르도록 했다. 지금 보면 아주 사소한 문제지만 방심하거나 방기하면 결국 교단을 무너뜨린다. 지도자는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문제가 일어날 때 곧장 바로 잡아야 한다. 부처님의 지도법이다.
새롭게 마음을 다 잡은 순례단은 먼지 일고 바람 부는 속에서 <금강경> 독송과 108배 정진을 했다. 첫날은 세상 모기는 다 몰려온 듯 모기가 들끓는 갠지스강변에서, 그 다음 날은 좁고 울퉁불퉁한 맨 바닥에서, 그리고 이 날은 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눈도 제대로 못 뜰 열악한 환경 속에서 108배를 했다. 전 날 이어 <금강경>을 독송했다.
회주스님의 경책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순례 6일 째 새벽, 먼지를 뒤집어 쓴 쉬브람 푸르 지역 텐트에서 일어난 순례단은 조용하게 행선을 준비했다. 새벽 종성이 울리기 전의 소란도 거의 사라졌다. 장염 무릎 통증 관절염 등으로 행선이 불편한 순례객이 많았지만 차량에 몸을 의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주윤식 중앙신도회장, 정충래 8조 조장도 그 중 한 명이다. 주회장은 전 날 벌에 쏘여 통증으로 치료를 받고, 발가락에 물집 까지 잡혀 걷는데 큰 고통이 따랐다. 정충래 조장은 대상포진 치료 중이어서 무리하면 자칫 만성 질병으로 악화 될 수 있지만 순례를 멈추지 않았다. 발가락 물집 감기는 병 축에도 못 들 정도로 만연했지만 어느 누구도 멈추겠다거나 편하게 가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새벽예불을 마치고 2시30분에 쉬브람푸르를 떠난 순례단은 로단을 거쳐 아와카라에 아침 7시에 도착했다. 아침은 전 날처럼 삶은 계란 두 알, 견과류, 바나나와 사과 각 한 개, 쥬스, 치즈 한 조각 등 간편식이다.
순례 일정 중 아침 시간에 화장실 줄이 가장 길다. 시설은 열악하고 개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먹는 것 보다 배설이 더 심각하다. 전 날 숙영지가 들판에 들어서서 화장실을 구덩이를 파서 만들었는데, 너무 얕게 파는 바람에 금방 차고 말았다. 이를 모르고 들어갔다가 낭패를 당하는 일도 생겼다. 하지만 이 역시 순례의 과정일 뿐. 8조 우바새 조원 중 한 명이 말했다. “깨끗한 아파트 수세식 아니면 못 볼 줄 알았는데, 풀 밭에서도 되고, 흙 구덩이 파도 되네요.”
순례단은 우리가 얼마나 많이 갖고 편하게 누리며 살아왔는지, 그것 아니면 못 살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음을 배우고 있다.
길게 늘어선 화장실 줄이 줄어들 무렵 다시 출발했다. 여명이 밝아오더니 출발 무렵 사방이 환해졌다. 갠지스강을 떠난 후 람나가르, 카코리야, 쉬브람푸르, 그리고 오늘 도착할 바부야 까지 풍경도 사람도 들판도 똑 같다. 길도 평평한 직선이다. 넓고 푸르고 햇볕과 수량이 넘치는 힌두쿠시 평원을 만끽하는 중이다. 2차선 포장도로 옆으로 마을이 늘어서 있고 그 앞으로 수로가 흐른다. 그 너머는 전부 들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군데 군데 작은 도시가 들어서 있다. 서양식 3층 건물이 도시와 시골의 차이다. 해가 밝아지자 2차선 도로로 차들이 끊임없이 오간다. 낡고 작은 버스 안에는 사람이 꽉 찼다. 젊은이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쌩쌩 달린다. 순례단이 지날 때 까지 모든 차량이 멈췄다. 신기한 듯 일제히 휴대전화를 꺼내 촬영한다. 그 중에는 SNS로 소식을 전하는 사람도 있다. 도심으로 들어가면 훨씬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환영했다. 큰 소리로 환영하며 박수를 보내는 사람이 날이 갈수록 많아짐을 실감한다. 인도 국영방송, 주 방송국 등에서 연일 순례단의 움직임을 방송한 덕분인 지, 입소문 때문인 지 이들은 순례객이 한국에서 온 불자들이며 부처님 성지를 도보 순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 했다.
어제처럼 오늘도 합장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꽃다발을 목에 걸거나 꽃을 뿌리며 환영하는 주민들도 가는 곳 마다 만났다. 장대 두 개에 불교기를 걸고 따라나선 청년도 있다. 발을 절뚝거리며 힘겹게 걷는 순례객들은 합장으로 인사했다. 그들을 볼 때 마다 힘이 넘친다. 전 날 순례객과 인연 맺은 강아지는 순례라는 이름을 얻었다. 회주 스님이 내린 법명이다. 순례단 ‘막내’, 순례도 열심히 잘 걸었다.
마침내 26km를 걸어 오전 10시 무렵 숙영지에 도착했다. 어제 보다 상황은 나아 보이지만 흙먼지 날리고 열악한 화장실, 툭하면 멈추는 물, 힘 없는 전압 사정은 여전하다. 그래도 다들 행복한 표정이다. 부처님께서 법을 전하러 세상으로 나아갔던 그 길을, 부처님처럼 100여 명의 불제자들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숙영지에는 반가운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석가족이라는 출신이 찾아와 환영 인사를 했다. 순례 영험이 이 곳 인도에서 피어나고 있음을 길을 걸을수록 실감한다.
인도 비하르 주=박부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