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세불교 미공개 자료를 찾아⑤

 

동산스님 30여장 사진 공개〈上〉


  1930년대 후반 만공스님이 공주 마곡사 주지를 지낼 무렵 촬영한 사진. 앞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 앉아있는 스님이 만공스님이다. 100여명이 넘는 스님들이 당시 마곡사의 사세를 보여주는 듯 하다. 사진제공=수덕사 동산스님


만공스님의 수제자 보월스님의 법제자 동산(東山)스님이 그동안 소중하게 보관해온 근현대 불교 사진을 본지를 통해 공개했다. 동산스님이 공개한 30여장의 사진에는 공주 마곡사 주지 시절의 만공스님을 비롯해 예산 수덕사, 구례 화엄사 등의 모습이 담겨있다. 또한 순천 송광사 강원과 철원 심원사 화산경원 학인들도 만날 수 있다. 본지는 동산스님이 공개한 사진을 두 차례에 나눠 소개한다.

 

사진 속 스님들 한복차림…‘청년승가’ 의중 엿보여

석굴암 불전 앞 꽃바구니…당시 불자들 신심 대변



○…동산스님이 공개한 사진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마곡사 대웅보전 앞에서 만공월면(滿空月面, 1871~1946)스님이 대중들과 함께 찍은 모습이다. 이 사진에는 맨앞줄에 만공스님과 마곡사의 노스님, 소임자를 비롯해 그 주위로 100여명에 가까운 대중들이 함께하고 있다.

이번에 동산스님이 공개한 사진은 1930년대 후반 만공스님이 마곡사 주지를 맡았을 당시에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만공스님은 1930년대 중반 ‘조선불교선학원종무원’ 종정을 지내는 등 일본불교에 맞서 조선불교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앞장섰다. 이 사진 각별한 관계를 보여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1935년 5월10일자 동아일보는 마곡사 주지로 만공스님을 추대했다는 내용의 보도를 하고 있다. 당시 만공스님은 “적임이 아님으로 사양한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대중들의 뜻을 따라 마곡사 주지 소임을 잠시 보았다.

<사진> 1940년대 후반 또는 1950년대 초반에 경주 석굴암에서 도반과 함께 한 동산스님. 오른쪽이 동산스님이다.

이번에 공개된 사진에서 한가지 안타까운 점은 ‘암흑의 일제강점기 상황’을 보여주는 장면이 들어있다는 사실이다. 대웅보전 주련에 일장기 문양이 있고, ‘國威宣揚(국위선양)’이라고 쓰인 내용이 걸려 있다. 또한 칼을 들고 있는 일본 순사(경찰)가 앞줄에 앉아 있어 ‘나라 잃은 조선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969년4월22일 화산경원 23회 사교졸업 박연 여행’이라 쓰인 사진도 이번에 공개됐다. 화산경원(華山經院)은 금강산 유점사 말사인 철원 심원사에 개설된 스님들의 교육기관이었다. 근대에 설립된 화산경원은 서암.월하.대은.운허스님 등이 교학을 공부한 유서깊은 곳이다. 이번에 공개된 사진은 사교과를 마친 학인 10명이 졸업을 기념해 개성 성지순례를 하면서 개성 박연폭포 앞에서 촬영한 것으로 동산스님을 비롯해 당시 학인스님들의 모습이 들어 있다. 촬영시기는 1942년이다. 아쉽게도 사진의 일부가 훼손됐지만, 젊은 시절 교학연찬에 매진했던 스님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의미있는 자료이다.

○…순천 송광사 강원 학인들이 구례 화엄사를 참배하고 찍은 사진도 이번에 공개됐다.

동산스님을 비롯한 송광사 강원 학인 10여명이 화엄사를 참배한 후 각황전 뒤 언덕위에 자리한 ‘사사자삼층석탑(四獅子三層石塔)’앞에서 기념촬영을 한 것이다.

사진에는 ‘16.5.11’로 촬영 시기가 표시돼 있다. 16은 일본 연호인 소화(昭和) 16년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사진은 1941년 5월에 촬영된 사진이며, 앞줄에 앉은 스님들은 당시 송광사 또는 화엄사의 강사(講師)스님들로 추정된다.

