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베살리의 어떤 숲에서 많은 제자와 함께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오비구의 한명인 아사지(馬勝)가 성중에 들어가 걸식하는데 사차카니간타(薩遮尼健子)가 다가와 물었다.

“그대의 스승은 무엇을 가르치는가?”“오온(五蘊)은 덧없는 것이다. 덧없는 것은 괴로운 것이며, 괴로운 것은 나(我)가 없는 것이며, 나가 없는 것은 공한 것이다. 공한 것은 내 것이 아니며, 내 것이 아닌 것은 나의 소유가 아니다. 우리 스승의 가르치는 것은 이와 같다.”

사차카니간타는 이 말을 듣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면서 귀를 막고 자기는 ‘오온은 덧없는 것이 아니라 항상된 것’이라면서 언제 부처님을 만나서 대론(對論)하여 굴복시키겠다고 큰소리쳤다. 그는 베살리 성중에서 젊은이들을 만나 이 같은 자기의 결심을 말한 뒤 그들과 함께 부처님을 찾아갔다. 그는 부처님을 만나자 ‘오온은 항상된 것이며 자기를 따라온 젊은이들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부처님이 물었다.

패배 인정할 줄 아는 것은 큰 용기

좌절과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바탕

 

책임을 남에게 돌리며 화내지 말고

자기잘못 참회하면 향상의 길 열려

“오온이란 항상되지 않고 자아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거짓으로 모인 이름뿐이며 눈덩이처럼 견고하지 않다. 내가 한 가지 비유로 물어볼 테니 아는 대로 대답해보라. 전륜성왕은 자기 국토 안에서 그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력을 갖는다. 하지만 그가 그 권력으로 늙음과 죽음을 묶어두거나 지연시킬 수 있는가?”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그럴 수 없다’고 했다. 부처님은 다시 물었다.

“그러면 오온은 항상된 것인가. 항상되지 않다면 변하고 바뀌는 것인데 그것을 자아라고 할 수 있는가. 자아가 아니라면 나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는 자기의 주장이 이치에 어긋난다는 것을 인정하고 부처님과 그 가르침과 승가에 귀의하는 재가제자가 되기를 청했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 공양을 마련하고 부처님과 제자들을 청했다. 부처님은 보시와 지계와 생천의 차제로 설법하여 그를 기쁘게 해주었다.

한편 과거에 사차카니간타를 따르던 제자들은 자기들의 스승이 부처님의 제자가 된 것을 인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가 부처님을 찾아가 설법을 듣고 오는 것을 보자 기왓장과 돌을 들어 그를 때려죽이고 말았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했다.

“그는 이미 세 가지 번뇌(三毒心)을 없애고 네 가지 진리(四聖諦)를 완전히 터득했다. 그는 곧 괴로움에서 완전히 벗어날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들도 열심히 수행하라.” 

                                                               - 증일아함 30권 육중품(六重品) 제10경

 

스포츠 경기를 보면 승리에도 부끄러운 승리가 있고 패배에도 아름다운 패배가 있다. 오직 승리만을 위해 온갖 추태를 다 부리는 모습은 왠지 가슴이 답답하고 뒷맛이 개운하지 않다. 반대로 지더라도 최선을 다하고 깨끗하게 승복하는 모습은 보기도 아름답다.

패배를 솔직하게 인정할 줄 아는 것은 비굴함이 아니라 큰 용기다. 이런 용기는 모든 좌절과 실패를 딛고 새롭게 일어서는 바탕이 된다. 사업에 실패했거나 경쟁에서 패배했을 때 그 책임을 자기 탓으로 돌리는 사람만이 재기의 기회를 얻는다. 반대로 패배의 책임을 남에게 돌리고 화만 내는 사람은 마음만 상할 뿐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참회할 줄 아는 것은 종교생활의 제일덕목이다. 자기의 잘못된 행동과 그릇된 생각을 인정하는 데서 향상의 길이 열린다. 종교적 회심과 전환도 여기서 일어난다. 그러나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일수록 자기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참회하기를 주저하는 사람이 많다. 지혜의 길을 버리고 미망의 길로 들어가면 해탈의 언덕은 점점 멀어진다. 그런데도 그 미망의 길만을 고집하는 것은 무슨 이상한 쥐약을 먹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홍사성〈불교평론〉 편집위원

[불교신문 2327호/ 5월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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