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이성을 잃어버리면
광인(狂人)이 된다
그 광인이 절대권력을
거머쥔 독재자의 경우
광기의 역사가 뒤따라온다


톨스토이가 살아있다면
그의 조국 러시아가 일으킨
이 전쟁범죄를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구본철 교수.
구본철 교수.

러시아가 낳은 위대한 작가 레프 톨스토이(Lev Tolstoy)는 혁명적 삶을 살았다. 톨스토이는 80세를 넘게 살면서 파란만장한 삶의 궤적을 보여준다. 백작가문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자기가 거느린 노예인 농노의 계몽과 교육에 힘을 쓴 사회운동가이자 교육자였다.

독단적 권위로 민중의 인권을 억압하는 러시아 정교회를 비판하다 파문당했으며, 국가의 권력에 맞서 비폭력 평화주의를 주창한 아나키스트였다. 사유재산을 포기하고 농노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청빈하고 금욕적인 수도자의 삶을 살았다. 그는 말년에 아내와 불화로 가출을 시도해 쓸쓸히 객사한 방랑인이었다.

톨스토이의 위대성은 그의 완성된 인격이 아니라, 자기모순과 자기성찰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극복한 성장의 과정에 있다. 실상 그의 삶은 모순으로 가득했다. 여자농노와 사이에 사생아를 낳았고, 도박에 빠져 큰 빚을 지기도 했다. 귀족신분으로 러시아 상류사회의 사교계를 드나들며 방탕한 세월을 보냈다.

욕망에 찌든 행동과 고통스런 자기반성은 오랜 기간 반복됐으며, 이러한 모순적 과정에서 톨스토이는 삶의 의미와 인간의 존재성을 찾게 된다. 그의 대표작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 등은 자신과 닮은 인간의 도덕적 성장과정이 들어있다.

<전쟁과 평화>는 누구나 제목은 알지만 완독하기엔 힘들 정도로 엄청난 분량의 대하소설이다. 등장인물만 수백 명인 이 작품은 19세기 초 프랑스의 러시아 침공에서 시작하여 내전을 거쳐 변화의 소용돌이로 빠져드는 러시아의 성장역사가 줄거리다. 전쟁영웅 나폴레옹에 맞서 승리하는 러시아 민중의 의지, 등장인물 사이에 얽힌 사랑, 고뇌, 운명 등 개별이야기가 광활한 영토를 배경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작가는 교만한 영웅 나폴레옹의 몰락을 통해 전쟁이 초래한 허무주의적 비극성을 지적한다. 동시에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전쟁터에서 시련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의 의미를 개척하는 개별 인간의 생명력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에서 혐오한 전쟁의 폭력성은 나중에 그가 비폭력 평화주의 사상가로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톨스토이가 그토록 사랑했던 조국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지 벌써 수개월째다. 수천 명이 넘는 민간인이 죽음을 당했고, 수백 만 명의 전쟁난민이 평화를 잃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한때 같은 나라였고, 동족의 개념을 공유한 역사가 있다. 이미 이성을 잃은 러시아 최고권력자는 대량살상을 목적으로 핵무기까지 사용할 태세다. 가상세계를 현실로 만드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동물의 왕국에서나 보던 원시적 야만성이 되살아난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 전쟁에 사로잡힌 나폴레옹의 모습을 “신은 파멸시키려는 인간에게서 먼저 이성을 빼앗아간다”라 묘사한다. 인간이 이성을 잃어버리면 광인(狂人)이 된다.

그 광인이 절대권력을 거머쥔 독재자의 경우, 광기의 역사가 뒤따라온다. 톨스토이가 살아있다면 그의 조국 러시아가 일으킨 이 전쟁범죄를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우크라이나에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기를 바랄뿐이다.

[불교신문 3721호/2022년6월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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