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신문

불기 2563 (2019).2.17 일

사이드바 열기
상단여백
HOME 사회&국제 사회일반
(문화재)경주 천룡사지 3층석탑 보물지정
경북 경주군 내남면 용장리 天童寺址3층 석탑이 구랍29일 문화체육부에 의해 보물 제1188호로 지정됐다.경주 남산의 최고봉인 高位山의 절경을 배경으로 해발 4백m의 드넓은 분지 천룡사지에 서있는 높이 7m의 이 탑은 단탑 단층 기단으로 9세기초를 전후한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탑은 천룡사지의 폐석탑이었는데 정영호 박사, 장충식교수등 고고학자들에 의해 91년 가을 복원됐다.흩어져 있는 舊材에 없어진 기단 면석, 갑석일부와 상륜부를 新材로 보충하여 통일신라대의 훌륭한 석탑을 1基 더 갖게된 것은 龍城대선사의 유훈에서 비롯됐다. 용성스님은 호국호법도량 천룡사가 흥할때 국가도 흥했던 역사를 돌이켜 보면서 우리나라 8백년 국운과 불법중훙을위해 천룡사 제4차 복원을 제자 동헌대사에게 부촉했다. 동헌스님으로부터 이부촉을 이어받은 도문스님은 20여년에 걸쳐 농가로 변한 천룡사지 6만여평을 구입하였다. 89년 봄 도문스님과 황수영박사가 천룡사지에 올라갔다. 축대석, 초석, 石幢의 귀부, 맷돌등과 함께 폐탑의 部材들이 산재해 대가람이었음을 보여주는 빈터에서 스님과 황박사는 석탑만이라도 먼저복원하여 옛모습을 찾자고 의견을 모았다. 동국大 경주캠퍼스 박물관(관장.김길웅)이 주관하여 90년 11월 탑지 주변을 발론하고 91년 8월~9월에 복원 완공했다.이 탑은 없어진 기단면석 8매중 7매, 기단갑석 4매중 3매를 기존석탑과 동질의 돌로 보완했다. 상륜부는 전실돼 남원 실상사 석탑의 상륜을 참고하였다. 신라시대 일반석탑에 따르는 천룡사지 3층석탑은 2단의 지대석위에 기단면석을 세우고그위에 갑석을 올려 놓았다. 그위에는 동일석으로 된 2단의 탑신 받침, 초층탑신, 옥개석순서로 되어 있다.이 탑의 초층탑신 에는 깊이 15cm, 직경 15cm인 기존의 원형 사리공 있다. 이곳에 정영호박사가 기증한 4과의 세존 진신사리를 純銀으로된 2중 원통형사리병과 백자로 된 사리함에 모셔 봉안했다.또 호국호법 삼부경과 그외 경전과 소탑 및 순은판에 쓴 석탑복원 연기문을 함께 모셨다. 천룡사는 20만평의 분지에 세워진 통일신라시대의 대가람으로 조선조 숙종(1688년)대까지 사막이 이어졌을 것으로 기록과 유물로 추정하고 있다.삼국유사 천룡사조에 의하면 이 절은 고려초에 최승로의 손자 崔齊顔이 중건, 석가만일도량을 설치하였다. 그후 조선초 무학대사가 제자를 보내 3창한 것으로 알려졌다.현재 천룡사지에는 대가람이었음을 입증하는 축대석과 대형 석재유물들이 산재해 있으며, 馬等鳥材의 남쪽으로 흐르는 냇물의 원천인 약수가 이절에서 시작되고있다.도문스님은 이 터에 입법당과 요사채를 마련했다. 서울 대성사와 부산중생사(주지.법신)신도들이 매월 성지순례기도를 하고 있다.도문스님은 금년음1월5일부터 천룡사 복원불사를 위한 만인 동참 천일기도에 들어간다. 3번의 천일기도 즉 3천일 기도를 2002년에 회향할 계획인데 누구나 참선, 염불, 간경기도에 동참 할 수 있다. 먼저 만인동참 사적비와 불사리탑을건립하고, 참선.염불.간경.주력당등 호국호법의 대가람을 복원하여 개인의 안녕과 국운융창이 이뤄지길 발원 하면서 기도에 들어간다. (불교신문구독문의:730-4488-90)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포토뉴스
여백
여백
여백
여백
icon
"SNS에서도 불교신문
뉴스를 받아보세요"

kakaostory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