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짝을 지어 나타나 법회수호하며 번뇌 다스려



화려한 보관에 장포 입고 합장한 보살

천의 입고 ‘불자’든 천인으로 표현

조각상 환조상 탱화 등 다양하게 조성



사진설명: 진주 청곡사 목조 대범천ㆍ제석천상(보물 제1232호)현존 대범천ㆍ제석천상 중 국내 유일의 목조상이다. 부처님이 수인(手印)을 결한 것과 같은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어 흥미롭다.

대범천(大梵天)과 제석천(帝釋天)은 인도 고대 신화에 나오는 천신의 거주처이자 그들 자체의 호칭이기도 하다. 불교에서 대범천은 색계(色界) 초선천(初禪天)의 제3천에 해당하는 위치에 있으며, 제석천은 그 아래 세계인 수미산 꼭대기에 있다. 제석천은 천계의 위계로 볼 때 대범천보다 낮은 위치에 있으나 우리나라 불교미술에서는 대부분 두 천왕이 항상 짝을 지어 나타나고 있다. 두 신중은 화려한 보관에 장포(長袍)를 입고 합장한 보살의 모습, 또는 천의를 입고 불자(拂子)를 든 천인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도리천 중심에 제석천이 있고, 제석천 안에 선견성이 있는데, 이곳에서 제석천왕이 사천왕 등 하부 세계의 여러 신중을 관장하고 있다. 제석천왕 주변에는 인다라, 구이, 비루 등 10대 제자가 항상 포진하고 있고, 그 아래에는 2만에 이르는 권속들이 그를 옹위하고 있다. 제석천왕은 이와 같이 위의(威儀)와 덕망을 가지고 있어 천의 세계에서 매우 귀한 왕으로 대접받고 있다.

〈묘법연화경〉 등 불경에서는 제석천왕을 석제환인(釋提桓因)으로 표기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것은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여기에서 ‘석가’는 성(姓)인 동시에 능(能)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제환’은 천(天)의 뜻이 있으며, ‘인다라’는 제(帝)의 뜻이 있어, 이를 합쳐 부르면 능천제(能天帝)가 된다.

이와 같은 뜻에서 제석천왕, 또는 석제환인으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제석천왕은 항상 부처님이 설법하는 자리에 나타나 법회를 수호하는 한편 사바세계 인간의 번뇌와 죄를 다스리는 역할도 수행한다. 제석천이 항상 부처님 설법회상을 떠나지 않는 것은 일찍이 부처님이 도리천에서 어머니 마야부인을 위해 설법할 때 그가 사자좌를 설치하고 보개(寶蓋)를 손수 들고 옆에서 시중을 든 것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제석천과 나란히 등장하는 대범천은 원래 수미산 정상 위쪽에 펼쳐진 공거천(空居天)에 속한 천으로서 색계 초선천(初禪天)에 해당한다. 초선천의 구성은 아래로부터 범중천, 범보천, 대범천으로 되어 있는데, 맨 아래 범중천은 욕계 최고의 세계인 타화자재천으로부터 128만 유순 상층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간의 범보천의 세계는 범중천의 세계로부터 256만 유순, 가장 위쪽의 대범천의 세계는 범보천으로부터 512만 유순 더 올라간 위치에 있다.

사진설명: 경주 석굴암(국보 제24호) 주실의 제석천왕상오른 손으로 불자를 잡고 왼손으로 금강저를 든 자세로 대범천을 향해 서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대범천은 세속적 욕망이나 옳지 못한 일을 떠나 상쾌한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이생희락(離生喜樂)의 경지, 또는 선(禪)에 의해 욕망의 세계를 벗어나 대범천과 비등한 덕을 갖춘 자들의 집단 세계라 할 수 있다. 대범천은 이처럼 공간적 성격의 이상 세계로 관념되고 있는 일종의 경지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이지만 불경에서는 대부분 대범천을 대범천왕으로써 의인화하여 표현하고 있다. 예컨대 마하가섭으로 하여금 염화시중의 미소를 짓게 한 그 연꽃을 석존께 올린 이도 대범천왕이라 했고, 석존께서 설법을 마칠 때 무수한 천자들과 함께 하늘의 기묘한 옷과 만다라 꽃과 마하만다라 꽃들을 부처님께 흩어 공양한 이도 대범천왕이라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불교미술에서 대범천과 제석천은 경주 석굴암 주실(主室)의 대범천상ㆍ제석천상, 진주 청곡사 대범천상ㆍ제석천상과 같이 조각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하동 쌍계사 제석천룡도, 구례 천은사 제석천룡도처럼 여러 신중들을 거느린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그런가 하면, 서산 개심사 영산회상탱, 호암미술관 소장 지장보살도 등에서 보듯이 부처님이나 보살의 호위 신중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사룡산 금정암 제석탱, 안동 모운사 제석탱에서처럼 신의 초상형식을 빌어 나타나기도 한다.
사진설명: ? 영주 부석사 조사당벽화(국보 제46호) 중 제석천상화려한 장포(長袍)를 입은 풍만하고 우아한 귀부인 모습을 하고 있다. 영주 부석사 조사당벽화(국보 제46호) 중 제석천상화려한 장포(長袍)를 입은 풍만하고 우아한 귀부인 모습을 하고 있다.

