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갖추고 있는 마음의 경전을 빛나게 하라”

우주는 한계가 있지만 
심성에는 한계가 없어
생각이 천지자연에 빛을 발한다 

“모습은 늙어 가는데/ 마음은 계속 젊어지니 이를 어쩌면 좋으냐// 시간과 공간은 늙어가도/ 내 본성(本性)은 계속 새로워지는구나.…(중간 생략)…사람마다 한 권의 경전이 있는데(我有一卷經) 그 것은 종이나 활자로 된 게 아니다.(不因紙墨成) 펼쳐 보아도 한 글자 없지만(展開無一字) 언제나 환한 빛을 발하고 있네(常放大光明). 문자로 된 책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언어도단(言語道斷)하고 심행처멸(心行處滅)한 자리를 드러낼 수는 없다. 그러니 사람마다 본래부터 원만히 구족하고 있는 마음의 경전이 빛을 발하도록 하라”(활안스님 선 법문집 <여보게, 설거지는 했는가> 서문 중에서)
 

어렵게만 느껴지던 스님이 환히 미소 지으니 천진불이 되었다.

조계산의 도인(道人). 솔직히 말해 머릿속엔 ‘괴팍한 스님’으로 그려져 있었다. 3월26일 ‘잘해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KTX와 승용차를 이용해 서울을 출발한지 4시간여 만에 송광사 천자암(天子庵) 염화조실에서 스님과 마주 앉았다.

“생각이, 천지자연에 늘 하자 없이 빛이 난다. 백년 천년을 살아도 생의 뒤처리를 잘못하면 모든 게 헛것이야” 자리에 앉자마자 또 알듯 모를 듯 한 법문이 시작됐다.

“시간은 허물이다. 공간은 무력이다. 실물은 빛이 난다. 이렇게 정리해” 명함을 받아들면서 던진 말씀이라 종단과 그 신문사에 종사하는 사람은 이래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들렸다. “사람을 관리할 줄 알면 돈은 거기서 나오지. 돈을 먼저 관리하면 사람들이 싫어해.” 사람을 믿지 못하면 주변의 인재를 잃게 되고, 결국 새로운 것도 구상하지 못해 남에게 뒤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방법을 알려주든지 아니면 스님이 산에서 내려와 그런 인재를 찾아주면 좋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스님은 비웃는 투로 한마디 던졌다.

“야야, 너는 게으른 것이 으뜸이니 참 살기 좋겠다.” 찔리는 데가 있어 ‘스님에게 콕 찍혔다’고 자백하니 의외의 반응이다.

“착하다, 착하다 하는 그 놈이
그것을 가로채서 너를 망쳤구나”

“내 말 재밌지? 게으르다, 게으르다 하는 그 놈이 과정을 거치면서 부지런한 것이 나오거든. 우주는 한계가 있지만 심성(心性)에는 한계가 없어. 심성이 밝아야 해” 그렇다고 심성이 착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반드시 잘 살고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오히려 그 반대 사람이 성공하는 경우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가 제대로 한방 맞았다.

“착하다, 착하다 하는 그 놈이 그 것을 가로채서 너를 망쳤구나. 사람의 심성은 천지간에 받아들일, 천지간에 혜택 받을 시간 없이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자기마음조차 자기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게 중생의 마음이 아닌가. 어떻게 무슨 공부를 해야 하는지 알려줘야 하지 않느냐는 표정을 지었더니 스님은 뜬금없이 ‘몇 살이냐’ ‘어디서 켰냐?’고 물으며 ‘그만 승복하라’고 다그치듯 말한다.

“이제부터 너는 열다섯 살 해라. 더듬더듬해서 좋겠다”며 윤봉길 의사 얘기를 꺼냈다. “죽음의 대가로 보면 칭찬할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아직 끝이 안 난 상태’”라고 한다. “더 살아야 했는지, 꼭 죽어야 했는지, 상대방의 엄습, 피해는 당하지 않아야 하거든.” 한 인재의 희생을 안타까워하는 것 같았지만 스님의 화두가 떠올랐다. ‘나고 죽는 이전의 나는 무엇인가(生滅未生前 是甚)’

“처음 왔지?”

옆에서 거들어주던 사무장이 다른 분들은 대부분 몇 말씀 못 듣고 돌아갔다고 귀띔했다. 할 만큼 했다는 뜻 같았지만 아직도 못 알아들은 말이 많아 일어설 마음이 나지 않았다.

“너 같은 경우는 새 아이큐(스님은 아이디어나 구상을 이렇게 표현하는 듯했다)를 창작해 내야 한다. 자꾸 모방하려 하지 말고. 그래야 발전하는 것이야. 앞으로 잘하면 불교가 국가를 주관할 수도 있어. 인물이 없으면 일을 못해, 논밭은 많은데 농사지을 줄을 몰라. 농사를 제대로 지을 사람이 없다는 말이지.”

