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에는 유난히 물고기가 많다. 목어·목탁부터 전각 기둥과 돌물확에 시문된 문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물고기가 도처에서 경내를 장식한다. 하다못해 바람에 부딪혀 “댕그랑 댕그랑” 소리내는 추녀 끝 풍경의추에도 물고기는 달려있다.사찰과 물고기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사찰에는 왜 물고기가 많은 것일까.사찰에 있는 대부분의 조형물이 그러하듯 물고기 조각과 문양에도 불교사상이 구체적으로 반영된 특별한 의미가 들어있다. 깨어 있을 때나 잠잘 때 심지어 죽어서도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의 특성이 사찰에 물고기 장식이 많은근본적인 이유 중의 하나다. “나태와 방일에 빠진 수행자를 경계하고, 자신을 다스리지 못한 구도자의 타락을 일깨우는 의미가 물고기에는 들어있는것”이다.물고기 장식에는 또한 ‘중생구제 의미’가 담겨있다. 〈삼보감응록(三寶感應錄)〉에 보이는 ‘아미타어(阿彌陀魚)’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사자국 서남쪽에 ‘사람의 얼굴에 물고기 몸(人頭魚身)’을 가진 한 물고기가 있었는데, 능히 사람의 말을 하고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했다.때문에 사람들은 이 물고기를 ‘아미타어’로 이름 지었다. 사람들이 아미타불을 염송하면 물고기는 좋아하면서 언덕 밑으로 가까이 다가오곤 했다.잡아서 먹으면 맛이 매우 좋아 사람들이 즐겨 찾았는데, 이 물고기가 아미타불의 화신이었다. 중생구제를 위해 물고기로 모습을 바꾸어 나타난 부처님이 바로 ‘아미타어’였던 것이다.〈경율이상(經律異相)〉에 나오는 이야기도 사찰의 물고기 장식이 ‘중생을 위한 부처님 자비’를 상징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부처님이 보살행을 닦고 있을 때 큰 물고기가 작은 것을 삼키는 것을 보고 스스로 발을 빠뜨려작은 고기는 살리고, 큰 고기는 배부르게 하였다.이 보살의 혼신(魂神)이 화하여 고래 왕이 되었다. 마침 기근이 들어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으니, 고래가 몸을 해변에 나타내 먹게 하여 기근을 면하게 하였다. 〈지도론(智度論)〉의 “아미타불의 염력으로 극락정토를 주재하는 것이 ‘어미 물고기(魚母)’가 새끼를 보살피는 것과 같다”는 구절에보이는 ‘어모(魚母)’도 중생에 대한 부처님의 큰사랑을 보여주는 예다.‘무애(無碍)와 적정(寂靜)’ 역시 사찰 물고기 조각과 장식에 상징화 돼있다. 잘 때도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의 특성이 나태한 수행자의 경책으로이어지듯, 자유롭게 헤엄치며 다니는 물고기의 모습은 깨달음을 얻은 수행자의 ‘무애·적정’으로 연결된다. ‘깨달음 세계’에서 걸림 없이 노니는구도자의 모습은 바람 따라 흔들리는 풍경의 물고기와 무엇이 다르겠는가.일체의 제약에서 벗어나 모든 번뇌를 덜어 훌훌 털어 버리고 자신의 길을가는 구도자에게 물고기는 이처럼 친근하게 다가선다. 사찰 물고기 장식에담긴 의미를 알고 ‘그 의미’를 넘어설 때, 보는 이에게 사찰은 진정으로다가서리라.◆신흥사 극락보전설악산 기슭에 위치한 신흥사 극락보전은 1644년에 세운 건물로 중앙의 단청과 공포가 지극히 아름답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형태인 극락보전에서 우리가 특히 눈여겨보아야 것이 바로 꽃문. 게 자라 조개 개구리등과 함께 앙증맞게 조각된 물고기가 문살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작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깨달음의 맛을 본 여유·무애의 기운이 전신에넘쳐흐른다. 원천적 자유를 누리는 물고기의 자유로움(魚樂)이 잘 표현된 수작이자, 물 속에서 놀아야 될 물고기가 허공에서 헤엄치고 있어도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음을 보여준다. 보고 있는 사이 저절로 피안에 도착한다.◆천은사 돌물확사찰에 시문된 물고기 문양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깃 들어 있다. 흔히 이야기되는 나태한 수행자를 경책하는 뜻, 깨달음의 세계에서 무애·적정하는것, 중생들의 번뇌를 감싸 안아주는 의미 등이 복합적으로 들어있다.천은사 돌물확에 있는 물고기 문양은 이 가운데 중생구제와 관련이 있어보인다. 목마른 중생의 고통을 해결하겠다는, 물고기로 화현(化現)한 부처님의 중생구제 서원이 깃든 문양이다. 물론 물확이라 자연스레 물고기가 장식됐다고 볼 수 있으나, 사찰에 있는 모든 조형물들에 특정한 의미가 들어있음을 생각하면 단순하게 볼 문양은 아닐 것이다. 선명한 비늘과 커다란 눈,크게 벌린 입 등이 해학스레 표현됐고, 중생의 목마른 고통만은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원이 가득 담긴 물고기이다.◆완주 화암사전북 완주군 운주면 가천리에 있는 화암사 우화루에는 목어 한 마리가 걸려있다. 불전 사물의 하나 치고는 다소 단순하고 생경한 듯 보이지만 목어의역할을 충실히 할 물고기로 보인다.퉁방울 눈, 채색이 전혀 안된 나무, 나뭇결이 스스럼없이 보이는 꼬리 등모든 것이 눈길을 끈다. 언제나 눈을 뜨고 있어 방일에 빠진 수행자들이 보면 지레 겁을 먹겠지만, 물 속의 중생들에게는 한량없는 자비를 베풀고 있는 형상이다.◆은해사 백흥암보물 제486호로 지정된 백흥암 수미단에는 아미타어가 선명하게 조각돼 있다. 사람의 얼굴에 물고기 몸을 가진 아미타어. 능히 사람의 말을 하고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한다는 이 물고기가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한 두 마리가 아니고 여러 마리가 수미단 이곳 저곳에서 자유로이 헤엄치고 있다. 동자의 얼굴을 한 아미타어, 노인의 얼굴을 가진 아미타어, 여인의얼굴을 물고기 몸에 맞춘 아미타어 등 각양각색의 아미타어가 경연하듯이서로를 뽑내고 있다.자세히 한 번 보라. 중생구제에 대한 부처님의 원력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느끼게 될 것이다.◆제천 신륵사 극락전월악산 기슭에 있는 신륵사 극락전 우측면에는 큰 물고기가 중간 물고기를,중간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서로 잡아먹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부처님이큰 물고기를 잡아 그 안에 있는 작은 물고기들을 살려준다는 〈본생담〉 내용이 상징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물고기 문양이 중생구제와 관련 있음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벽화다.중생구제를 위해 부처님은 물고기로도 화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가 아미타어다. 범어사 대웅전 수미단에 조각된 아미타어.< 한장의 불교신문 한사람의 포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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