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야 고마워! 너희 덕에 내가 산다”

향공양, 육법공양 중 으뜸인 것은
자신을 태워 주변을 청정케 하는
‘토끼의 소신공양’ 나타내기 때문

부처님 전생이야기 향로에 투영
고려인의 불심, 최고라 할 만해

청자 칠보문 뚜껑 향로 대좌에서 앙증맞게 향로를 떠받들고 있는 예쁜 토끼 세 마리가 이 향로의 주인공으로 소신공양한 전생의 석가모니 부처님을 상징한다.
청자 칠보문 뚜껑 향로 대좌에서 앙증맞게 향로를 떠받들고 있는 예쁜 토끼 세 마리가 이 향로의 주인공으로 소신공양한 전생의 석가모니 부처님을 상징한다.

경전과 계율의 법을 듣기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살라 한 끼 식사로 공양한 ‘토끼의 살신성인(殺身成仁)’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가 <구잡비유경(舊雜譬喩經)>에 전한다.

옛날에 나이 120이 되는 어떤 범지(梵志)가 산중에서 수천 년을 지내면서 날마다 네 마리 짐승들과 즐겼다. 여우와 원숭이, 수달, 토끼는 날마다 범지, 그 도인에게서 경전과 계율의 법을 들었다. 그러던 중 산에 먹을 것이 떨어져 범지가 다른 곳으로 떠나려 하자 네 마리 짐승은 “우리가 각기 나가서 도인을 위하여 공양할 것을 구해 오자”고 약속하고 도인이 떠나지 말기를 마음으로 원하였다. 원숭이는 맛있는 과실을 가져와 도인에게 바쳤고, 여우는 밥과 미숫가루를 구해 와서 도인에게 바쳤다. 수달은 물에 들어가 큰 고기를 잡아 와서 도인에게 바쳤다.

바칠 것이 없었던 토끼는 ‘나는 무엇으로 저 도인을 공양할까?’ 생각하였다. ‘나는 내 몸으로 공양하자.’ 그리고는 마른 풀을 주워 와 불을 붙이며 도인에게 말하였다. “제가 이 불 속에 들어가 구워지면 하루 양식은 될 것입니다” 말하고 토끼는 불 속에 몸을 던졌다. 도인은 토끼의 그 인의(仁義)에 감동받고 또 그들을 가엾이 여겨 떠나지 않고 거기에 머물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때의 그 범지는 저 제화갈라(提和竭)부처님이요, 토끼는 내 몸이며, 원숭이는 저 사리불이요, 여우는 저 아난이며, 수달은 저 목건련이니라.”

청자향로에 담긴 소신공양 이야기

이러한 부처님의 소신공양(燒身供養) 토끼 이야기는 불심이 깊었던 고려 장인에 의해 ‘청자 투각 칠보문 뚜껑 향로(靑磁 透刻 七寶紋 蓋 香爐)’로 되살아나 감동을 주고 있다. 국보로 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고려 전기(12세기)의 청자 향로는 높이 15.3㎝, 대좌 지름 11.2㎝의 크기이며 칠보문 뚜껑과 국화 잎 화로, 토끼가 받든 대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청자 향로 대좌에 앙증맞게 향로를 떠받들고 있는 예쁜 토끼 세 마리가 이 향로의 주인공으로 소신공양한 전생의 석가모니 부처님을, 둥근 화로 형태의 향로의 몸통을 감싸고 있는 몇 겹의 국화잎은 토끼가 범지에게 공양하기 위해 불을 붙인 마른 풀을 나타내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향로 뚜껑인 구형(球形) 투각 칠보문은 향이 피어오르듯 토끼의 어짊과 의로움이 삼천대천세계에 퍼져나감을 표현하였다.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를 향로에 투영시킨 고려인의 불심은 가히 최고이다. 이처럼 향공양이 육법공양 중 가장 으뜸인 것은 자신을 태워 주변을 청정케 하는 토끼의 소신공양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삼국유사>에서는 “향은 태우면 향기가 자욱해져서 신성(神聖)한 곳에 정성을 다하게 되며, 만약 이것을 태워 소원을 빌면 반드시 신령스러운 감응이 나타날 것”이라고 하였다.

스님의 가사에 장식된 토끼 문양.
스님의 가사에 장식된 토끼 문양.

