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 동종 주조 한창인 진천 성종사 작업실

600여 년간 청정하고 아름다운 소리로 번뇌에 쌓인 중생을 쉬게 해줬던 낙산사 동종이 다시 태어난다. 강원도 양양군 일대를 휩쓴 대형 산불에 소실된 지 1년6개월 만이다. 지난 9월29일 찾은 충북 진천 성종사 작업실에서는 낙산사 동종 주조 작업이 한창이었다.
 
<사진설명: 신라시대 때부터 이어져온 전통범종주조방식으로 조성된 낙산사 동종은 이달 중순 이후 사찰에 봉안된다. 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공장 안쪽에서는 2톤 분량의 쇳물을 5시간 째 끓이고 있다. 1200°C까지 올라간 쇳물의 열기로 가을바람마저 훈훈하게 느껴진다. 한쪽에서는 거푸집 위에 얇은 모래를 바르고 있다. 거푸집 밖으로 쇳물이 새어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좁은 틈도 빼놓지 않고 꾹꾹 누르기를 여러 번, 이제 쇳물을 붓고 기다리면 옛 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
이번 낙산사 동종 복원은 중요무형문화재 112호 주철장 보유자인 원광식씨가 맡았다. 원씨는 에밀레종, 상원사종, 천흥사종 등 현재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범종의 제작방법인 밀랍주조방식의 전문가로 지난 1997년 조선시대 이후 맥이 끊어진 밀랍주조방식을 복원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인간문화재 주철장 원광식씨
전통 밀랍주조방식으로 복원
음향측정 후 이달 중순 타종
원광식씨는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ㆍ조선시대까지 이어져온 우리나라 전통적인 범종 제작 방식인 밀랍주조방식을 사용해 종을 복원했다”며 밀랍주조방식이 갖는 장점에 대해 설명했다. “기존의 막주물 기법은 정교한 문양을 넣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반면 밀랍주조방식은 2배 이상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울림부터가 다릅니다. 게다가 조각한 듯 문양이 섬세하고 표면도 매끈해요. 실수로 들어간 머리카락 한 올도 표현되기 때문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설명이 끝나기도 전, 시뻘건 쇳물이 거푸집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우선 쇳물에 불순물이 없어야 해요. 또 거푸집은 1000°C 이상의 온도를 견뎌내야 하기 때문에 열에 강하고 단단해야 합니다. 미리 예열을 하는 이유는 기포가 생기는 걸 막기 위해서인데 이 중 하나라도 맞지 않으면 완벽한 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오랜 세월 아름다운 소리로
불자들의 곁을 지켜주며
깨달음의 길 안내해줬으면…”
16시간 후면 제 모습을 드러낼 낙산사 동종을 상상하면, 원씨는 가슴이 설렌단다. 몸통 일부만 남기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 녹아내린 동종 복원을 복원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특히 종 꼭대기 부분의 용뉴(龍)와 종 전체에 새겨진 글씨를 재현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지난 5월, 범종조각가 윤수천 씨가 7개월간에 걸쳐 완성한 조각이 원씨에게 전해졌다. “종 표면에 부조된 보살상과 연꽃을 칼로 새긴 듯 또렷하게 표현하는 것이 최대 과제였습니다. 경주 부근 감포에서 구한 천연재료 이암(泥岩)을 고무틀에 바르고 또 바르길 3개월, 내형틀을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29일 동종은 마침내 원 씨의 손에서 본래 모습을 찾았다. 오는 13일 음향측정을 통해 소리를 보정하고 난 뒤, 이달 중순 경 사찰에 봉안할 예정이다.
“40년 넘게 해온 일이지만 중생들에게 법음을 전해준 성보가 제 손을 거쳐 완성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떨립니다. 부디 이번에는 오랜 세월동안 아름다운 소리로 사람들 곁을 지켜주고 깨달음의 길로 안내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편 문화재청은 2005년 9월부터 낙산사 동종 복원을 위해 불교미술, 조각예술가, 금속공예, 보존과학 등의 분야별 전문가로 자문단을 구성, 지난 9월29일 주조를 끝냈다.
진천=어현경 기자
[불교신문 2268호/ 10월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