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합’도 좋지만 ‘원칙’이 먼저다

무차회 긴급 토론회에 대한 단상

2017-08-28     홍다영 기자

지난 25일 저녁 서울 인사동의 모 커피숍에서 종책모임 무차회가 주관하는 토론회가 급하게 열렸다. 주최 측은 ‘35대 총무원장 스님께 드리는 제언’을 주제로 한 종도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자리라고 설명했다. 무차회 소속 중앙종회의원 스님들이 대거 참석한 토론회에서는 차기 총무원장 스님이 갖춰야 할 자질과 역량을 주제로 다양한 의견이 제기됐다. 또한 선거를 앞두고 야기된 분열과 혼란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한 이야기가 오갔다. 

종단 운영에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는 종회의원으로서 폭넓은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자 하는 충정은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일부 참석자들이 종헌종법 수호에 모범을 보여야 함에도 원칙을 깨려 한 부분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이날 토론회에는 해종언론으로 지정된 2개 인터넷 매체가 초청됐다. 이들 매체는 지난 2015년 11월 국정원 결탁 및 정보거래 의혹과 지속적인 편파 왜곡보도를 일삼는 등의 반불교적인 행위로 종단 최고 대의기구인 중앙종회 결의로 해종언론으로 지정됐다. 이를 존중해 알다시피 현재까지 종단을 비롯한 산하 기관, 전국 사찰에서는 각종 취재제한과 광고게재 금지 등을 시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무차회 소속 종회의원 스님들은 자신들의 공적인 행사에 해종매체를 불러들였다. 사실상 취재를 해달란 요청이었을 것이다. 종회의 결의를 스스로 깨겠다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는 대목이다.

토론회 현장에서 취재한 기자는 “해종언론이 토론회에 어떻게 참석하게 됐는지” “무차회는 종회 결의를 스스로 깨트리겠다는 것인지” 배경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 하지만 몇몇 스님들은 변명에 가까운 답변으로 외려 논란만 키웠다. “해종언론은 시대착오적인 것”, “해종언론 지정은 큰 의미가 없다”는 발언이 잇따랐다. 

이를 전제한다면 종단의 최고입법기구인 중앙종회가 2개 인터넷매체를 해종언론으로 지정한 행위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요 ‘무의미한 조치’가 된다. 해종언론 지정에 반론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중앙종회의 오랜 숙고와 논의 끝에 이뤄진 공적이고 분명한 약속이다. 종헌질서 수호에 앞장서야 할 의원 스님들이 원칙을 어긴다면, 과연 종도들을 향해 법과 질서를 지키라고 요구할 명분이 설 수 있을지 궁금하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토론회에서는 종단으로부터 중징계를 받고도 전혀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명진스님을 두둔하는 발언도 나왔다. 알다시피 명진스님은 종단을 악의적으로 폄하하고, 봉은사 주지 재직시절에는 종단 승인 없이 사찰재산을 양도하려한 혐의로 지난 5월 제적 징계를 받았다.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호법부와 호계원의 등원 요구를 번번이 무시하며 스스로 반론권을 포기했다. 이후에는 불교와 무관한 외부세력을 동원해 반전을 도모하는 형국이다. ‘종단 적폐청산’을 주장하며 조계사 앞에서 단식에 들어간 스님은 자신과 친분이 있는 유명인사들을 앞세워 ‘징계 철회’를 관철시키려는 모양새다. 자신의 행보에 대해서는 사과 한 마디 없었다.

명진스님에 대한 징계는 명백히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행됐다. 그러나 토론회에서 어느 스님은 “명진스님 징계는 팟캐스트에서의 부적절한 발언이 주된 것이다”, “단식하는 명진스님도 소중한 자산이다”라며 이상한 해석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단식을 감행한다면 그 어떤 막중한 죄를 저질렀더라도 봐줘야 한다는 말인가. 명진스님에 대한 용서를 논하기 전에, ‘무엇이 진정으로 종단과 불교를 위한 길인지’ 자숙부터 하라고 따끔하게 지적했어야 하는 게 먼저 아닌가.

제35대 총무원장 선거가 한 달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특히 징계 받은 스님들과 불교 외부세력이 주도하는 ‘적폐청산’ 프레임으로 인해 어느 때보다 혼란스럽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이합집산을 이해는 한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종단의 중진 스님들이 애종심을 가지고 원칙과 질서를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편 토론회에서 어느 스님은 기자의 문제제기를 '함량 미달'이라고 깎아내렸다. '순진한 생각'이라고 여겼던 모양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원칙을 지키자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