사진에 나타난 사사자삼층석탑은 지금보다 보존상태가 매우 좋아 보인다. 또한 탑 뒤의 울창한 산림은 지리산의 아름답고 웅장한 모습을 대변하는 듯 하다.

그리고 사진 속의 스님들은 대부분 한복차림을 하고 있어 일제강점기라는 어려운 상황에도 민족의식을 지키고자 했던 ‘청년승가’의 의중을 보는 듯 하다.

<사진> 1941년 5월 순천 송광사 강원 학인들이 구례 화엄사를 참배하고 찍은 사진. 뒷줄 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동산스님이다.

○…동산스님이 공개한 사진에는 ‘全州探勝(전주탐승)’이라 메모된 것도 있다. 이 사진은 18명의 스님이 전주의 한 누각 앞에서 찍은 것이다. 양복차림의 한명을 제외한 나머지 17명이 모두 흰색 두루마기를 착용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3명의 스님은 손에 중절모자를 들고 있으며, 두 스님은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도반의 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 사진에서 동산스님은 홀로 108염주를 목에 걸고 있다. 이 사진의 주인공은 송광사 강원 학인들로 보이며, 1941년 5월 구례 화엄사 참배에 나선 길에 전주를 들러 찍은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촬영시기는 알 수 없지만 1940년대 후반 또는 1950년대 초반에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굴암 사진도 한 장 공개됐다. 말끔하게 정돈된 석굴암 본존불 앞에서 동산스님이 도반으로 보이는 스님과 함께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스님들 뒤로는 한 여신도가 석굴암 부처님께 초공양을 올리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본존불 앞에는 나무로 만든 불전함이 놓여있다. 그 위에는 목탁이 있으며, 화환으로 보이는 꽃바구니도 불전함 위에 놓여 있어 당시 불자들의 지극한 신심을 대변하고 있다.

장성 백양사 승가대 학장 법광스님은 “노스님들이 간직하고 있는 사진은 우리 근현대 불교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귀중한 자료”라면서 “동산스님께서 공개한 사진들을 통해 근현대불교사를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할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자료 공개에 대해 “각각의 사진마다 일제강점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열심히 수행정진했던 스님들의 마음과 자세를 읽을 수 있다”면서 “앞으로도 노스님들이나 노재가자들이 보관하고 있는 각종 자료들이 공개되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이 나오고 있다.





“옛 모습 통해 후학들 정진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인터뷰 / 사진 공개한 동산스님

“사진이 별로 없어. 뭐 도움이 될라구” 그동안 소중하게 보관해온 자료를 불교신문을 통해 공개한 동산스님은 90이 훌쩍 넘은 노구가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건강했다. 동산스님은 “옛날에는 스님들이 참 열심히 공부했다”면서 “후학들이나 재가불자들이 옛 사진을 보고 수행정진하는데 작은 도움이라도 됐으면 좋겠다”며 환한 미소를 보였다.

금오스님의 수제자인 보월스님은 두명의 전법제자를 두었다. 금오스님과 동산스님은 만공스님의 권유로 보월스님 입적후에 전법제자가 됐다. 금오스님은 보월스님 생전에 다년간 시봉했지만, 동산스님은 보월스님을 직접 모시지는 못했다.

동산스님은 “만공스님께서는 보월수좌가 훌륭한 수행자이니, 늘 마음 속에 가르침을 잊지 말며 정진하라고 당부하셨다”고 말했다. 그런 까닭인지 덕숭총림 수덕사의 동산스님 요사채에는 보월스님 진영과 함께 만공스님이 직접 써준 보월스님 전법게가 소중히 모셔져 있다.

<사진> 그동안 보관해온 사진을 본지를 통해 공개한 동산스님이 법은사 보월스님의 진영 앞에 섰다.

경허ㆍ수월ㆍ혜월ㆍ만공ㆍ한암스님 등 역대 선지식이 주석했던 서산 천장암(지금은 천장사로 이름이 바뀌었음) 주지 소임을 오랫동안 보았던 동산스님은 “화두를 순일(純一)하게 참구하며 오로지 불법에 근거해 수행하라는 만공스님의 가르침은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생생하다”면서 “이번에 공개한 사진들이 근세불교사를 연구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수덕사=이성수 기자

사진ㆍ문서 등 근세자료를 소장한 분들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soolee87@ibulgyo. com, soolee87@naver.com


[불교신문 2456호/ 9월3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