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유속 쉼없이 정진하는 수행자 상징

살아 있는 동물 사육을 금기로 여기는 사찰에서 물고기만을 예외로 취급하여 연못에 놓아기르는 것을 보면 물고기와 불교 간의 친연성을 짐작할 수 있다. 절에는 연못에만 물고기가 있는 것이 아니다. 추녀 끝 풍경(風磬)에도 물고기가 매달려 있고, 공포에도 물고기가 조각돼 있다. 천장에 붙어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수중 풍경 속에서 게, 자라, 조개, 개구리 등 다른 수생 동물과 함께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목탁도 물고기와 관련이 있는 것이고, 목어 역시 물고기 형상이다.

동래 범어사(梵魚寺), 밀양 만어사(萬魚寺), 포항 오어사(吾魚寺) 등 절 이름에 ‘어(魚)’자가 들어 있는 절이 있는가 하면, 울산 개운사, 김해 은하사, 양산 통도사 삼성각, 양산 내원사 화정루, 양산 계원사 대웅전에는 특별히 두 마리 물고기로 구성된 쌍어문이 장식되어 있다. 그런데 주목되는 것은 쌍어문이 있는 절은 모두 옛 가야.신라 땅, 즉 오늘의 영남지방에 있는 절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삼국유사〉에 보이는 ‘허황옥의 가야국 내도’ 기록과 관련 있는 ‘불교 남방전래설’에 어떤 암시를 던져 주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설명: 제천 신륵사 극락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32호)의 물고기그림.
물고기와 사찰에 관한 기록은 〈동국여지승람〉의 ‘범어사 조’에도 보인다. “동국 해변에 금정산이 있고, 그 산정에 높이 50여 척이나 되는 바위가 솟아 있다. 그 바위 위에 우물이 있고, 그 우물은 항상 금색이며, 사시사철 언제나 가득 차 마르지 않는데, 그 속에 범천(梵天)으로부터 오색구름을 타고 온 금어(金魚)들이 헤엄치며 놀고 있다”는 내용이다. 물고기가 범천에서 내려와 놀던 우물자리에 절을 지어 범어사라고 했다는 것인데, 물고기가 범천 이야기와 함께 절의 창건설화에 관여한 사례다. 범천(梵天)은 우주원리, 또는 욕계 위에 존재하는 무애(無碍)와 원천적 자유세계를 지칭한다. 맑은 연못 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의 모습을 보고 그런 경지를 느껴보는 것은 본능에 가까운 것이다.

힌두교 최고의 성경인 〈바가바드 기따〉에 의하면, 정의가 쇠하고 불의가 성할 때마다 비슈누가 여러 가지 형상으로 인간 세상에 나타나 악을 물리치는 데 물고기, 거북이, 멧돼지, 반인반수, 난쟁이 등 열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경에서 말하는 신어(神魚)가 영남지방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쌍어문(雙魚文), 또는 여타 물고기 장식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되지만 확실한 물증이 없어 단언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불교성립과 함께 인도 고대 화신(化神)의 일부가 불교에 수용되었다는 점, 〈삼국유사〉 가락국기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가락국에 도래한 허황옥 일행의 고향이 인도의 아요디아 지방이라는 점, 그곳이 불교시대(BC 6~5세기)에는 100여 개의 사원이 늘어선 불교 중심지였고, 사원의 문장(紋章)이 쌍어문이었다는 점 등은 감안한다면 쌍어문의 인도 전래설도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아무튼 물고기는 언젠가부터 우리나라 사찰에 수용되었고, 단순한 장식이 아닌 의미 상징물로 지금까지 존재해 왔다. 선종(禪宗)에서 사찰규범의 지침서로 삼고 있는 〈백장청규(百丈淸規)〉에는 “물고기는 밤낮으로 눈을 감지 않으므로 수행자로 하여금 자지 않고 도를 닦으라는 뜻으로 목어를 만들었으며, 또한 이것을 두드려 수행자의 잠을 쫓고 정신 차리도록 꾸짖는다”고 적고 있다. 낮이나 밤이나 눈을 뜨고 있는 물고기의 속성을 불면면학(不眠勉學)하는 수도자의 자세에 비유한 것이다.

