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에 사랑의 둥지 튼 버려진 아이들의 ‘아빠스님’

고성 좌련초등교 ‘보리수 동산’
30년간 수십명 지성껏 거둬
“인재불사가 가장 큰 공덕이죠”

보채는 아이를 돌보고 있는 승욱스님.
보채는 아이를 돌보고 있는 승욱스님.

경남 고성엔 연꽃이 들어앉은 형상을 한 좌련(坐蓮) 초등학교가 있습니다. 연화산이 둘러싸인 이 고장은 작은 집들이 올망졸망 모여 사는 정겨운촌락이죠. 나뭇가지마다 연두빛이 유난히 빛을 내던 지난 4월20일. 멀리 보이는 초등학교 운동장에 먹물 옷을 입은 스님 한 분이 보였습니다. 자동차를 세우고 교문에 들어섰습니다.

스님은 두 살배기 사내아이를 등에 업고 환하게 웃으며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했습니다. 이 학교 교장인가? 저 아이 아빠인가? 고성 청련암 주지 승욱스님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30여 년 전 스님은 이 마을에 있는 옥천사에서 출가했습니다. 주지스님의 시자(侍者)였던 스님은 당시 매월 장이 서면 손수 공양준비 차 읍내에 나가곤 했죠. 그때마다 스님은 집 없고 부모 잃은 아이들이 장터 한복판에서 걸식을 하는 모습을 접하게 됐답니다.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얼굴에다 몇날 며칠을 굶어 뼈만 앙상해진 아이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스님은 장날마다 아이들을 절에 데리고 왔던 거죠. 그렇게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공부 시키다보니 10년 2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이들은 수십 명으로 불어났습니다. “자식 없이 중노릇하는 내가 남이 만들어 놓은 생명들, 이렇게 이쁜 내 새끼들 잘 거두는 것도 소중한 인재불사 아닌가?”
 

운동장에 선 ‘보리수동산’아이들.
운동장에 선 ‘보리수동산’아이들.

스님은 기와 올리고 단청하고 중창하는 것만이 불사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고운 마음 짓고 불성을 길러 좋은 불종자로 키워내는 일도 스님들이 간과해선 안 될 중요한 불사라고 했습니다. “중이 높은 법상에 올라앉아서 어린아이들에게 육바라밀과 팔정도를 이야기한들 그것이 포교가 되겠나?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함께 살면서 함께 놀면서 직접 불교적인 삶을 보여주고 가르쳐야 하지 않겠느냐….”

스님의 뜻을 받은 일부 아이들은 지금 어엿한 스님이 돼 있습니다. 40대가 넘은 중진스님도 있고, 강원에서 공부하고 학사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젊은 스님도 있습니다. 30년간 아이들을 키워낸 스님은 그러나 “심장이 까맣게 타버렸다.”고 말했습니다. 사춘기를 겪으면서 약속이라도 한 듯 아이들은 수도 없이 가출을 일삼았기 때문입니다.

스님은 한밤중 감나무 이파리 하나 떨어지는 소리에도 깜짝 놀라 잠이 깨서 경내를 돌아보곤 했답니다. ‘이 놈이 스님 무서워서 절에 다 와놓고 들어오지 못해 서성이고 있질 않나’하는 걱정과 ‘어디서 굶어 죽진 않았나’하는 한도 끝도 없는 근심에 스님은 마음 편히 살수가 없었던 거죠.

한번은 목포 유달산 밑에 있는 청소년 일시보호소에서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엄마를 찾아다녔다는 말을 들은 스님은 그 아이를 부둥켜 안고 실컷 울었다고 합니다. 기차를 타고 고성까지 오는 내내 스님은 그 아이와 평소에 못 나눴던 대화를 통해 그 아이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했다고 합니다. 그 후로 스님은 아이들과 정기적으로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부모와 같은 사랑을 못줘도 삶에 대한 희망은 주리라”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스님은 아이들과 한라산부터 백두산까지 하이킹을 했고, 동해안을 일주하고 백두대간을 종주하면서 세상에의 희망과 열정을 심어줬습니다.

아이들을 향한 스님의 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다른 친구들처럼 컴퓨터 게임도 하고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이 산속 암자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괜한 걱정이 앞섰던 것이죠. 옥천사 청련암에서 이 곳 좌련초등학교로 아이들의 둥지를 옮긴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폐교된 초등학교를 어렵게 인가받은 스님은 올해 1월1일부터 ‘보리수동산’이란 문패를 내걸고 아이들을 마을 속에서 살게 했습니다. 독서실도 만들고 컴퓨터실도 꾸며주고 신나게 운동할 수 있는 실내 체육관도 설치했습니다. 부처님을 모신 법당에 피아노와 사물놀이기구들도 들여서 언제나 부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습니다.

현재 보리수동산에는 35명의 아이들이 ‘아빠’스님과 함께 살고 있지만, 부모가 있는 동네아이들도 이 곳에서 살다시피 한답니다. 마을에 있는 초·중·고등학교는 보리수동산에 사는 아이들이 대다수다보니, 부모가 없다고 스님과 함께 산다고 놀리거나 주눅 든 아이들도 없다고 하네요.

“절에 살적엔 학교에서 ‘새끼중’이라는 놀림도 많이 받았나봐. 하지만 이젠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주축이 돼서 어찌나 용감하고 씩씩하게 자라 가는지 기특해 죽겠다니까.” 수십 명의 부모가 된 스님은 학교에서도 운영위원장의 자리를 맡고 있습니다. 교장도 교육감도 스님의 삶에 박수를 보내고 언제나 아이들 편에 서서 아이들을 걱정하는 스님 덕에 다른 학부모들도 늘상 감사하게 여긴답니다.

스님은 매년 졸업식이나 입학식엔 제일 멋진 가사와 장삼을 수하고 아이들의 환호를 받으면서 식장에 서서 축사를 한답니다. “우리스님이 단상에 올랐다고 뿌듯해하는 내 새끼들을 멀리서 보고 있으면 내 마음도 훈훈해진다 아이가.”
 

스님의 30년 삶의 이야기가 끝날 무렵 수 십 대의 자동차가 운동장에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일요일이면 아이들 숫자보다 더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몰려온다며 흐뭇한 걱정을 합니다. 스님의 손길을 거쳐 간 이들, 스님의 사랑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스님의 ‘자식’들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이 곳 보리수동산을 찾아온답니다. 때마침 교문에 수녀와 신부들도 들어섰습니다. “부활절이라서 스님께 예쁜 달걀을 보시하러 왔습니다.”

한량없는 스님의 자비로운 삶에 지역의 타종교인들도 보리수동산을 찾았습니다. 장애아동을 돌보는 이웃종교의 수녀와 신부들을 맞은 스님은 그들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내는 이 분들을 보면 부끄럽다. 내는 사지가 멀쩡한 아이들 데리고 사는데도 이리 힘들어하는데 말이다. 이분들이 보살이다 보살.”

고성=하정은 기자 jung75@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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