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관련 고문헌을 수집하는 고양 원각사 주지 정각스님(동국대 겸임교수)은 최근 19세기말 조선 여행기를 남긴 비숍여사의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 초간본을 입수했다. 이 책에는 조선 후기 금강산 묘길상, 용미리 미륵, 탑골공원 비석 등을 세밀하게 그린 삽화가 초간본 발행 당시 생생한 모습을 담고 있다. 비숍여사의 삽화를 통해 100여 년 전 조선불교를 만나보자.

 



금강산 묘길상ㆍ용미리 미륵·탑골공원 비석 등


                  100여년전 불교 모습 삽화로




◀1880년대 말 금강산 묘길상 마애불. 삽화 오른쪽에 있는 선비의 키와 비교하면 묘길상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오른쪽 아래는 1880년대 말의 파주 용미리 마애불. ‘미륵스’라고 표현했다.


 

○…금강산 묘길상 마애불은 높이 15m, 폭9.4m로 고려시대 나옹선사가 모셨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웅장한 규모의 마애불은 기품과 위엄이 자연스럽게 표출되고 있으며, 묘길상 앞에 있는 석등 크기도 3.6m에 이른다. 비숍 여사의 책에 나와 있는 삽화에는 두루마기에 갓을 쓴 선비가 얼굴을 들고 손으로 가리키며 마애불을 바라보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용암사에 있는 ‘용미리 마애불상’은 고려시대 조성된 것으로 높이가 17.4m에 이른다. 현재 보물 제 93호로 지정돼 있으며, 거대한 자연암벽을 그대로 마애불로 모셨다. 특히 부처님 머리 부분을 따로 조각해 얹어 놓은 특이한 형식으로 참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오른쪽은 석가모니불, 왼쪽은 다보 여래상이라고 여겨진다. 비숍의 책에 등장하는 용미리 마애불상은 ‘MIRIOKS’라고 설명이 되어 있다. ‘미륵’이라는 단수(單數)가 아닌 ‘미륵스’라는 복수(複數)로 표현해 놓았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 있는 대원각사비(大圓覺寺碑)는 조선 성종 2년(1471)에 건립된 것으로, 지금도 남아있다. 삽화에는 남루한 차림의 어린이 여섯 명이 비에 올라가 있는 장면이다. 원각사는 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창건한 절이다. 이후 관아로 사용되다 세조가 간경도감을 설치하고 <원각경 (圓覺經)>을 번역할 때 양주 회암사에서 사리를 모셔와 다시 원각사를 지었다고 한다. 현재 사찰은 사라지고, 대원각사비와 13층 사리탑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각스님은 “조선후기 성보문화재의 관리 상태를 짐작할 수 있는 삽화”라면서 “당시 상황을 인식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지금의 성보문화재’를 잘 관리하여 후대에 물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사진> 1880년대 말 대원각사비. 남루한 차림의 어린이들과 방치되어 있는 비가 시대상황을 대변한다.

비숍은 1883년부터 1887년 사이에 조선을 네 차례 방문했으며, 1898년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urs)> 을 펴냈고, 1904년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양=이성수 기자


[불교신문 2478호/ 11월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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