목탁.목어도 물고기 형상…법당 풍경에도 매달려

영남 사찰에 쌍어문 장식…불교 남방전래설 암시


사진설명: 공주 갑사 요사채 공포(木共包)의 연꽃과 물고기.
목어와 목탁은 형태상으로 서로 차이가 있는데, 목어는 대개 용두어신(龍頭魚身)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깃털과 털, 비늘과 딱딱한 껍질을 가진 모든 것은 다 용을 조상으로 하고 있다’는 〈회남자(淮南子)〉 이래의 일반적 관념이 만들어 낸 결과로 생각된다. 그러나 완전한 물고기 형태로 만든 목어도 없지 않은데, 서울 창신동 안양암의 목어가 그 예다. 19세기 말 경에 제작된 이 목어는 얼굴에서 꼬리까지 완전한 물고기 형태로 되어 있으며,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않으나 등에 매다는 장치가 사용된 흔적을 말해 준다. 대규모 사찰에서는 범종, 법고, 운판과 함께 종각에 목어를 걸어 두지만, 소규모 절에는 목어가 없는 경우가 많다. 목어의 모양을 작게 줄여서 들고 다니기 편하게 만든 것이 목탁이다. 목탁은 물고기 모양을 기본형으로 하고 있는데, 손잡이는 물고기의 꼬리가 양쪽으로 붙은 형태이며, 목탁에 뚫어져 있는 두 구멍은 물고기의 아가미에 해당된다.

절에는 물고기가 허공 중에도 있다. 추녀 끝에 매달려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면서 청아한 금속성 소리를 내는 풍경(風磬)의 물고기 장식이 바로 그것이다. 오직 소리가 나게 할 목적이라면 물고기 형태가 아닌 다른 것을 매달아도 될 터이나, 특별히 물고기 모양을 사용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물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일체의 구속과 거리낌을 여읜 바람 속에 흔들리는 물고기가 만들어 내는 청아한 맑은 풍경소리는 범천의 소리처럼 들리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사찰 장식 물고기 모두가 무애, 경책의 상징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충북 제원군 월악산 기슭에 있는 신륵사의 극락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32호) 우측 합각(合閣)의 천판 부분에 물고기 그림이 그려져 있다. 세 마리 물고기가 그려져 있는데, 큰 물고기가 중간 크기의 물고기, 중간 크기의 물고기가 그보다 작은 물고기 꼬리를 물고 있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극락전은 조선 초기 건물이지만 이 그림이 그려진 시기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화격(畵格)은 그렇게 높지 않은 편이나 내용과 규모면에서 사찰장식 물고기그림으로는 유일무이한 것이다.

그런데 물고기 그림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일까. 부처님 전생 설화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부처님이 보살행을 닦을 때 일찍이 바다 속에 거처하면서 바다에 살고 있는 물고기를 보았더니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고, 작은 물고기는 그보다 더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부처님이 큰 물고기를 잡아 포식하니 작은 물고기가 삶을 얻었다. 이 보살의 혼신(魂神)이 화하여 경어(鯨魚)의 왕이 되었는데, 그 키가 몇 리나 되었다. 그 때 해변에 기근이 들어 사람들끼리 서로를 잡아먹으니 경어가 몸을 해변에 나타내어 그들이 먹게 하여 기근이 든 인민을 구제했다 한다.

물고기와 관련된 설화에는 ‘아미타어(阿彌陀魚)’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사자국(師子國) 서남쪽에 한 물고기가 있었는데, 능히 사람의 말을 하고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하기 때문에 ‘아미타어’라고 이름 지었다. 사람이 아미타불을 염송할 때면 이 물고기도 좋아라 하면서 언덕 밑으로 가까이 다가오곤 했다. 사람들이 잡아서 먹으면 맛이 매우 좋았다고 하는데, 이 물고기가 아미타불의 화신이라는 전설이 있다. 이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물고기 장식이 예천 용문사 대장전(大藏殿)의 기둥머리에 보인다. 대장전 오른쪽 모퉁이 기둥머리에 조각되어 있는 이 조각상은 다른 물고기 장식과는 달리 몸체를 기둥 속에 감춘 채 머리 부분만 밖으로 내민 형태로 되어 있는데, 이 물고기 조각이 ‘아미타어’를 상징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힌두교나 불교에 권화(權化)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여러 형태로 바꾸어 세상에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관련지어 볼 때 대장전의 물고기 조각은 불.보살의 화신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불교에는 물고기에 관련된 비유가 많다. ‘어모(魚母)’라는 말도 그 중 하나다. 이것은 아미타불의 염력으로 극락정토를 주재하는 것이 어미 물고기가 새끼를 보살피는 것과 같다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경에 “어모(魚母)가 새끼를 생각하고 보살피면 경학(좁은 길과 철따라 마르는 샘)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으며, “보살이 중생을 생각하는 것이 마치 어미 물고기가 새끼를 생각하는 것과 같다”라는 구절도 있다. 비유란 무엇인가. 비(譬)는 상황을 비교한 것이며, 유(喩)는 밝게 가르침이다. 이것에 의탁하여 저것을 비교하는 것이며, 얕은 것에 붙여서 깊은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사찰 장식으로서의 물고기를 무애, 경책, 법신의 권화 등으로 파악하는 것은 비(譬)와 유(喩)의 원리를 적용해 이끌어낸 결과다. 사찰의 물고기 장식은 얕은 것으로 깊은 것을 가리키는 상징적 존재에 다름 아니다.

허 균 /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불교신문 2100호/ 1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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