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뿜어내는 고요한 ‘그 자리’

대적광전은 마하비로자나불을 봉안한 불전으로 대광명전, 대적전, 비로전, 화엄전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대적광전의 적광(寂光)은 번뇌를 끊고 적정(寂靜)한 자리에서 발하는 진지광명(眞智光明)을 의미한다. 대적광전은 때로 광(光)자를 뺀 대적전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대적(大寂)이란 여래가 일체의 산란한 마음을 여의고 드는 선정을 의미한다. 그리고 비로자나불을 모셨으나 주불전이 아닌 경우에는 그냥 비로전이라 부르기도 한다. 때로 화엄전으로 칭하기도 하는 것은 비로자나불이 화엄장세계의 교주이기 때문이다.

<사진설명:금산사 대적광전. 근래에 복원된 건물이다.>

비로자나불은 우주 어디에나 광명을 비춘다고 해서 대광명편조(大光明遍照)여래라고도 하는데, 비로자나불을 모신 불전을 대광명전이라 하는 것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마하비로자나불을 대일여래로 의역하여 부르는 것은 마하가 대(大), 비로자나가 일(日)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대일여래라는 명호는 태양처럼 어둠을 걷어내어 세상을 두루 밝히고, 삼라만상을 자라게 하며, 불생불멸하는 빛을 발하는 비로자나불의 덕성을 나타낸다.

천태종에서는 비로자나불.노사나불.석가여래의 3신으로써 법신(法身).보신(報身).화신(化身)에 배당하면서도, 이 셋은 융즉무애(融卽無碍)하여 하나도 아니며, 다르지도 아니하다고 한다. 결국 비로자나 등이 체(體)는 같으나, 이름만 다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光明 발하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차안의 정토’

대광명전.대적전.화엄전.비로전으로도 불려

해인사.금산사.귀신사.수타사 전각 등이 유명 

비로자나불은 지권인(智拳印)이라고 하는 독특한 수인을 결하고 있다. 지권인은 곧추 세운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 잡고 검지 끝에 오른손 검지를 포개듯이 올려놓은 형식의 수인을 말하는데, 이것은 일체의 무명 번뇌를 없애고 부처의 지혜를 얻는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비로자나불상은 수인만 여타 불상들과 다를 뿐이지 전체적인 모습은 일반적인 불상과 큰 차이가 없다.

 <사진설명:김제 귀신사 대적광전의 편액.>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사찰에서 가장 훌륭한 대적광전 건물이라고 하면 금산사 대적광전이 꼽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86년 의문의 화재로 불타버리고 말았다. 마침 화재가 나기 직전에 작성해 놓은 실측도가 남아 있어서 원형 재현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으나, 원래의 대적광전이 지닌 고졸.웅장한 건축미와 은은한 역사적 향기는 복원하지 못했다. 금산사 대적광전은 정면 7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건물로서, 정면 7칸에는 각각 두 짝씩 모두 열 개의 빗살문이 달려 있다. 출입하는 중앙 칸 외에는 아래 부분에 어름을 내놓았고, 측면 4칸 중 첫째 칸에는 외짝문을 달았으나 나머지는 회벽을 치고 윗부분에는 인방을 가로질러 놓았다.

 

 넓은 법당 안쪽에 치우쳐 길게 마련한 불단에 비로자나불을 비롯한 5구의 대형 불상과 6구의 보살입상이 봉안되어 있다. 중앙에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노사나불과 석가여래가 모셔져 있는데, 이것은 법신.보신.화신의 삼신불 구도를 취한 것이다. 그리고 이 삼신불 왼쪽(동쪽)과 오른쪽(서쪽)에 각각 약사여래와 아미타불을 모셨는데, 이것은 약사여래가 동방유리광세계 교주이고, 아미타불이 서방극락정토의 주재자이기 때문이다. 다섯 부처님 사이에는 관음.대세지, 문수.보현, 일광.월광보살 등 아미타불, 석가여래, 약사여래의 협시보살이 배치되어 있다. 금산사 대적광전 외에도 현재 우리나라 사찰에서 비로자나불을 모신 유서 깊은 대적광전을 찾아 볼 수 있는데, 예컨대 해인사 대적광전, 귀신사 대적광전, 기림사 대적광전, 수타사 대적광전 등이 그것이다.

경남 합천에 있는 해인사 대적광전(시도유형문화재 제256호)은 조선 성종 때 중창한 불전으로 원래의 이름은 비로전이었다. 지금의 대적광전은 1818년 중건한 것으로, 정면 5칸, 측면 4칸인 큰 규모의 불전 건물이다. 대적광전은 추사 김정희가 쓴 상량문과, 해강 김규진이 쓴 편액 글씨, 그리고 고종과 흥선대원군이 쓴 주련 글씨로 유명하다.

