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 명작

노재학 지음/ 불광출판사
노재학 지음/ 불광출판사

전통단청 전문 사진작가
사찰의 벽화, 불상, 불화
명작의 반열로 이끌어내

“시야를 전체로 넒혀가면
새로운 이야기가 보인다”

완벽한 신체 비율을 자랑하는 경주 석굴암 부처님이나, 옅은 표정 속에서도 깊은 사유를 뿜어내고 있는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은 종교를 초월해 명작의 반열에 올릴 수 있는 예술작품이다. 이런 작품들은 대개 ‘국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국보 혹은 보물이 아니라도 천년고찰에는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수많은 명작을 만나볼 수 있다.

<한국 산사의 단청 세계> 등을 펴낸 노재학 사진작가가 최근 펴낸 <산사 명작>은 전국 사찰이 품고 있는 명작들을 엄선해 실어 주목된다. 1년 중 근 300일을 길 위에서 보낸다는 노재학 작가는 궁궐, 전통사찰, 향고, 서원, 종택 사당, 정려각 등 전통 목조 건축에 남아 있는 단청 문양과 벽화 등을 20년 넘게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오래된 노거수와 건축 사진 작업도 병행했다.

20년 넘게 단청을 기록한 노재학 사진작가가 사찰의 돌, 나무, 그림이 들려주는 오래된 이야기를 엮은 ‘산사 명작’을 최근 출간했다. 사진은 안성 청룡사 대웅전 ‘반야용선도’
20년 넘게 단청을 기록한 노재학 사진작가가 사찰의 돌, 나무, 그림이 들려주는 오래된 이야기를 엮은 ‘산사 명작’을 최근 출간했다. 사진은 안성 청룡사 대웅전 ‘반야용선도’

먼저 저자에 따르면 안성 청룡사 대웅전 ‘반야용선도’는 그 자체로도 잘 그린 그림 소리를 듣긴 하지만 이 그림을 더욱 빛나게 하는 특별함이 숨어 있다. 반야용선은 아미타불이 왕생자들과 함께 극락으로 갈 때 타는 배다. 극락으로 향하는 탑승자 면면은 승속은 물론 남녀, 계층의 구분이 없다. 그래서 탑승자 묘사에는 대개 시대를 반영하기 마련이다. 청룡사의 ‘반야용선도’에는 특이하게 남사당패가 타고 있다. 조선 후기 스님이 써준 부적을 팔아 사찰 불사에 보태던 이들이었던 남사당패의 근거지 중 한 곳이 바로 청룡사였기 때문이다. 남자 셋, 여자 셋으로 구성된 그림 속 남사당패 중에는 소고와 요령 같은 악기를 들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그런데 이들 남사당패가 모여 있는 뱃머리 선두 부분에 갖은 치장을 한 여성의 모습이 보인다. 반야용선도 형식을 아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할 대목이다. 대개 그 자리는 부처님이나 보살의 자리였기 때문이다. 여성은 긴 나무 막대기를 들고 있는데 그 막대기 끝은 십자 모양으로 농경 사회의 의례용구인 ‘살포’ 이미지를 떠올린다. 평범한 사람은 아니고 바로 ‘대장’이라는 의미다. 저자는 이 여성을 남사당 역사에서 유일무이한 여성 꼭두쇠로 알려진 바우덕이로 추정한다. 청룡사에서 스님들 손에 의해 키워져 남사당패 꼭두쇠가 된 바우덕이가 남사당패의 선두에 선 것이다.

물론 ‘추정’이긴 하지만 앞뒤를 이해하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가 보태지면서 청룡사 반야용선도는 ‘잘 그린 그림’에서 ‘뜻 깊은 그림’이 됐고 시절이 지나며 가히 명작이라 부를 수 있는 반열에 올랐다.

이와 더불어 청도 대적사 극락전 벽화도 눈여겨 볼만하다. 힘센 장사 품세의 사람이 발우에 사람을 담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뭔가 대담하고 극적인 장면 같지만, 그냥 봐서는 이해할 수 없다. 저자는 “이 벽화의 감상 요령은 시야를 벽면 전체로 확장하는 것“이라며 “그림 위쪽에는 천의를 드리운 비천이 있고, 대들보엔 길상화를 입혔는데 그래도 잘 이해가 안 가면 좌측을 보면 인로왕보살과 지장보살이 자리잡고 있다”고 강조했다.

즉 극락으로 인도하는 두 보살이다. 극락이 위에 있고 옆에서 인로왕보살과 지장보살이 인도한다. 힘센 장사가 발우에 담아 치켜올린 건 바로 그들을 극락으로 보내기 위해서라는 의미다. 대개 극락으로 가는 방법은 연꽃에서 피어나 극락에 환생하거나 아니면 반야용선도에서 보듯이 아미타불이 이끄는 반야용선을 타고 간다.

저자는 “이렇게 단숨에 치켜 올려 극락에 보내는 그림은 국내는 물론 세계 어디에도 없다”면서 “힘센 장사의 실체는 16아라한 중 ‘빈 발우’가 지물인 제2 아라한 가락가벌차”라고 말한다. 이처럼 화공은 가락가벌차를 통해 남녀를 태워 극락으로 보내는 ‘파격’을 선택했다. 마침내 규칙을 벗어나 명작으로 탄생한 순간이다.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