먼저 석굴암 대범천상과 제석천상을 살펴보면, 대범천은 오른 손으로 불자(拂子 : 중생의 번뇌를 털어내는 도구)를 들어 어깨에 걸치고, 왼손에 정병을 든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유려한 신체 굴곡과 섬세한 손을 가진 대범천상은 초선천(初禪天)의 제3천을 관장하는 왕이라기보다는 여성화된 보살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제석천왕상은 대범천상 바로 옆에 부조되어 있는데, 오른 손으로 불자를 잡고 왼손으로 금강저(인간의 탐욕과 죄악을 씻어주는 지혜를 상징함)를 든 자세로 대범천을 향해 서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몸을 타고 흘러내리는 박대(博帶 : 천의의 넓은 띠)나 옷 주름 등 의상의 세부적 표현이 매우 유려하고 걸림이 없어 붓으로 그린 그림을 능가한다. 제석천왕은 고대 인도의 무용신(武勇神)을 원형으로 하는 신이지만 우리나라 석굴암에서는 이처럼 아름답고 우아한 보살의 모습으로 현현하고 있는 것이다.

현존하는 대범천ㆍ제석천상 가운데서 국내 유일의 환조상(丸彫像)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진주 청곡사의 대범천상ㆍ제석천상(보물 제1232호)이다. 현재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상은 같은 신중인 사천왕이 위엄을 나타내는 분노의 상을 취하고 있는 것과 달리 자비롭고 부드러운 인상을 보여주고 있는 특징을 보인다. 불화에서의 대범천과 제석천 상은 합장한 보살상과 유사한 형태로 된 것이 보통인데, 이 조각상은 그러한 관례를 벗어나 부처님이 수인(手印)을 결한 것과 같은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 또한 흥미롭다. 이 조각상에서 주목되는 것은 얼굴에 흰색 호분을 발랐다는 점과, 옷의 무늬가 불화에서의 제석천ㆍ대범천상과 다른 양식으로 표현되어 있다는 점인데, 이것은 조선시대 신장상의 또 다른 일면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신중미술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사진설명: 서산 개심사 영산회괘불탱(보물 제1264호)의 대범천상유연한 굴곡자세, 화려한 천의(天衣), 현란한 보관 등에서 여성적 취향이 강하게 드러난다.

조각상이 아닌 벽화로 그린 유례로 유명한 것으로 고려시대에 그려진 영주 부석사 조사당의 대범천상과 제석천상(국보 제46호)이 있다. 이 벽화는 원래 조사당 입구에서부터 안쪽으로 사천왕, 제석천, 대범천의 순으로 배치되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일인들에 의해 벽체에서 떼어져 무량수전에 보관돼 오던 것을 최근에 신축한 보장각에 옮겨 보관하고 있다.

벽화의 대범천과 제석천은 깃과 긴 소매에 문양 띠가 뚜렷한 중국식 장포(長袍)를 입고 있는데, 얼굴은 풍만하고 우아하여 귀부인을 연상케 한다. 제석천은 손 부분에 훼손이 심하여 그 모양이 확실치 않으나, 대범천은 두 손을 가슴까지 올려 합장하고 있는 모습이 뚜렷하다. 조사당벽화의 신중은 원래 조사당 입구 쪽에서부터 사천왕, 대범천 순으로 배치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경주 석굴암 신중의 배치 순서와 같은 것이다. 이로써 조사당의 벽화가 신중들로 하여금 부석사 창건주이자 화엄종의 조사인 의상조사(義湘祖師)를 외호케 하기 위해 제작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대범천과 제석천의 모습은 안성 청룡사 영산괘불탱(보물 제1257호)과 같은 괘불탱에서도 찾아진다. 이 불화는 석가모니 입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화불, 비로사나불과 노사나불, 그리고 제석천과 대범천을 그리고 있는데, 화면 아래 쪽 부처님 다리 근처에서 석존을 향해 합장하고 서있는 보살모습의 작은 인물상이 바로 대범천과 제석천이다.

허 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불교신문 2185호/ 12월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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