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바닷길 기원 '윤왕좌' 관세음보살상

결가부좌에서 한쪽 무릎 세워
손목이나 팔꿈치를 올려놓고 
다른 팔은 뒤쪽 짚은 채 편안

고려시대부터 나타난 '윤왕좌(輪王坐)' 

백련결사도량 고성사도 있어 
고려후기 어느 종파 불문하고 
예불 대상이었음을 알게 해줘

안전한 바닷길을 안내해주는 관음신앙이 널리 자리 잡았음을 알려주는 보살상으로서 큰 가치를 보여주는 '해남 대흥사 관음보살좌상'(조선 전기, 높이 49.3㎝, 대좌 높이 38.6㎝, 보물). 대좌의 크기가 보살상보다 훨씬 큰 것도 눈길을 끈다.
안전한 바닷길을 안내해주는 관음신앙이 널리 자리 잡았음을 알려주는 보살상으로서 큰 가치를 보여주는 '해남 대흥사 관음보살좌상'(조선 전기, 높이 49.3㎝, 대좌 높이 38.6㎝, 보물). 대좌의 크기가 보살상보다 훨씬 큰 것도 눈길을 끈다.

대흥사(大興寺)는 해남 땅끝마을 두륜산(頭崙山)에 포근하게 안기듯이 자리하고 있다. 두륜산을 대둔산(大芚山)이라 부르기도 했기 때문에 원래 사찰명은 대둔사(大芚寺)였으나, 근대 초기에 대흥사로 명칭을 바꾸었다. 

대흥사는 서산대사 청허휴정(淸虛休靜, 1520~1604)스님이 전쟁을 비롯한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三災不入之處)으로 만년동안 훼손되지 않는 땅(萬年不毁之地)이라 하여 그의 의발(衣鉢)을 보관하도록 한 도량으로도 유명하다. 이로 인해 호국불교의 성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후 대흥사는 많은 선각들을 배출하여 선수행과 강학으로 유명한 도량이 되었고, 근대 한국불교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였다. 13명의 대종사(大宗師)와 13명의 대강사(大講師)가 이곳에서 배출되었는데, 이 가운데 한 분인 초의선사는 우리나라 차문화(茶文化)를 선양한 대표적 인물이다. 

대흥사 경내는 북원(北院), 남원(南院), 별원(別院)으로 나눠진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다. 각 전각에 봉안된 불상렛불화는 국가렛시렛도지정문화재가 많은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성보가 많다. 또한 해남, 목포, 영암, 무안, 신안, 진도, 완도, 강진, 등 바다 근처의 사찰들을 관할하고 있어, 우리나라 해상의 불교문화를 이해하는데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해상 불교문화 이해에 중요 

오늘 소개할 성보는 이러한 안전한 바닷길과 해난(海難)에서 중생을 구제하는 신앙으로 조성된 '대흥사 관음보살좌상(觀音菩薩坐像)'이다. 우리나라에는 예부터 관음보살이 이 땅에 상주한다는 낙산사 관음신앙과 더불어 이러한 해난구제(海難救濟)의 관음신앙이 있었다. 

관음보살은 현실에서 중생들의 고통에 귀 기울일 뿐만 아니라 사후에도 아미타여래와 함께 극락으로 인도해주는 자비로운 보살님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모든 보살 가운데 제일 전지전능한 보살로 인기가 많았다.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에는 관음보살이 남방 해상(海上) 보타락가산(普陀洛迦山)의 아름다운 바닷가 바위 위에 앉아 선재동자의 방문을 받는 내용을 설하고 있다. 또한 <법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에는 현실에서 발생하는 여러 고난을 해결해 주기 위해, 중생이 부르면 그에 맞는 33가지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나타난다고 하였다. 

이처럼 관음신앙은 현실의 고통을 없애주는 것과 깨달음을 인도하는 보살의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다양한 중생의 소원을 들어주는 관음보살상을 조성하는 것은 어느 종파에 한정되지 않고 모든 종파에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더욱 유행하였다. 

이 가운데 특히 해난과 관련된 신앙내용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해난이 발생하자 관음상을 진상했다는 서긍(徐兢)의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권34 해도매봉조(海道梅岑條)의 내용을 통해 해상을 오가던 상인들이 관음보살을 바다에서 당하는 어려운 일들을 돕는 영험한 존재로 믿어왔음을 알 수 있다. 

 

좌대를 뺀 상태의 대흥사 관음보살좌상.
좌대를 뺀 상태의 대흥사 관음보살좌상.

새로운 모습 '윤왕좌'로 등장 

그런데 대흥사 관음보살좌상에는 우리가 보통 고려불화에서 볼 수 있는 관음보살상이 오른쪽 다리를 아래로 내린 반가좌와는 다른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고려가 중국에서 새롭게 받아들인 문화의 영향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좌세를 윤왕좌(輪王坐)라 한다. 