스님은 남북의 현황, 둘의 관계, 국제정세까지 부분적으로 열거했다. “남북이 다 논이야. 무엇이 논이냐고? 인재가 다 논이야. 지금 그것을 찾아내야 해. 한반도에 있는 사람이 시의적절한 논문도 발표하고 국제정세를 이끌어 주도적인 역할을 할 그런 인재를 찾아내야 해. 그래야 남북관계에 있어서 주인공 노릇을 할 것 아닌가.”

스님은 과일을 하나 집어 들며 다시 말했다.

“가는 길에 요놈 하나 먹어라. 안 깨지면 느그 둘이 머리로 박아 깨 먹어라. 사람은 재밌게 살아야 해. 첨단과학은 갈수록 고립되어 가.” 경쟁이 치열해지는 만큼 심성도 메말라가니 본래 심성이 다치지 않고 빛이 나게 잘 관리하라는 말씀인가 싶어 또 물었다. ‘스님이 앞장서서 알려줘야 하지 않느냐’고.

“제자리에 있어야 권위가 서지. 모르는 사람이 백이고 아는 사람은 하난데 통일이 안 되잖아?” 시절인연을 얘기하는 걸까. “사람을 발굴해야 한다. 혼자는 일을 못하는 거야. 사회여건이 맞아야 한다는 소리거든. 생산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기회가 오면 처사와 보살, 신도들의 사회활동 기반을 만들어야 해. 거기서 뛰어난 사람은 불교계지도자로, 사회의 지도자로 만들고 신도들이 힘이 있으면 나라도 주관할 수 있지 않나?” 스님은 그냥 있다 보면 국가에서 스님들을 관리하게 될지도 모른다며 다시 당부했다.

“불교는 내용은 좋아. 사회에서도 불교를 활용해야 하는데 인물이 없어. 그래서 (불교를) 못써먹어. 종교라는 말도 쓰지 말아야 해. 개개인의 특성을 잘 알아보고 각 분야에 인재를 발굴해 인재로 키워야 해.”

국가에서 먼저 불교계에서 인재를 찾게 둘 것인가. 아니면 불교 스스로 인재를 발굴해 육성할 것인가. 또 하나의 화두를 스님은 던지는 것 같았다. “어서 가 봐. 나 바쁘다. 과거는 경험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나라가) 잘 번영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선지식도 지금 현실에 잘 맞는 선지식이라야 해. 아무리 논밭이 좋더라도 현실에 맞지 않으면 모두 그림의 떡에 불과해. 과거는 끝났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 이제부터 계속 새것이야.”

스님은 다음 일정이 있는 것 같았지만 불청객에게 마음의 선물이라도 하나 줘서 보내려는 듯 꽤 오랜 시간을 배려했다. 40분을 넘어섰다. 물 한 모금이 생각나 염화실을 나와 돌아서니 800여 년간 조계산을 지켜온 천연기념물 ‘쌍향수’가 다시 눈에 들어온다.

보조국사 지눌스님과 그 제자 담당스님이 중국에서 돌아와 꽂았다는 지팡이가 같은 방향으로 몸을 돌리며 함께 서 있다. 조계산의 ‘살아 있는 눈’이 얘기하는 ‘새 것’을 알아 볼 ‘이 시대의 담당’은 어디 있을까? 4월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가는 눈발이 발길을 재촉한다.
 

■ 활안스님은…
1926년 전남 담양에서 태어난 활안(活眼)스님은 1945년 순창 순평사로 출가, 1953년 월산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1958년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한 이후 상원사 청량선원, 지리산 칠불암, 범어사, 용화사 등 제방선원에서 40안거를 성만했다.

구산, 전강, 금오, 향곡스님 회상에서 ‘나고 죽는 이전의 나는 무엇인가(生滅未生前 是甚)’를 화두로 수행했으며 50대 초반 스러져 가던 천자암에서 정진하던 새로운 경지를 경험하게 됐다. 스님의 그 순간이 천자암 법당의 주련(柱聯)이 되어 방문객의 눈길을 이끈다.

“깊은 도 통달한 일 할(喝)로 모든 근기 굴복시키고 언어 이전의 큰 기틀로 법륜을 전하도다(通玄一喝萬機伏 言前大機轉法輪)/ 법계의 달빛이 한 손바닥에 밝았으니 만고의 광명이 다함이 없네(法界長月一掌明 萬古光明長不滅)”

스님은 1977년부터 송광사 천자암 조실로 주석하면서 늘 일과 수행을 함께 하는 선농일치(禪農一致)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83세인 현재까지 새벽 2시부터 5시 반까지 도량석과 예불, 천도재를 직접 집전하여 대중들에게 조차 게으름을 피울 틈을 주지 않는다. 특히 정초와 백중 때 1주일간 하루 17시간을 꼿꼿이 서서 하는 사분정진(四分精進), 매년 한 차례 100일간 방문을 잠그고 수행하는 폐관정진(閉關精進) 등 천짐암의 수행청규가 알려지면서 제방 선객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1999년 조계종 원로의원으로 선출되면서 대중과의 만남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

순천=김선두 기자 sdkim25@ibulgyo.com
사진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불교신문 2415호/ 4월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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