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의 오늘은 詩] 청노루 박목월

2018-02-22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청노루

                                            박목월

머언 산 청운사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잎 피어나는 열두 굽이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여운이 오래 남는 명시다. 멀고 가까운 풍경의 마주 놓음도 좋을뿐더러 근경을 표현할 때에는 아주 세세하여 더욱 미묘하다. 가령 먼 곳에 있는 청운사를 바라보면서 그 절 지붕에 올린 기와의 오래됨과 낡음을 눈앞에서 보고 있는 듯 표현했다. 청운사(靑雲寺)와 청노루에서의 ‘청(靑)’은 “시각적으로 청색감을 강조하려는 뜻에서” 썼다고 시인은 밝혔는데, 이 빛깔은 현실계를 벗어난 듯한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문학평론가 이숭원 선생은 ‘청운사’와 ‘자하산’이 ‘푸른 구름이 어린 절’과 ‘붉은 노을이 어린 산’이라는 뜻을 갖고 있지만 어휘의 음감(音感) 때문에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고, ‘청운사’는 맑고 단아한 느낌을, ‘자하산’은 넓게 퍼지는 느낌을 준다고 탁월하게 해석했다. 청노루의 작고 깨끗한 눈에 하늘의 구름이 비친 것을 심안(心眼)으로 읽다니 실로 신이할 뿐이다.

[불교신문3370호/2018년2월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