윤왕좌는 결가부좌 상태에서 한쪽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손목이나 팔꿈치를 올려놓고, 다른 팔은 뒤쪽을 짚은 채 몸을 기울인 자세를 일컫는다. 초기 윤왕좌상은 인도의 본생담 부조 등에서 전륜성왕이나 신의 모습으로 종종 나타나므로, 전륜성왕이나 신들이 취하는 모습임을 알 수 있다. 

관음신앙과 관련하여 중국에서는 당말(唐末)에 등장하여 송대(宋代)에 발생한 다양한 형태 중 하나의 모습으로 추정된다. 당시 송과 교류가 활발했던 고려는 송에서 가장 유행한 윤왕좌의 모습을 받아들였다. 이후 중국 원(元) 황실은 티베트계 라마불교를 신봉하였다. 이러한 윤왕좌 보살상의 모습은 지속적으로 유행하였으므로, 고려 후기 불교문화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흥사 관음보살좌상은 금동불상으로는 비교적 규모가 큰 49.3cm 크기의 보살상이다. 현재 이 보살상은 대흥사성보박물관에 나무로 만든 팔각 기단의 연화대좌 위에 봉안되어 있다. 앙련과 복련이 맞붙여 돌아간 좌대와 연꽃과 안상으로 장식한 기단이 있는 대좌는 조각기법이 매우 뛰어나다. 그런데, 대좌의 크기가 보살상보다 훨씬 커서, 본래 관음보살상의 대좌로 제작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 보살상은 전체적으로 원래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신체는 허리가 길고 무릎이 낮은 편이며 손과 발은 작다. 윤왕좌의 여유 있는 포즈는 편안함을 준다. 머리에는 투각기법으로 화려한 무늬로 장식한 보관을 쓰고 있으며, 보관에는 휘날리는 듯한 관대장식이 달려있다. 보발은 어깨에서 둥글게 모아지고 세 가닥으로 갈라져 내려온다. 다소 긴 타원형 얼굴에 살짝 아래로 내려뜬 눈, 포물선형의 눈썹에서 그대로 이어지는 오뚝한 코, 미소를 약간 머금은 입 등에서 전체적으로 온화한 느낌이 든다. 

얼굴과 가슴, 복부에는 양감을 표현하였다. 팔은 원통형으로 가는 편이며, 다리는 굵고 짧은 편이다. 가슴에는 목걸이가 걸쳐져 있고, 팔에도 장식을 하고 있다. 천의를 입었는데 옷자락이 가슴 앞에서 묶어서 매듭처럼 흘러내리고 있고, 하체에는 다소 경직된 옷주름이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보살상의 모습은 고려 후기에서 조선 초기에 유행하였다. 보살상의 세부 표현은 전반적으로 고려시기 보살상의 모습과 비슷하다. 그러나 굵은 다리와 경직된 천의 자락의 표현에서 고려시대 보살상의 모습을 계승하여, 조선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강진 고성사 청동관음보살좌상(보물, 41cm, 무위사성보박물관). ‘윤왕좌’ 자세와 옷 입은 방법 등이 대흥사 관음보살좌상과 유사하다.
강진 고성사 청동관음보살좌상(보물, 41cm, 무위사성보박물관). ‘윤왕좌’ 자세와 옷 입은 방법 등이 대흥사 관음보살좌상과 유사하다.

바다 인접 해남〔강진서 유행

이와 유사한 보살상이 인근 지역인 '강진 고성사 청동관음보살좌상'이다. 이 상은 고성사 건축 공사과정에서 발굴된 것으로 총고 51cm 크기이다. 윤왕좌의 자세와 옷을 입은 방법과 얼굴 표현 등에서 대흥사 관음보살좌상과 여러 면에서 비슷하다. 이 청동보살좌상은 백련사(白蓮寺)의 암자였던 백련결사도량인 고성사에서 출토되었다는 사실에서 더욱 주목된다. 이는 고려 후기 어느 종파를 불문하고 관음보살상을 예불 대상으로 모셨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흥사 관음보살좌상은 고려시대부터 나타난 관음보살상의 새로운 윤왕좌의 모습과 당시 퍼져있던 안전한 바닷길을 기원했던 관음보살 신앙을 알려주는 보살상으로 그 가치가 크다. 

지금도 바다는 과학적으로 밝혀진 내용보다 많은 것을 비밀로 품고 있는 두려운 세계이다. 보타락가산에 계신 관음보살은 특히 이러한 어려움을 구제해주는 특별한 존재로 바다와 인접한 해남과 강진에서 이러한 윤왕좌 관음보살상이 유행한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초록이 우거진 숲길을 따라 두륜산에 올라 삼재가 들지 않는 포근한 대흥사와 남해 바다를 바라보고 싶다.

 

[불교신문 3716호/2022년5월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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