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왕실발원 불상의 연구

유근자 지음/ 불광출판사
유근자 지음/ 불광출판사

유근자 문화재전문위원
조선의 왕실 발원 불상
관련 문헌 정밀히 분석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
‘인간의 드라마’ 읽어내

조선시대는 흔히 국가적인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으로 인해 불교가 침체 됐던 시기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는 여러 면에서 불교가 사람들의 삶과 밀접하게 소통하는 시기였다. 왕실이나 민간 모두 병으로 인한 고통의 해결과 죽음 이후 영가 천도를 불교를 통해 기원했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 왕실은 왕실 인물의 생전 안녕과 사후 극락왕생을 염원하며 여러 불상을 조성했다. 이런 가운데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동국대 강의초빙 교수로 재직 중인 유근자 강원도·경기도 문화재전문위원이 최근 펴낸 <조선시대 왕실발원 불상의 연구>는 왕실 발원으로 조성된 불상의 복장 유물 및 여러 관련 문헌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있어 주목된다.

저자는 앞서 한국연구재단 저술지원사업으로 발간한 <조선시대 불상의 복장기록 연구>에서 조선 전기와 후기의 불사에 나타난 가장 큰 변화 가운데 하나로 시주 층의 변화를 주목했다. 조선 전기에 비해 후기에는 전반적으로 왕실 발원 불상 조성이 축소됐고, 민간 발원 불상이 확대됐다. 특히 재가자인 거사와 사당이 불사의 재원을 마련하는 계층으로 등장하는 것이 17세기 이후의 새로운 시주층 변화였다.

유근자 강원도·경기도 문화재전문위원이 왕실 발원으로 조성된 불상의 복장 유물 및 여러 관련 문헌을 정밀하게 분석한 ‘조선시대 왕실발원 불상의 연구’를 최근 출간했다. 사진은 수원 용주사 대웅보전 석가여래삼세불상.
유근자 강원도·경기도 문화재전문위원이 왕실 발원으로 조성된 불상의 복장 유물 및 여러 관련 문헌을 정밀하게 분석한 ‘조선시대 왕실발원 불상의 연구’를 최근 출간했다. 사진은 수원 용주사 대웅보전 석가여래삼세불상.

하지만 저자가 이번에 펴낸 조선 왕실과 관련된 불상 연구에서는 기존 해석을 수정하게 됐다. 즉, 억불숭유 정책을 실시한 조선 시대였지만, 왕실은 불상·불화·범종의 조성, 경전 간행, 불전 건립 등을 조선 초부터 말까지 후원했다는 것이다. 조선 왕실은 불상·불화·범종의 조성, 경전 간행, 불전 건립을 후원했다. 왕과 왕비, 후궁 등이 직접 사찰 불사에 동참한 경우도 있고, 왕자와 공주 및 그 배우자가 참여한 사례도 있다. 이 외에 왕실의 종친, 왕실과 사찰 간의 매개자 역할을 했던 상궁의 동참도 눈에 띈다. 저자가 조사한 조선시대 불상의 복장 기록은 조선 전기부터 말기까지 왕실 인물들이 불상 조성과 중수에 참여한 사실을 확인했다.

조선시대 불상 가운데 왕실과 관련된 대표적인 불상으로 대구 파계사 건칠관음보살상,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불상, 오대산 상원사 문수동자상, 순천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상, 수원 용주사 석가여래삼세불상 등이 있다. 이 가운데 호불군주로 알려진 세조 때 조성된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상,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침사찰로 건립한 용주사에 봉안된 석가여래삼세불상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책 1부는 조선시대 왕실 발원 불상에 대한 총론이다. 조선시대를 조선 전반기(1392~1608), 조선 후반기 제1기(1609~1724), 조선 후반기 제2기(1725~1910)의 세 시기로 나눠 고찰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조선 왕실 발원 불상 가운데 대표적인 것을 시대순으로 나눠 살펴보며, 조선 왕실과 불교 관계를 흥미롭게 규명한다.

2부는 저자가 직접 참가한 왕실 발원 불상 복장 조사 결과를 정리했다. 연구대상이 된 불상의 복장 조사는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이뤄졌으며, 사찰의 의뢰 또는 사업의 일환으로 별도로 구성된 조사팀에 의해 진행됐다. 사람들의 삶과 밀접하게 소통한 조선 불교의 모습이 이 책의 풍부한 자료와 다채로운 사진을 통해 경이롭게 펼쳐진다.

저자는 “조선시대 왕실과 관련된 불상들은 생전의 병 치유 및 사후의 천도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면서 “병을 치유하는 것은 약사신앙 및 관음신앙과 주로 연관됐고, 사후의 명복을 기원하는 것은 아미타신앙과 관련됐다”고 밝혔다. 이어 “특히 세조와 단종, 광해군과 영창대군, 인조와 소현세자 사이에 벌어진 왕실의 권력 싸움이나, 영조 시대의 당쟁에서 비롯된 사도세자의 죽음과 같은 비극적인 사건은 사찰과 왕실의 관계를 긴밀하게 했다”면서 “이러한 사건이 일어난 뒤, 패배한 쪽에서는 불교로 위안을 받고자 불상을 조성했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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