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효심 간직한 천연기념물

조선 정조는 효자였다. 할아버지인 영조에 의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임을 목격한 정조는 훗날 왕위에 오르자 사도세자의 능을 화성으로 옮기고 인근에 있던 조그만 사찰, 용주사를 중창했다.

아버지의 묘를 찾은 정조는 용주사를 중창한 기념으로 대웅전 앞에 한그루의 나무를 손수 심었다. 바로 천연기념물 제264호로 지정된 회양목이다. 회향목은 석회암지대에 자생하는 나무로 사철 푸른 잎을 띄고 있어 관상용으로 심는다.

얼마 전까지도 푸른 잎을 자랑하던 회향목은 최근 병이 들었다. 나무줄기는 속이 텅 빈채 몇 갈래로 갈라졌다.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할 듯한 위태로운 모습인데, 가지 끝에서는 초록잎이 그대로 있다. 온몸을 하얀 끈으로 감고 보호를 받고 있어 더욱 안타까운데, 그래도 꿋꿋히 색을 발하는 잎을 보니 신비감마저 감돈다.

정조가 왜 회양목을 대웅전 앞에 심었을까. 회양목이 불교의 가르침을 담은 때문이 아닐까. 회양목의 꽃말은 참고 견뎌냄이다. 계절에 따라 꽃이 피고 잎이 변하지만 그 변화가 미비해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찾아내기 어렵다. 정쟁의 싸움으로 인해 아버지 사도세자가 죽임으로 몰리고 나서 정조는 주변의 온갖 위협을 참고 견뎌냈다. 또한 수행자들은 생사의 벽을 뚫기 위해 인내하며, 참고 또 참는다. 이런 마음을 나무에게 담아내려던 것이 아닐까.

회양목은 무속에서는 잡귀를 몰아내는 신령스런 나무다. 부처님이 계신 대웅전 앞에 정조는 손수 흙을 파서 회양목을 심었다. 이를 통해 마음속에 있던 번뇌를 떨어내며 부처님께 지극하게 절을 올리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나무가 갈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철사로 나무를 묶고, 줄기는 마치 붕대를 감은 듯 흰 천으로 쌓여있다. 어버이날 부모님에게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사람도 많은데, 심지어 있는 부모도 버리고 사는 세상. 회향목에서 효심이 사라져가는 현대인의 비정함을 준엄하게 꾸짖는 정조의 음성이 들리는 듯 하다.


[불교신문 2127호/ 5월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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