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찾아 평생 수행에 매진

새벽부터 시작되는 힘든 행자생활 6개월~1년

4년제 승가대 졸업해야 스님될 자격 주어져

전문교육기관.율원.전국 선원돌며 정진

세월은 흘러도 품었던 화두 여전히 뚜렷




사진설명: 비구(니)계 수계식 장면. 사미(니)스님들은 계를 받고 정식스님이 된다. 김형주 기자
#출가

선재(가명)는 사춘기를 심하게 앓았다. ‘나는 무엇인가. 대한민국 국민, 누군가의 아들, 일류대 다니는 극빈층 고학생, 소심증 환자 등등 관습적으로 규정된 나를 넘어 진실한 나가 존재하지 않을까.’ ‘왜 너는 내가 아니고 너인가. 왜 행복은 누군가를 짓밟아야만 얻어지는가. 다같이 잘 살 순 없는가.’ “쓸데없는 생각에 골몰해봐야 너만 피곤하다”는 주변의 충고를 받아들여 ‘대충’ 살기로 결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도무지 대충 살아지지 않았다. “이제 너도 철 좀 들어야지.” 부모님의 타박도 ‘소귀에 경 읽기’였다. 대학시절 함께 꿈과 혁명을 이야기하던 친구들이 소시민으로 전락해 갈 때도, 선재의 물음은 흉터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어릴 적 기억이 선연하다. 필생의 화두를 들고 몇 시간이고 좌선정진하는 스님들의 모습. 그들의 길을 따라가면 답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컸다. 어물쩍 서른을 넘겼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를 때’라는 믿음으로 무작정 산문을 열었다. 주지스님에게 출가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스님은 대뜸 “살기 힘들어 왔다면 당장 돌아가라. 스님으로 사는 일이 백배쯤은 더 고될 것”이라고 몰아세웠다. 그도 그럴 것이 며칠전 스님 되겠다고 찾아온 한 남자가 새벽 2시40분부터 이어지는 행자의 정신없는 일과를 보곤 기가 질려 도망쳐 나갔다고 한다. 주지스님이 바로 출가시키지 않고 1주일 간 유예기간을 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사중의 일상생활을 견학하며 과연 해볼만한 지 스스로 판단하도록 한 것이다. 선재의 결단은 변함이 없었다. 주지스님은 선재의 발심이 일시적 충동이나 도피가 아니라고 확신했다. 주지스님이 은사가 됐고, 은사 스님이 직접 머리를 깎아주었다. ‘선재(善財)’라는 법명을 받았다. 그리고 참회의 3000배. 조계종 교육원에 행자등록신고서를 제출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행자

‘해인사 행자실’이라고 적힌 속복을 입고 시작한 행자생활은 고역이었다. ‘해인사 군기가 해병대 군기보다 세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 새벽기상시간에 맞춰 일어나는 일에만 적응하는 데 한달이 걸렸다. 처음 주어진 소임은 채공보조. 일에 치이고 꾸지람에 치였다.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내 손만 닿으면 ‘사고’가 일어났다. 고참(상행자)들의 질책이 밤낮으로, 사방에서 날아왔다. 난생 처음 신는 고무신. 쑤시는 발목을 부여잡고 마음속으론 울기도 많이 울었다. 군대 두 번 갖다온 사람의 기분이 이럴까.

마음 한 구석은 ‘사서 고생말고 그냥 하산하라’고 달콤하게 속삭였다. 담배를 피우거나, 무단으로 시내에 나갔다가 내쫓기는 사람들 때문에 더욱 흔들렸다. 여러 도반들의 따뜻한 조언과 도움이 없었더라면 아마 머리를 다시 기른 채 취업사이트를 기웃거렸을 것이다. 보람과 실망을 반복해 느끼며 어느덧 적응이 됐다. 소임과 울력이 차츰 손에 익었으며 틈틈이 기초교리를 익혔다. 행자기간 6개월 막바지 무렵 행자교육원에 입교했다. 3주간의 집체교육 동안 교리와 수행자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소양을 배웠다. 결국 5급 승가고시에 합격, 사미계를 수지했다. 힘들었던 기억이 겹치며 한 고비를 넘겼다는 생각에 저절로 눈물이 났다.


#강원

조계종 승가대학은 동국대, 중앙승가대, 해인사.송광사.통도사.백양사.수덕사.범어사.법주사.불국사.화엄사.직지사.쌍계사.동화사.파계사.선운사.동학사.봉녕사.운문사.청암사.삼선승가대학, 기본선원을 포함해 22곳이다. 승가대학은 말그대로 대학. 4년제 기본교육기관인 승가대학을 졸업해야 비구(니)계를 받고 정식 스님이 될 수 있다.