옛날부터 향은 피우는 사람의 마음을 청정케 하고 주변을 성스럽게 하며, 소원을 이루는 중요한 물건으로 신성시해왔다. <법원주림>에 스님의 가사에 토끼가 새겨져 있는 이유 또한 토끼의 소신공양에서 비롯되었다. “토끼의 소신공양에 감동한 제석천이 잿더미에서 남은 토끼 뼈를 추리면서 여우와 원숭이에게 말했다. ‘나는 토끼의 마음에 감동해서 그의 자취를 없애지 않겠다. 월륜(月輪)에 기탁해서 후세에 전하리라.’ 모두가 말하는 달 속의 토끼는 이로부터 유래된 것”이라고 하였다.

토끼띠 백성들의 부처님 외호 모습

경주 원원사지 불탑과 울산 태화사지 십이지 사리탑에는 토끼를 조각하여 신라의 토끼 띠 백성들이 부처님을 받들고 외호하는 상징성을 나타내었다. 원원사지 불탑 기단부 하단에 열두 동물인 십이지상(十二支像)의 하나인 토끼를 새겨서 토끼띠의 백성들이 부처님을 찬탄하고 외호하는 모습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을 ‘띠’라는 열두 동물을 불탑에 새겨둠으로써 어느 한 사람이라도 부처님을 받들지 않는 사람이 없도록 하였다. 인간이 먼저 부처님을 예배하고 받들면 그 위 기단부 상단에 여래 8부중을 조각하여 하늘의 신들이 부처님을 외호토록 하였다.

울산 태화사지 세존사리탑의 토끼.
울산 태화사지 세존사리탑의 토끼.

울산 태화사지 세존 사리탑에도 십이지의 모습이 나타나는데 토끼 형상의 얼굴에 몸뚱이나 팔다리는 사람의 모습으로 토끼띠 백성들을 모두 나타내었다. 연꽃봉오리 모양을 하고 있는 세존사리탑의 남쪽 윗부분에 감실을 만들고, 그 안쪽을 파서 사리를 모셔 두도록 하였다. 감실 아래로는 열두 동물을 도드라지게 새겨놓았는데, 신라의 모든 백성이 부처님을 받든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순천 선암사 원통각 어간문에는 달 속에 옥토끼가 있어 항상 불사약(不死藥)을 찧고 있다는 전설을 조각해 둠으로써 오래오래 장수를 바라는 동물로 토끼를 인식하여 왔다. 궁창에 이백(李白)의 ‘파주문월(把酒問月)’ 시에 “달 속의 옥토끼는 불사약을 춘추로 찧고 있다(玉搗藥秋復春)”는 유명한 구절을 나타내었다.

밀양 표충사 대광전 보단에는 거북이가 토끼를 등에 태우고 험난한 파도를 헤치며 이상향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는 조각이 있다. 이런 이야기는 부처님의 전생담을 모아놓은 <자타카>에 특히 많이 등장한다. 몰아치는 고해의 파도가 너무 심하여 짐짓 거북이도 놀란다. 모든 것을 삼킬 것 같은 성난 파도에 놀란 토끼는 간이 오그라지는 듯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앞발로 거북이의 등을 꼭 잡는다. 거북이는 느리지만 유순하고 장수를 상징해 부처님을 대신했고, 토끼는 급하고 인과(因果)를 살필 여유가 없는 나약한 인간을 대신했다. 그러나 결국 부처님을 통하여 피안에 이른다는 비유를 나타낸 것으로 중생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거북과 토끼로 표현하였다.

수원 팔달사 토끼와 호랑이 벽화.
수원 팔달사 토끼와 호랑이 벽화.

공존공생…토끼의 지혜 배우는 새해

수원 팔달사에는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토끼와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이야기가 있다. 긴 담뱃대를 두고 산중의 왕 호랑이와 연약한 토끼와의 공존, 공생으로 약자와 강자가 함께 서로 돕고 살아가는 지혜를 일러주고 있다. 만약 토끼가 없으면 호랑이는 장죽의 담배 맛을 평생 느끼지 못하였으리라. 서로 간의 인정 속에 은근하게 나타나는 미소를 발견할 것이다. 호랑이 아저씨 왈 “토끼야 고마워 너희 덕에 내가 산다.”

‘교토삼굴(狡兎三窟)’이라는 고사(故事)가 있다. <전국책> 제책편(戰國策 齊策扁)에 나오는 이야기로 지혜로운 토끼는 위험한 상황을 감안하여 미리 세 개의 굴을 뚫어 놓는다는 말이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퇴로를 미리 확보해 놓는 토끼의 지혜를 배우는 계묘년(癸卯年)이 밝았다.

 

[불교신문 3749호/2023년1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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