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움직이는 생명…시간 쫓겨 불사하고 나무탓?”

닫집 수미단 법탁 현판 주련까지
30여년간 사찰 나무영역 전담해
높은 법상 대신 최근 트랜드 법탁
구례 화엄사 각황전에도 법탁 안치

장수 죽림정사 도실 도문스님 시봉
불심 깊어 불사인연마다 스님 인연
“불교는 자신을 깨우쳐 가는 과정”

나무를 만지고 나무와 작업할 때 가장 마음 편하고 즐겁다는 박연호 목공장인은 “또래 친구들은 대부분 경비일을 하거나 손주들 보며 사는데 반해 저는 나무와 함께 일하니 하루하루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했다.

법회가 열리고 청법가 흐르면 큰스님은 설법을 위해 법상(法床)에 오른다. 연세 많고 거동이 불편한 스님들은 시자 스님들 부축이 필요하다. 20~30여 년 전만도 법상은 화려하고도 장엄하게 꾸며져 불교 목공예의 진수로도 꼽혔다. 지금은 어떤가. 자리만 크게 차지하고 활용도가 예전만 못하는 천덕꾸러기 신세다. ‘법상의 시대’는 갔다. 바야흐로 ‘법탁(法卓)의 시대’다. 법탁은 법당의 중심 부처님이 계신 수미단을 거스르지 않는 적절한 눈높이에 스님 여럿이 설 수도 있고, 법탁 뒤 의자를 빼내어 편히 앉을 수도 있다. 자유자재로 움직이면서 설법은 물론 무차토론과 같은 회의에 좌장 자리로도 손색이 없다.

박연호(66, 법명 법광) 목공장인이 요즘 공을 많이 들이는 영역도 ‘법탁’이다. 법당 내부 수미단과 닫집, 복전함과 현판 주련까지 사찰에 있는 나무제품들은 거의 다 만들어내지만 법탁은 최근 트랜드다. 5년 전 구례 화엄사 각황전에도 손수 만든 법탁을 두었다. 전각이 주변 산세와 어우러져야 하듯 법당 안 작은 복전함 하나도 법당 분위기와 어울려야 하기에 국보급 각황전에 걸맞는 법탁 디자인을 구상하느라 일주일 밤낮을 고민해야 했다. 

“법당의 중심이 법탁입니다. 각황전 법탁도 홍송에 옻칠을 해서 지금쯤 나이테까지 살아나 ‘진품명품’이 돼 있을 겁니다. 각황전 복전함까지 제 손으로 정성껏 만들었으니 한번 가서 눈으로 확인하셔요. 하하.”

대기업에서 일하다 염증을 느끼고 우연히 찾아간 예산 수덕사에서 망치질하는 목공 수리기술자들을 보고는 ‘내 일이다’ 싶었다는 박연호 장인. 인연이라 하면 중학생 시절 방학 맞아 통영서 서울로 올라와 나무공방하는 외삼촌을 보며 부러움을 금치 못했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릴 때 간절한 ‘욕망’으로 눈으로 몸으로 익힌 습은 무시못한다. 현장에서 기술자들로부터 습득한 생생한 훈련을 바탕으로 온갖 서적을 탐독한 독학에 밤새는줄 모르고 작업에만 임했던 그는 한치 어긋남 없는 눈썰미와 너무나 정직한 손놀림으로 불교목공계에 이름을 알렸다. 공인된 스승이 없다며 허전한 웃음을 보이면서도, 형식적으로 이름만 올려놓고 스승 제자 따지는 현실은 강하게 꼬집었다.

“저는 ‘쟁이’라고 말하길 즐깁니다.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지만 특히나 나무에는 최소 1만시간(10년)은 쏟아 부어야 비로소 ‘쟁이’로 불릴 자격이 있다고 봐요. 거칠고 힘겨운 나무일을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할리 없죠. 어렵사리 이 길로 들어왔다 해도 심도깊은 공부를 하지 않고 주먹구구식 영혼없이 일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아요. 예불을 올리는 수미단에 원앙새나 개구리 그림이 들어가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워요. 삼독을 끊는 것인데 정작 집게를 오므리고 있는 것도 적절하지는 않아요. 제가 너무 디테일한가요? 하하.” 그는 일반공예가 아니라 불교공예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도문스님과 2019년 6월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 ‘3·1운동 및 독립선언 100주년 기념음악회’에서 찍은 기념사진. 아래 사진은 박연호 장인이 조성한 춘천 명부정사 닫집.
도문스님과 2019년 6월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 ‘3·1운동 및 독립선언 100주년 기념음악회’에서 찍은 기념사진. 

