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한국불교는 조선시대의 숭유억불정책과 일제강점기에도 불구하고 선과 교학, 종단 재건, 역경사업, 도제양성, 포교분야 등에서 활동한 스님들의 활약으로 그 명맥을 유지 발전시켜 왔다.

1902년 동대문 밖에 세운 원흥사를 시작으로 1910년대 일제강점기에는 각 본사급 사찰이 인구가 밀집된 도심지역에 말사 혹은 분원 형태의 도심포교당을 개설하기 시작했다. 해방 직후 일제강점기 잔재의 청산으로 인한 갈등과 분쟁으로 인해 1962년 통합종단 대한불교조계종 출범 전까지 포교활동은 극히 미약했다. 이후 1966년 불교계가 ‘한국불교 중흥의 해’라는 기치 아래 역경과 포교, 도제양성을 3대사업으로 확정한 것은 포교를 종단적 차원에서 종책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했다는 큰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이후 포교는 종단의 3대 종책사업으로 굳어지게 되며 개혁종단 이후 포교원이 별원화돼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숭유억불 왜색불교 극복 노력

선ㆍ교 현창…종단 재건 박차


근.현대 한국불교의 포교방법으로는 선과 교학을 통한 포교, 역경사업을 통한 포교, 도제양성을 통한 포교 등으로 크게 나눠볼 수 있다. 선과 교학을 통한 포교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경허스님이다. 한국불교 근대 선의 중흥조로 일컬어지는 경허스님은 일제강점기에 기울어가던 한국 선불교를 진작시켜 선풍을 일으켰다. 경허스님과 더불어 한국 근대 선의 양대산맥을 이룬 용성스님도 선풍 진작에 크게 힘써 오늘날 널리 선을 포교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이밖에도 만공, 혜월, 수월, 효봉, 도산, 경봉, 고암, 전강, 구산, 성철, 숭산스님 등이 선을 통해 중생을 구제하고 포교한 대표적인 스님들이다.

또한 역경사업을 통한 포교는 운허스님을 통해 본격화됐다. 일제강점기 때 용성스님이 경전번역사업을 전개하긴 했지만 본격적인 역경사업은 운허스님에 의해서다. 운허스님은 1961년 국내 최초로 <불교사전>을 간행했으며, 1964년 동국역경원을 설립한 뒤 <한글대장경>간행에 전념하며 근대 역경사업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인재양성을 위한 학교를 설립하고 설법과 강연으로 대중교화에 힘쓴 스님들도 있다. 대표적 인물로 손꼽히는 박한영스님은 금봉스님.진응스님 등과 함께 근대불교 3대 강백으로 일컬어지 스님으로서, 현 동국대의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교 교장직을 맡으며 교육 일선에 투신했다. 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만암스님은 전통과 현대를 겸비한 승려교육을 위한 광성의숙을 설립하고 종래의 강원제도를 혁신한 불교교육을 전개해 나갔다.

이와 더불어 불교정화운동에 앞장섰던 청담스님은 성철스님 등과 봉암사 결사를 이끌어 조계종 수행가풍의 제도적 기틀을 세웠으며 불교개혁과 사찰운영 등 불교 행정에서도 새로운 토대를 구축했다.

근.현대 한국불교의 포교 전개에는 개인 뿐만 아니라 단체도 앞장섰다. 지역법회의 효시인 불광법회를 비롯해 한국불교 중흥의 초석을 다지고 있는 대한불교진흥원, 어린이.청소년 포교 활성화의 대표적 도량인 화성 신흥사 등이 대표적인 단체로 손꼽을 수 있을 것이다.

[불교신문 2406호/ 3월5일자]



문제1/

불교의 핵심사상인 연기법은 삼법인으로 설명됩니다. 다음 중 삼법인의 내용이 아닌것은?


①제행무상 ②제법무아 ③염화미소 ④일체개고

문제2 /

다음 중 미륵부처님과 관련된 성보가 아닌것은?

①용화수 ②용화전 ③미래부처님 ④지권인(수인)



[불교신문 2406호/ 3월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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