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성환 글, 성파스님 그림/ 민속원
노성환 글, 성파스님 그림/ 민속원

성파스님의 다락방

노성환 통도사 차문화대학원장이 조계종 종정예하 중봉 성파대종사의 다양한 작품을 함께 담은 다담집(茶談集) ‘성파스님의 다락방’을 최근 출간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진은 성파 종정예하. 불교신문 자료사진
노성환 통도사 차문화대학원장이 조계종 종정예하 중봉 성파대종사의 다양한 작품을 함께 담은 다담집(茶談集) ‘성파스님의 다락방’을 최근 출간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진은 성파 종정예하. 불교신문 자료사진

 

“나의 왼팔은 문수요, 오른팔은 보현이다”

 

원로학자 노성환 교수가

1년여 간 곁에서 지켜본

성파 종정예하 ‘다담집’

‘진리의 세계’를 향해

말없이 뚜벅뚜벅

걸어가는 수행자 모습

 

“수업을 마치고 어느 때와 같이 자유롭게 다담을 즐기고 있었다. 한 남성 회원이 짓궂게 ‘스님 여성이 들어서 제일 좋아하는 말이 없을까요?’라고 묻자, 이에 스님은 한마디 말로 사람의 마음을 녹이는 말이 있다고 하면서 다시 붓을 들어 다음과 같은 글귀를 쓰셨다.

舊年寒苦梅

得雨一時開

지난해 매서운 추위를 견딘 매화가/ 비를 얻어 일시에 피었네.

스님은 웃으시면서 ‘이 시는 수행승이 도를 깨달을 때 그 순간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말을 오랜만에 만나는 여인에게 쓰면 그 여인이 마음을 얻을 것’이라 하시면서, 이것 또한 아무데나 쓰면 안 된다고 일러주셨다.

이 시는 일본의 백은선사(白隱禪師, 1685~1768)가 69세 때 <반야심경>의 주석서 <독어주심경(毒語注心經)>의 ‘시무등등주(是無等等咒)’의 조에 나오는 매화의 덕을 찬양한 노래이다.”

<성파스님의 다락방>에 나오는 내용이다. 책은 제15대 조계종 종정 중봉 성파대종사의 다담집(茶談集)이다. 종정 스님은 2021년 ‘통도사 차문화대학원’을 설립하고, 대학에서 정년퇴직한 저자(노성환 울산대 일본학과 명예교수)에게 대학원장 소임을 맡겼다. 그리고 연구실에 ‘다락(茶樂)’이라는 특별한 이름을 지어 그 방은 자연스럽게 다락방이 되고 스님은 가끔 다락방에 들러 사람들과 차를 마시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일요일 아침 토굴은 그야말로 조용하다. 내가 도착하자마자 스님께서 다락방을 찾으셨다. 그리고는 족자 하나를 내어주셨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간밤에 스님이 직접 쓰신 글씨였다.

調高賞音希. 격조가 높으면 그 소리를 감상하는 사람이 적다. 차가 일상의 다반사라 하지만 격이 높은 다인들은 일반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을 터이고, 그것을 말로 다 표현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지만 …. 이해하는 극소수의 사람과는 지음지교(知音之交)의 관계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족자에 쓰인 글에 대한 이해를 위해 <열자(列子)>의 ‘탕문편(湯問篇)’에 나오는 백아와 종자기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저자는 물론이지만 같이 있는 회원들도 사소한 것에서 무거운 것까지 스스럼없이 스님에게 질문을 쏟아내는 일이 많다. 그때마다 스님은 격식을 따지지 않고 허심탄회하게 시원하게 해답을 내어 놓는다. 즉문즉설(卽問卽說)의 법회이다. 형식이 있을 수 없다. 스님의 다담은 군더더기가 없고 어려운 표현이 없다. 대중들이 알아듣기가 너무나 쉽다. 몇 번이나 곱씹어 볼수록 가치를 발휘하는 법문이다. 게다가 마무리는 언제나 그것과 관련된 고전의 명언이어서 듣는 이들은 항상 별도의 노트를 항상 준비해두고 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이것은 우리들만이 듣고 보고할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들이 쏟아졌다. 이런 과정을 거쳐 종정 스님에게 누가 될까 염려하면서 펴낸 것이 이 책이다.

때문에 저자는 일반인들이 스님을 화가, 옻칠전문가, 염색전문가, 도예가 한지제작자, 된장을 담그는 장인 등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이것은 스님의 일부분만을 나타낸 말이라고 한다.

조계종 종정예하 중봉 성파대종사의 작품 ‘천진불(80×68)’. 불교신문 자료사진
조계종 종정예하 중봉 성파대종사의 작품 ‘천진불(80×68)’. 불교신문 자료사진

스님은 과거 전통 사찰이 우리나라의 건축, 공예, 미술, 음식 문화의 산실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고, 이러한 전통문화를 복원하고 유지 발전하고자 하는데 노력을 기울인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스님은 ‘나의 왼팔은 문수요, 오른팔은 보현이다’는 말씀을 하신다”며 “그 말은 ‘나는 이판이요, 사판이기도 하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다시 말해 스님의 모든 행위는 말과 행동을 함께 실천하는 수행정신에 근거를 두고 계시는 것”이라고 한다.

저자가 지금까지 곁에서 지켜본 종정 스님은 진리의 세계를 향해 말없이 뚜벅뚜벅 걸어가는 학승의 모습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통문화를 통해 실현하는 스님의 진정한 모습을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확인하는 기회가 되길 바랄 뿐이다.”

책에는 ‘통도사 차문화대학원을 열다’를 시작으로 ‘통도사의 차문화’, ‘일본의 차문화론’, ‘차 한 잔으로 세상을 보다’, ‘곡차 한잔으로 도를 논하다’, ‘차 한 잔으로 도를 논하다’ 등 차(茶)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여섯 마당이 종정 스님의 다양한 작품과 함께 실려 있다.

종정 스님의 작품을 감상하며 법담을 들을 수 있는 드문 기회가 우리 곁에 찾아왔다.

 

[불교신문 3755호/2023년2월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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