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사찰 천리순례] 사명감 하나로 밤낮 없이 일하는 숨은 영웅들

2021-10-13     박봉영 기자 | 이경민 기자

한국의 산티아고, 누구도 가지 않던 삼보사찰 천리순례의 원만 회향을 위해 묵묵히 뒷바라지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전3시 순례단이 기상 시간에 맞춰 눈을 뜨기 전 제일 먼저 일어나고 취침 시간이 지나 제일 늦게 잠에 드는 천리순례 지원단이다. 상황실 운영실 지원실 등 310팀으로 조직된 지원단은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도 척척 안정적으로 대응해내는 이번 순례의 숨겨진 일등공신이다. 지원단 10개 팀을 대표하는 5개 팀장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이상종 숙영 및 공연팀장.

어떻게 편하게 해 줄 수 없나 고민
■ 이상종 숙영팀장(도반HC 전무)

매일 새벽4시 순례단이 숙영지를 떠나고 나면 제일 마지막에 남아 뒷정리를 도맡는 이가 있다. 비에 젖은 150여 개 텐트를 하나씩 잘 포개 접고 텐트 속 매트리스를 차에 실어 순례단 짐과 함께 다음 숙영지로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휴식 지점 마다 간이 화장실을 설치하는 것은 물론 순례단이 묵는 장소에 누구보다 먼저 도착해 짐을 내리고 순례단이 편히 쉬도록 천막과 텐트를 설치한다.

자칭 허드렛일 담당이라고 말하는 그는 이상종 팀장이다. 알고 보면 허드렛일과 거리가 먼 도반HC 전무로 불교 문화 공연계 실력자다. 그런 그가 지원단에서 순례단 잠자리를 비롯한 문화 공연 등을 책임지고 있다. 도반에서의 지위와 상관없이 궂은 일이나 작은 심부름도 마다하지 않는 이상종 팀장은 순례단이 높은 길을 오르고 가파른 길을 내리며 물집이 잡히고 인대가 늘어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그 과정을 직접 보며 감사함을 느낀다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자기자신의 길을 꾸준히 가는 모습에서 배우는 것이 많다고 했다.

그는 순례 자체가 고된 일인데 잠자리마저 불편하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에 사소한 부탁이라도 전부 들어드리려 노력한다늘 순례하는 분들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 드릴까 고민하는 시간이 매순간 즐겁다고 했다.
 

이상종 팀장이 간이 화장실을 설치하고 있다. 

 


진차범 안전팀장,

아무리 지나쳐도 안전이 제일
■ 진차범 안전팀장(동국대 서울캠퍼스 총무팀장)

어둠 속 깜깜한 새벽마다 순례단 앞뒤로 호루라기 소리가 울린다. 찻길을 걷는 순례단 전방과 후방으로 진입하는 차량들 위험을 알리는 소리, 경광봉을 들고 수신호를 써가며 호루라기 사인을 주고 받는 이들은 진로 및 교통 정리를 책임지는 안전팀이다.

진차범 안전팀장은 차량 진입 외에도 묵언 및 휴대폰 사용 등 청규를 준수하며 코로나 예방을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킬 수 있도록 안내하는 일을 맡고 있다순례단 중 누구 하나 다치는 사람 없이 매일 안전하게 일정을 회향할 수 있도록 엄호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안전팀은 전 일정 동안 동국대 서울캠퍼스와 경주캠퍼스 교직원들이 2개조로 나눠 맡는다. 8개 걷기 조별로 한 사람의 안전요원을 배치하는 만큼 1개조에 10여 명 요원이 배치, 실시간 진로 안내 및 안전 상황을 체크한다. 이번 순례는 무엇보다 찻길이 많은 만큼 교통 통제가 변수. 어두운 새벽이나 밝은 낮이나 안전팀은 쉴 새 없이 경광봉을 휘두르며 순례단 옆을 지나는 차량들 속도를 늦추고 위험 신호를 알린다.

진차범 팀장은 순례를 하는 내내 특히 비구니 스님과 우바이 분들의 원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젊은 청장년층이 다수인 안전팀 요원들도 소화하기 힘든 일정을 거침없이 해내는 순례단을 보면 존경스러운 마음이 절로 생긴다고 했다. 그는 아무 사고 없이 순례가 끝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곁에서 성심성의껏 안전을 책임지겠다고 덧붙였다.
 

새벽 순례를 준비하는 안전요원들.

 


 

김명숙 의료팀장.

“24시간 매 순간이 긴장의 끈 놓을 수 없어
■ 김명숙 의료팀장(동국대 의료원 대외협력홍보팀장)

고된 순례 일정이 끝나고 나서도 쉬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순례가 끝나면 그날의 고단함을 말해주듯 부르튼 발과 근육통 등으로 신음하는 순례단원들을 위해 오후 내 약사전문을 열어두어야 하는 의료팀이다. 김명숙 팀장은 순례가 진행되는 내내 긴장의 연속이지만 일정이 모두 마무리 돼도 날마다 시시각각 변하는 순례단원들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느라 정신이 없다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24시간 긴장 상태라고 했다.

