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역사’ 자세하게 표현

 
 
신라 눌지왕 24년에 고구려의 고승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하며 창건한 가람이라고 불리는 천년고찰 구미 도리사. 고려 때까지 사찰의 면모를 유지해 온 도리사는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사격이 기울다가 화마로 대웅전과 전각이 소실됐다.
 
 
상체 벗은 모습으로 암벽을 들고 있기도
 
보통 수문신장 역할…판벽에는 흔치 않아
 
 
이후 조선 영조 5년(1729) 인근 금당암으로 사찰을 옮겨 중창한 뒤 순조 23년(1823)에 조사전을 중건하고, 고종 12년(1875)에 극락전을 중수했다. 근래에 들어서는 1920년 아도화상 진영을 조성했고, 1982년 세존사리탑에서 발견된 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적멸보궁을 신축했다. 경내에는 아도화상을 기리는 유적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적멸보궁과 태조선원 사이에 위치해 있는 아도화상의 성상이다. 2002년 새로 봉안한 이 상은 낙동강과 해평면 일대를 내려다보고 있는 곳에 위치해 있어, 주위를 아우르는 스님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사진>구미 도리사 극락전에 그려져있는 금강역사.
 
이와 더불어 경내에는 지난 1996년 1월20일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318호로 지정된 극락전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전각은 1870년 중건한 경복궁 근정전 공포와 방식이 비슷해 조선후기 건축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어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1600년대 조성된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봉안돼 있는 도리사 극락전 외벽 양쪽에는 역사와 숨결이 오롯이 배여 있는 금강역사(金剛力士)가 그려져 있어 눈여겨 볼만하다.
 
금강역사는 호법신장의 대표적인 신장을 말하며 그 모양이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원래 금강(金剛)은 8대 보살이 화현해 나타난 마두명왕, 대륜명왕, 군다리명왕, 보척명왕, 강삼세명왕, 대위덕보살, 부동명왕, 무능승명왕 등 8대 명왕을 말한다. 또 명왕은 보통의 방법으로 교화하기 어려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분노의 상으로 나타난 존을 칭한다. 여러 가지 무기를 들고 부처와 불법을 수호하는데, 보기만 해도 힘이 솟구치고 가슴을 뛰게 한다.
 
금강신, 집금강 등으로도 불리는 금강역사는 원래 사찰 문의 좌우에 서서 금강저 등을 들고 수문신장의 역할을 하는데, 도리사의 경우처럼 극락전 판벽에 그려져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오랜 시간 불법(佛法)을 수호하고 있는 극락전 금강역사는 상체는 벗은 모습으로 생동감 있게 표현됐다. 손에는 깨지지 않는 금강저를 들고 있거나 힘이 장사로 암벽을 들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띈다. 다만 아쉽게도 이 벽화는 현재 채색이 박락돼 하체는 알아볼 수 없다.
 
허정철 기자 hjc@ibulgyo.com
 
※참고자료=관조스님 사진집<사찰벽화>(미술문화)
 
 
 
[불교신문 2572호/ 11월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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