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감수하더라도 진실 볼지
모르는 게 약인채로 적당히
행복누리며 허망하게 떠날지

“진리를 찾는 것과 행복을 찾는 것이 다름을 일찍이 알았다. 진리를 보는 것을 염원하지만, 일단 보게 되면 고통을 피할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이다.” 영화 <나를 만나는 길>에서 틱낫한 스님은, 누구나 찾아 헤매는 행복이라는 신기루에 대해 그렇게 직시합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키아누리브스 역)는 선지자 모피어스에게서 빨간약과 파란약을 받죠. “빨간약을 먹으면 고통스러움을 감수하고서라도 진실상을 바로 보게 되고, 파란약을 먹으면 어차피 매트릭스 꿈같은 세상사 모르는 게 약인 채로 적당히 행복을 누리며 살다 허망하게 떠날 것이다. 그 삶은 반복 윤회된다는 게 맹점. 자, 어느 쪽을 선택할 건가?” 여러분이 네오라면?

총불교학생회의 한 법우가 묻습니다. “총불 단톡방에 불교성전 사경을 하다보니 <법구경> 200번 게송에서 부처님은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말라’고 하시던데, 어떻게 모든 사람이 스님도 아니고, 이 좋은 사랑도 안 할 수 있고, 그 누굴 만나도 어찌 미움 한 번 안 느끼고 살 수가 있을까요?” “OO법우! ‘사랑도 미움도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에서 무소의 뿔은 일심(一心), 그건 실은 사랑이에요, 조건 없는 사랑! OO법우, ‘사랑’ 하세요, 후회 없이! 다만 그 사랑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눈을 뜨고 질문을 던질 줄 아는 ‘깨어있는 사랑’을 하세요. 그(녀)를 사랑하는 건지, 그(녀)에게 투사한 나를 사랑하는 건지? 내 사랑에 취해 그(녀)를 내 것이라 착각하며 소유하려 드는지? 그게 마음대로 안 되면 화가 나서 그(녀)를 비난하기 시작하는지? 나를 만족시킬 조건 그물을 잔뜩 쳐 두고 그(녀)의 행복은 궁금해 하지도 않으며 내 조건에 끼워 맞추고 재느라 얼마나 조급했던 건지? 내 상처와 내 두려움에 떠느라 그(녀)와 나의 ‘진실상’은 한 번 똑바로 봐 준 적도 없었다면, 그걸 ‘집착’이라 부르죠. 부처님은 사랑조차 막아버리는 그런 꽉 막힌 분 아니예요. 사랑 그 다음 따라오곤 하는 집착의 포로가 되어 괴로워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려거든 차라리 혼자서 가라는 것! 사랑과 미움은 동전 양면 같은 것. 집착 너머에 깨어있는 사랑을 하세요! 그럼 서로를 죽이던 사랑이 ‘살리는 사랑’으로 성숙해 갈 거예요.” “아! 그런 ‘성숙한 사랑’ 해 보고 싶어요, 스님! 요즘 집착 아니면 원망으로 널뛰기해대는 저의 인간관계 방식이 너무 괴로웠어요.”

우리는 인생의 행보를 선택할 때, 호르몬 도파민이 분비되는 쾌락적 행복이나 복수 같은 자극에 초점을 맞추느라, 세로토닌이 분비되는 고요한 밝음의 잔잔한 기쁨들을 다 놓쳐버리고 말아요. 그것이 실은 환상에 젖은 파란 약의 운명임을 뻔히 알면서도, 수행하는 까닭조차 무조건 행복이어야만 한다라고 유위법(有爲法)의 조건감옥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는 유한한 안심(安心)과 불편한 동거를 하죠.

최근 MZ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은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선 주인공 염미정이 과거의 상처 속에 갇혀 현재의 자신의 가치를 술독에 빠진 폐인 정도로 방치해버리고 사는 남자 구씨를 구출하는 보살행 프로젝트가 등장했어요. “단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 관계가 다 노동이야.” 스님 역시 그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눈에 보이는 유토피아의 특성들, 그러니까 돈, 명예, 권력, 지적 유희, 사랑이라 믿는 것들 등등으로 채워보려 애썼던 시간들이 지나갔죠. 그런데 어느 날 신호등에 걸려 멈춰 섰을 때, 알겠더라구요. 맹렬히 달려갈수록 허망해지는 이 삶들의 끝을 향한 연민이었죠. 이런 삶의 주도권은 보통 바깥에 있으니까, 주인공은 늘 소외되어 있으니까, 공허하죠.

염미정으로 대표된 우리 시대 청춘들은 ‘추앙’을 선택했더군요. 구씨에게 선언해요. “당신은 뭐라도 해야 해요. 그러니 이제부터 나를 ‘추앙’해요!” ‘내 조건을 비우고 묵묵히 그대를 지지해주는 일’인 추앙이란 실천덕목은, 구 씨 뿐만 아니라 우리를 꼭 닮은 염미정 자신에게도 간절한 출구겠죠. 이 출구를 찾아내는 일은, <반야심경>의 ‘도 일체고액(渡 一切苦厄)’ 그대로, 청년 싯다르타가 유위(有爲)의 행복을 건너 무위(無爲)의 진리를 선택한 ‘위대한 포기’, 그 역사적인 사건에 비견할 만큼, 기꺼이 빨간약을 집어드는 일이라고, 스님은 봐요. 간단한 일이 결코 아니죠. 하지만 이 선택을 하게 되면, OO법우가 서원하는 그런 사랑이 반드시 다가와요. 사랑을 모르고 깨달음을 욕심내는 바보는 참다운 구도자가 될 수 없어요.

 

운성스님(서울대총불교학생회 지도법사, 진주 용화사 주지) 다른 기사 보기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