박연호 장인은 입버릇처럼 ‘우리 스님’이라 부르는 은사 스님이 있다. 장수 죽림정사 조실 도문스님이다. 30여년 전 우면산 대성사 불사에 가담하면서 인연이 됐다. 죽림정사의 닫집과 불단을 조성했고, 큰스님의 상좌 스님들이 전법활동을 펼치고 있는 목포 3함대사령부 군법당이나 제주 서귀포해군사령부 군법당에 불단과 주련 등도 박연호 장인의 손을 거쳤다.

도문스님은 매년 설과 추석마다 수백명에 달하는 인연있는 재가불자와 유발상좌들에게 지역 특산물을 명절선물로 보낸다고 한다. “큰스님에게 직접 선물 받으면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친구들에게 자랑도 합니다. 하하. 큰스님께서 제자들에게 전하는 발우나 주장자도 정성껏 만들어 드리고, 바깥음식 못드시는 스님께 옻칠찬합을 보내드렸더니 도시락으로 요긴하게 쓰신다며 엄청 좋아하셨어요. 제게 큰스님은 큰 산과도 같은 어른이셔요.”

그에 따르면 나무는 늘 정직하다. 목공예나 목조건물 등 ‘나무 불사’를 하고서 나무가 터졌다거나 뒤집어졌다, 갈라졌다고 나무탓 하면 곤란하다. 나무는 죄가 없다. 콘크리트 구조에 무턱대고 나무로 시공을 한다거나 건조비용을 아끼려고 제대로 건조하지 않고 외형적인 시각과 느낌만으로 섣부르게 불사를 해놓고 나무탓 시공탓을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목조불상도 마찬가지. 삼베와 비단으로 불상을 감싸는 단계를 간과해서 나타나는 갈라짐 현상을 두고, “목불은 갈라져서 문제”라는 시각은 맞지 않다. “옛 장인들이 해놓은 작품들을 보면 정신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훌륭하고 위대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신경을 써서 심혈을 기울인 결과지요. 그 정신과 자세를 갖고 옛것을 뛰어넘는 새로움까지 구현하려면 수행정진하는 마음으로 이 일에 매진합니다.”

곡성 성륜사 조실 청화스님을 좀 더 젊었을 때 친견했다면 기어코 상좌로 출가발심을 했을 거라는 박연호 장인은 김해 은하사에서 3년을 살면서 대성스님(은하사 회주)을 모시며 불사를 전담했던 추억, 여수 한산사에서 덕문스님(화엄사 주지)을 처음 만났던 일화…. 불심 깊으니 불사 인연마다 스님들과 인연도 덩달아 깊다. “30여년 부처님 도량에서 일해보니 불교란 결국 ‘자기 깨우침’입니다. 자기 자신을 깨우쳐 가는 과정이니 이보다 더 좋은 행복이 있을까요?”

박연호 장인이 조성한 춘천 명부정사 닫집.
박연호 장인이 조성한 춘천 명부정사 닫집.

 

"가정집에 사무실에 불장 모셔요"

박연호 장인의 불장 ‘눈길’

“몇해 전 변호사 한 분이 사무실 자기 공간에 부처님을 모시고 싶은데 방법이 없을까 문의해 왔어요. 예불이나 기도를 할 때만 열고 닫을 수 있으면 편하게 예불하고 기도할 수 있을거란 생각에 착안해서 불장(佛藏)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작은 좌불 한 기 모실 수 있는 불장을 전했더니 변호사는 출근해서 기도하고 향 피우면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며 만족해했다.

박연호 장인은 전문직에 있는 직장인은 물론 일반 가정집에서도 가족 구성원들이 작은 공간에서도 기도에 몰입할 수 있는 불장을 보급하면 어떨까 고민했다. 대중적인 보급을 위해서는 값비싼 재료로 조성해서 부담을 지우면 안된다. 우레탄과 같은 환경에 치명적인 재료도 삼가야 한다. 불장을 여닫을 때 부드럽고 편안함을 추구하기 위한 특수 제작 공법도 필요하다.

작은 불장 하나지만 문양 하나하나 허투루 하지 않았다. “연꽃을 형상화하고 하늘에서 꽃비가 쏟아지는 분위기를 재현했습니다. 누구나 불장을 하나 마련한다면 평생 기도하면서 활용해야 할 귀중품이 될텐데 공들여 만들지 않으면 안되니까요.” 

불장 하단에 있는 서랍을 열면 향을 꽂을 수 있는 공간도 나온다. 불장을 열고 향을 사르면 가정에서 가족법회도 가능하다.

“불교문화가 생활공간으로 폭넓게 들어오고 있습니다. 법당에 조성하는 법탁 역시 일반 가정에서 문의하기도 합니다. 불장은 활용도가 올라가서 전법포교에도 기여하길 바랍니다. 불자님들이 원하는 형상으로 아주 정성껏 만들었습니다.” 박연호 장인의 불장은 오는 3월30일~4월2일 서울국제불교박람회가 열리는 세텍에서 만날 수 있다.

 

[불교신문 3754호/2023년2월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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