선재스님은 ‘강원(講院)’이라고도 불리는 지방 승가대학을 택했다. 본사급 사찰에 차려진 강원은 치문반(1학년), 〈서장〉 〈도서〉 〈선요〉 〈절요〉를 배우는 사집반(2학년), 〈기신론〉 〈금강경〉 〈능엄경〉 〈원각경〉을 익히는 사교반(3학년), 〈화엄경〉을 공부하는 대교반(4학년)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단체생활을 한다는 점 말고는 학인 스님들도 일반 대학생들과 비슷한 학교생활을 보낸다. 강사스님들의 강의를 듣고 방과후엔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볼일을 보며 하루를 마친다. 고학년일수록 ‘외출’도 자주 허용된다.

수업은 원전을 읽고 해석하는 강독과 토론식 수업을 병행한다. 각자의 성적이 매겨지며 학인 스님들도 ‘리포트’를 쓰기는 마찬가지. 대부분 워드프로세서로 제출한다. 영어는 기본이고 제2외국어 하나쯤은 습득해야 한다. 최근엔 꽃꽂이 요가 기체조 등 교양과목이 각광을 받고 있다. 선재스님도 요가를 배우느라 여념이 없다. “정신수양에도 좋고 포교에도 도움이 되는 기술 하나쯤은 가져야 하겠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이 ‘연애’를 할 때 학인 스님들은 ‘참선’을 한다. 깨달음을 위해 모여든 만큼 참선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과. 기본선원은 철저하게 선(禪)에 대해 파고든다. 특히 1학년 동안은 ‘봉암사 결사’의 현장인 문경 봉암사에서 문을 걸어잠근 채 정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전문교육기관

사진설명: 봉암사에서 정진중인 조계종 기본선원 스님들이 김장 담을 배추를 묶고 있다. 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출가와 비구(니)계 수지 못지않게 승랍 10년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해에 3급 승가고시를 치르고 합격하면 사찰 주지를 맡을 수 있고, 상좌를 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기 때문이다. 곧 ‘성인(成人)’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3급 승가고시에 응시하려면 종단이 정한 전문.특수교육을 이수하거나 석사학위를 취득해야 한다.

아울러 선원에서 4안거(2년) 이상 필수적으로 정진해야 한다. 전문특수교육기관은 승가대학원, 운문대학원, 학림(화엄학림, 능엄학림)과 율원(송광율원, 영산율원, 해인율원, 금강율원), 불교어산작법학교로 나뉜다. 학림은 불교학 대학원이고 율원에서는 계율을 전문적으로 연구한다.

어산작법학교는 영산재 등 불교의례를 익히는 곳이다. 선재스님은 비구계를 받은 뒤 율원에 입학했다. “제대로 된 스님으로 사는 방법을 알기 위해 계율을 배우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율원에서는 〈사분율〉 〈범망경〉 등 교과교육도 중요하지만 율원에 몸담고 있다는 자체가 큰 공부다. 어제만 해도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는 차수를 하고 걷지 않았다”고 율감 스님에게 혼찌검이 났다. 종가집 맏아들이 제사를 지내는 데 ‘짝다리’를 짚고 서 있는 격이다. “율사마저 행동거지를 경솔하게 하면 사람들이 한국불교를 어떻게 생각하겠느냐”는 경책이다. 행동 하나하나가 신경이 쓰인다. 그러나 조금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행실을 추구하면서 ‘모든 중생의 스승’이라는 자긍심도 커져만 간다.


#재교육

선재스님은 율원을 졸업한 후 전국의 선원을 돌며 정진했다. 스님들은 1년에 2차례씩(동안거 하안거) 안거에 든다. 화두 하나 친구삼아 내면으로의 구도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선재스님도 깨달았다고 소문난 납자가 있는 곳이라면 천리를 멀다하고 찾아가 방부를 들였다. “출가한 지 20년 동안은 절대 선방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은사 스님의 엄중한 유언을 그대로 실천했다. 수행이 어느 정도 됐다 싶을 때 그간의 공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비구계의 역사와 의미를 저술한 전문서를 발간했고 에세이집도 몇권 펴냈다. 총무원에서 국장급 소임을 맡아달라는 부름을 받기도 했고, 중앙종회 의원도 한 차례 지냈다. 어느덧 승랍 20년이 넘은 종단의 중진 스님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2003년 3월 개원한 불교서울전문강당에 입학해 모자란 공부를 보충했다. 작은 절의 주지가 된 이후엔 해마다 실시되는 본말사 주지연수(직무연수)나 전법인력양성교육(직능연수)에도 거의 빠짐없이 참여했다.

승랍 25년차로 중진지도자 과정교육연수에 참여하고 사찰에 돌아왔을 때, 한 도반이 교구본사 주지선거에 출마하라고 제의했다. 거절했다. 스님은 영원히 공부하다 생을 마감하고 싶었다.


#입적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 때까지 수행에만 전념했다. 세수 70세 승랍 40년을 훌쩍 넘겼다. 스님 배출을 관장하는 전계대화상을 고사했다. 주변에서 “계율에 능통하고 오랫동안 정진한 스님이 적격”이라고 추천했지만 다 부질없는 소리라고 여겼다. 몸은 노쇠해도 젊은 날 품었던 화두는 여전히 또렷하다. ‘나는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모두가 피안에 도달해 무한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은사 스님과 많은 선지식들의 가르침, 종단의 교육체계에 따라 수행했을 뿐. 그저 마지막까지 화두를 놓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드렸다.