특히 대적광전 건물 네 방향에 걸린 현판이 이채로운데 그 내용을 보면, 건물 남쪽에 ‘大寂光殿’, 서쪽에 ‘法寶壇’, 동쪽에 ‘金剛戒壇’, 북쪽에 ‘大方光殿’ 이라고 쓰여 있다. 대적광전 정면 여섯 기둥에 걸려 있는 주련의 내용은 〈화엄경〉 제11권 비로자나품의 대위광 태자의 게송을 인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인사 대적광전 안에는 일곱 불상이 모셔져 있다. 법당 안을 향해 볼 때, 왼쪽에서부터 관음보살, 문수보살,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고, 맨 가운데에 본존 비로자나불이 봉안되어 있다. 다시 그 옆으로 지장보살, 보현보살, 법기보살이 차례로 봉안되어 있다. 본존 비로자나불상은 1769년에 조성된 것이며, 그 왼편에 있는 또 하나의 목조 비로자나불상은 가운데의 본존불을 봉안하기 전까지 모셔졌던 본존불이다.

<사진설명:김제 금산사 대적광전 안에 봉안된 불.보살상.>

전북 김제시의 귀신사 대적광전(보물 제826호)은 17세기경에 다시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건물로, 기단은 커다란 면석을 세우고 그 위에 납작한 돌을 얹은 고식(古式) 건물이다. 자연석 주춧돌 위에 약간의 배흘림이 있는 기둥을 세운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인 이 불전은 지붕 처마 받치기 위한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의 건물이다. 규모는 비록 작으나 세부에 옛 법식이 남아 있고 전면의 벽체 처리가 특이한 점이 주목되는 아름다운 건물이다.

경북 경주시의 기림사 대적광전(보물 제833호)은 선덕여왕 때 세워진 후 여러 차례에 걸쳐 수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3칸이며,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기림사의 본전으로 신라시대에 초창되어 임진왜란 때 병화를 모면했으나 심하게 퇴락된 것을 1786년(정조 10)에 경주부윤 김광묵이 사재를 털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의 내부 후면의 안둘레 기둥에는 고주(高柱)를 세우고 전면 내진 양측 귀에는 고주를 하나씩 세웠으나 전체는 통간으로 되어 있는 품위 있는 건물이다.

조선 후기 건물인 수타사 대적광전(시도유형문화재 제17호)은 수타사의 중심 법당으로, 고종 시대에 지어진 건물이다. 정면과 측면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이다.

한편, 대적전이라는 이름을 가진 전각으로는 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의 갑사대적전이 유명하다. 앞면 3칸, 옆면 3칸의 다포식 팔작지붕으로 된 이 불전은 편액이 시사하고 있는 것과 달리 내부 불단에는 비로자나불이 아니라 석가모니불과 그의 양 협시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모셔져 있다. 이 불전에서 주목되는 것은 천장의 연꽃과 태극 문양, 그리고 대들보 등에 시문된 아름다운 물고기와 신선 문양이다.

비로전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불전도 있는데, 충북 괴산군 칠성면 태성리의 괴산 각연사 비로전, 직지사 비로전 등이 그것이다. 각연사 비로전에는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433호)이 모셔져 있는데, 낮은 기단 위에 정남향을 바라보고 있으며, 주춧돌은 신라시대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전체적으로 단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그리고 직지사 비로전은 1990년대에 중수된 건물로, 맞배지붕에 정면 7칸, 측면 3칸의 규모로, 원래는 조선시대 중기에 지어진 건물이었다. 지금의 불전 안에는 비로자나불, 그 좌우의 석가여래와 노사나불이 삼신불 형식으로 봉안되어 있다. 이밖에 증심사 비로전, 불국사 비로전, 범어사 비로전, 직지사 비로전, 수정사 비로전, 제2석굴암 비로전 등의 비로자나불전이 있다.

비로전의 또 다른 이름인 대광명전 건물로는 경남 양산의 통도사 대광명전, 해남 대흥사 대광명전, 성남시 수정구의 봉국사 대광명전 등이 있으며, 명(明)자를 뺀 대광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불전은 신안사 대광전, 수정사 대광전, 표충사 대광전 등이 있고, 보(寶)자를 더하여 대광보전이라는 이름한 건물로는 마곡사 대광보전(보물 제802호) 등이 있다. 끝으로 화엄전이라는 이름을 가진 비로자나불전은 순천 송광사 화엄전, 하동 쌍계사 화엄전 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비로자나불의 속성을 우주에 비유하면 대일(大日)이 되고, 그 본명을 전각에 붙여 부르면 비로전이 되며, 자증과 권능을 드러내 부르면 대적광전, 대광명전, 대적전이 된다. 이처럼 전각의 이름은 각각 달라도 비로자나불을 모신 불전을 일컫는 말임에는 다를 것이 없다. 이것은 결국 체(體)는 같으나 이름만 다른 것에 불과한 것이다. 

허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불교신문 2272호/ 10월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