특히 이번 순례는 평지와 산길을 반복하는 구간에 극심한 일교차까지 더해지면서 순례단원들의 건강을 보다 세심히 살펴야 하는 상황. 순례 초반 강행군을 이기지 못한 고령의 어르신 2명을 비롯해 오르막을 오르다 발목을 접질러 움직이지 못하는 1명의 부상자 등이 생기면서 의료팀은 초반부터 정신없이 바빴다.

김명숙 팀장은 만에 하나 뼈라도 다치게 되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골절 뿐 아니라 길에서 먹고 자며 생기는 피부염 등으로 인한 질병 등 언제 어디서 돌발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발열 증세만큼은 보다 재차 확인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려 한다고 했다. 감기로 인한 발열이라 하더라도 코로나 시국인만큼 이상 증세가 나타나면 바로 귀가 조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 팀장은 코로나라는 어려움 속에서도 경건한 순례 현장에 참여하게 돼 기쁜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올해는 경주병원과 일산병원에서 인원을 보강한만큼 순례단들의 건강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동국대 의료팀이 부상자를 치료하고 있다.

 


장영욱 공양팀장과 진행1팀장 대진스님.

순례단과 함께 걷는다는 마음으로
■ 장영욱 공양팀장(봉은사 종무실장)

하루 평균 6~8시간을 걷는 순례단에게 허기는 치명적이다. 새벽3시 일어나 공복으로 약3시간을 걷고 나면 숟가락 들 힘이 없을 정도로 기운이 뚝 떨어진다. 그 때마다 순례단의 허기를 채워주는 이 사람. 18일 전 일정 동안 아침부터 점심, 저녁 공양까지 빈틈없이 척척, 에너지 충전을 위한 간식 주머니까지 센스 만점인 장영욱 팀장이다.

장영욱 팀장은 지역 사찰에서 직접 공양을 준비하는 때를 제외하곤 아침은 계란과 바나나, 유산균 음료 등으로 가볍게 먹을 수 있도록 하고 점심과 저녁은 지역에서 공수한 도시락으로 매 끼니 든든하면서도 부담없이 먹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혹시라도 너무 과하거나 부족한 것은 아닌지 매순간 고민한다고 말했다.

그런 그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음식물 쓰레기다. 지역마다 쓰레기 배출 방법과 분리수거 규정이 달라 어느 때는 음식물 쓰레기를 차 안에 계속 싣고 다니기도 했다고. 장 팀장은 순례단과 함께 이동하는 중간 중간 플라스틱은 따로 분리수거를 하더라도 남은 공양물은 버릴 수도 없는 일이라며 팀과 함께 고민해 지역 마을회관이나 경로당 등에 나누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장 팀장은 매일 순례단 보다 먼저 도착해 공양을 준비하고 뒤에 남아 뒷정리를 해 걷는 모습을 자주 보기 힘들다면서도 외호대중이기는 해도 순례단과 함께 걷고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내 역할 안에서 최선을 다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순례단 공양을 위해 봉은사와 지역 도시락 업체로부터 매일 음식을 공수해오는 공양팀.

 

지역 협조 요청 등 길 열어주는 역할
■ 진행1팀장 대진스님(구례 천은사 주지)

순례단이 지나는 길은 일반 도로와 자전거 도로, 숲길과 찻길 등 잘 닦이지 않은 길이 대부분. 150여 명 순례단이 한 줄 거리두기를 하며 지나는 데는 무엇보다 지역사회 협조가 필수다. 진행1팀장을 맡은 대진스님은 순례단이 지나는 곳마다 지자체 및 경찰들의 협조 요청을 구하고 행렬 보다 먼저 앞서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18일 간의 걷기 일정 동안 전라도와 경상도를 넘나 들며 협조 공문을 보내고 지역 경찰과 소통하며 순례단이 어려움 없이 전 구간을 통과할 수 있도록 하는 외호대중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순례단이 떠난 뒷자리를 책임지는 것도 스님의 역할. 대진스님은 혹여 작은 쓰레기라도 하나 남아 있지는 않은지 신경쓰게 된다어떻게 생각하면 작은 부분일 수 있지만 천리순례단이 우리 한국불교의 얼굴이나 마찬가지인 만큼 순례단이 지난 자리만큼은 깨끗하게 정리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스님은 무엇보다 외호대중 역할을 하며 뜻하지 않게 순례단의 뒷모습을 많이 바라보게 된다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 스스로도 내 뒷모습은 어떤지, 바깥 세상의 눈으로 보면 어떤 사람인지 성찰하고 반성하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대진스님은 이번 천리순례의 기치가 포교인 만큼 나 또한 스스로 올바른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 그 길이 옳은 길이면 함께 가자고 적극 권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외호대중으로서 순례단 가는 길이 꽃길이 될 수 있도록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박봉영 기자 bypark@ibulgyo.com
이경민 기자 kylee@ibulgy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