장영섭 기자


[불교신문 2109호/ 3월4일자]


- 스님의 방

낯모르는 이의 방문을 여는 것만큼 조심스러운 일은 없다. 하물며 스님의 방은 오죽할까. 문고리조차 잡기 힘들기 때문에 미지의 장소처럼 느껴지는 곳이다. 과연 스님의 방엔 무엇이 있을까.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서울 시내 사찰에서 생활하고 있는 비구스님과 비구니스님의 방을 무작정 찾아갔다.

불교책 빼곡 …냉장고엔 치즈와 음료수

비구스님의 방


스님의 방은 일반인들의 것과 어떻게 다를까. 궁금증 반 호기심 반에 문을 열었다. 깔끔하게 정리돼 있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방안은 온통 빨래로 가득했다. 양말을 비롯해 속옷, 내복, 승복이 방바닥에 가득 널려 있다. 생전 처음 보는 ‘스님의 속옷’으로 향하는 눈길을 애써 돌리며 방안으로 들어섰다. 예고 없는 객(客)의 방문에도 스님은 여여(如如)하다. 서둘러 빨래를 치우는 대신 “잘 피해서 들어오라”며 “날씨가 추운 관계로 안에서 말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빨래를 빼고 보니 여느 방과 차이가 없다. 불제자(佛弟子)의 방답게 벽에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좌우 협시보살을 조각한 그림이 있고, 책장에는 불교관련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공부한 흔적을 곳곳에 남기는 스님은 읽던 책들을 바닥에 그대로 쌓아둔다. 방안은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쌓여진 빨래와 책 사이로 혹 숨겨진 곡차 병이라도 하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방을 훑어봤다. 구석에 냉장고가 보였다. 닫혀 있기에 쉽게 열 수 없는, 냉장고를 열었다. 아쉽게도(?) 치즈와 드링크제가 전부였다. 강의를 듣는 신도에게 받은 것이다. 냉동실에는 지난 밸런타인데이 때 받은 초콜릿도 보였다. 자칭 ‘인기스님’이다 보니 선물이 비일비재(?)하다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스님은 술 냄새만 맡아도 취하는 체질. 대신 신도들에게 받은 쿠키 등 간식거리는 적지 않았다.

불쑥 시도한 ‘불심검문’에도 수행자의 위의에 흠이 될만한 물건을 찾을 수 없었다.

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고시원’같은 느낌…빗도 거울도 없어

비구니스님의 방


스님 방에 왠지 꼭 있을 것 같은 물건은 경전을 비롯한 불교관련 책들, 차(茶) 그리고 부처님, 있으면 어색한 물건은 머리카락이나 빗 정도. 생활이 묻어나는 세속의 방과 출가자의 방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보물찾기를 하는 심정으로 스님의 방을 찾았다.

비구니스님의 방인만큼 들어서면 은은한 향기가 나고, 입에 들어가는 순간 살살 녹는 주전부리가 비축돼 있으며, 아기자기한 불교용품들이 곳곳에 장식돼 있을 거라고 상상했다. 방문을 연 순간, 환상은 깨졌다. 그곳은 수행자의 방이라기보다 고시원을 연상케 했다. 양쪽 벽은 스님이 요즘 공부하는 책으로 가득했다. 커다란 책상 하나가 방 한가운데 떡하니 놓여있으니 사람 하나 누울 정도 외에는 여유 공간이 없다.

물건들이 깔끔하게 정리된 방은 좁지만 있을 건 다 있었다. 텔레비전, 오디오, 청소기 등등 가전제품과 다구 등 살림살이가 다양했다. 하숙생 저리가라다. 방 구석구석을 살펴보는데 시선을 끄는 물건이 있었다. 바로 라이터. 헉, 비구니스님 방에서 라이터가…. 잡동사니를 담아놓는 바구니 안에 담겨진 그것은 분명 일회용 라이터였다. 설마 스님이 담배를? 슬쩍 운을 떼니 스님은 펄펄 뛰며 “향 피울 때 쓰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라이터 옆에 재떨이 대신 향 받침대가 보였다. 그럼 그렇지.

좀처럼 들어갈 기회가 없는 비구니스님 방인지라, 해부라도 하듯 다시 탐색을 시작했다. 순간 여성들이 화장품을 쌓아두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지만, 스님 방에서 화장품을 발견했다. 선반 한 구석에 마사지 크림과 클렌징 로션 등 화장품 샘플들이 포개져 있던 것. ‘화장품’이라고 부르기에는 빈약한 샘플 몇 개가 전부였다.

역시 스님 방에 빗은 없었다. 그리고 거울도 없었다. 손거울 하나 있을 법한데 찾아내지 못했다. 하긴 공부하기도 바쁜데 언제 얼굴을 들여다 볼 것인가.

어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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