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성/ 불교방송본부장

양성평등은 이제 시대의 대세다. 사회 각분야에 여성진출이 늘고 새 정부의 각료로 4명의 여성이 입각한 것이 좋은 예다. 전통적으로 완고하고 보수적이던 종교계도 예외가 아니다.불교의 전통종단 조계종은 최근 법장스님을 총무원장으로 하는 새 집행부를 구성하면서 비구니 스님을 문화부장과 국장으로 임명했다.세계종교사에서 여성을 남성과 동등하게 인정해온 종교는 불교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 이제는 교단행정의 고위직에 비구니를 앉히기까지 했으니 이는 확실히 파격을 넘어 낡은 관행의 혁파라 할 만하다. 교리적으로 만인평등을 가르쳐온 불교로서는 이 문제가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양성평등을 향한 불교의 노력은 부처님 당시부터 있었던 일이다. 강고한 계급제도가 엄존하던 고대 인도사회에서 최초로 여성출가를 허락한 종교가 불교다. 다른 종교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을 결심하기까지 고민도 많았다.여성이 최하단의 수행생활을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은데다가 남성중심의 교단에 여성이 입단하면 도덕적 문란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가 아닌 한 해탈을 위해 출가하겠다는 것을 막을 명분이 없었다.중아함 28권 116경〈구담미경(瞿曇彌經)〉에는 부처님이 아난다의 간청을 받아들여 이모였던 대애도 부인 등에게 여성출가를 허락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부처님은 당시의 사회적 환경과 문화적 관습을 고려해 8가지 특별법(八尊師法)을 설했다.“1) 비구니는 마땅히 비구로부터 구족계를 받아야 한다. 2) 비구니는 반달마다 비구에게 가서 설법을 들어야 한다. 3) 만일 가까운 곳에 비구가 없으면 비구니는 안거를 하지 못한다. 4) 여름 안거를 마친 뒤에는 2부중 앞에서 보고 듣고 의심나는 것에 대해 고백하고 비판을 구해야 한다. 5) 비구니는 비구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경율론을 물으면 안 된다. 6) 비구니는 비구의 허물을 말할 수 없고 비구는 비구니의 허물을 말할 수 있다. 7) 만일 비구니가 승잔죄(僧殘罪)를 범하면 마땅히 2부중 가운데서 15일 동안 근신해야 한다. 8) 비구니는 구족계를 받은 지 100년이 되었더라도 처음 구족계를 받은 비구를 향해 지극히 마음을 낮추고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공경하고 받들어 섬기며 합장해야 한다…” 그런데 이 팔존사법 가운데 특별히 뒷날까지 문제가 된 조항이 하나 있다. ‘100세 비구니라도 갓 출가한 비구에게 예배해야 한다’는 대목이다. 이 조항은 관점에 따라 불교가 여성을 차별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부처님 당시 교단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생긴 오해다. 지금도 그렇지만 출가수행자는 독신생활을 하기 때문에 남녀동거가 불가능하다. 부처님은 주로 비구들과 생활했으므로 여성출가자는 비구들의 거처 가까운 곳에 처소를 정하고 수행해야 했다.부처님은 비구들로 하여금 비구니에게 설법해주도록 했다. 이때 비구니는 비구가 젊더라도 예배하라는 것이다. 남성이라는 ‘성적 권위’에 복종하라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 대신 설법하는 ‘법사의 권위’에 귀의하라는 뜻이었다.그럼에도 남성중심의 승단은 이를 너무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여성을 비하하는 증거로 삼으려 했다. 억지라면 억지고 오해라면 오해였던 셈이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대학에서는 비구니가 비구를 가르치고, 중앙종회에도 비구니가 활동하고 있다. 이번 비구니 문화부장 임명은 그 연장선상에서 비구니들의 종교활동에 새 지평을 열어주는 획기적인 조치다.이를 계기로 그 동안 교단 내에 암묵적으로 존재하던 여성비하 분위기도 달라지기를 기대한다. 부처님이 여성출가를 허락한 뜻을 새롭게 새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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