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 화암사 우화루. 앞쪽에는 누각 형태로 판문을 설치했고, 뒤쪽은 트인 공간으로 극락전의 분합문을 들어 올리면 극락전과 우화루가 하나의 정토 공간이 된다.
완주 화암사 우화루. 앞쪽에는 누각 형태로 판문을 설치했고, 뒤쪽은 트인 공간으로 극락전의 분합문을 들어 올리면 극락전과 우화루가 하나의 정토 공간이 된다.

 

“아미타부처님은 어느 곳에 계시는가?”

 

“깊은 계곡과 골짜기와 봉우리들이 연이어 

사방을 둘러보아도 길이 없고 사람과 말의 

발자취도 끊겨있으니 참으로 하늘이 땅에 

은밀한 곳을 만들어 사람에게 주신 복된 땅…”

 

“아미타부처님은 어느 곳에 계시는가? 마음 속 깊이 새겨 끊어지지 않게 하라. 생각하고 생각이 다하여 바른 생각에 이르면 항상 금빛 나는 부처님을 만나리라.”

아미타부처님을 찾아가는 길은 그리 쉽지 않다. 마음속에 새겨 끊어지지 않도록 끝없이 숲속으로 계곡을 가로 질러 오솔길을 오르고, 협곡을 따라 벼랑과 바위, 폭포를 지나 철 계단을 쉼 없이 오르다 보면 절을 찾는다는 생각조차 끊어질 즈음 바른 모습을 드러내는 우화루와 극락보전이 빛바랜 푸근함으로 반겨준다. 하늘이 내린 은밀한 극락의 세계! 불명산 화암사(佛明山 花巖寺)에서 금빛 나는 부처님을 만나게 된다. 

‘화암사운제 백문절(花巖寺雲梯 白文節)’이란 고려 시에 “어지러운 산 틈에서 놀란 계곡물은 달리는데 몇 리를 찾아드니 점점 깊숙하고 기이하구나. 소나무 회나무는 하늘을 찌르는데 칡넝쿨 드리웠고 첩첩이 쌓인 이끼 미끄러워 발 옮기기 어렵네. 말을 버리고 걸어가니 다리 힘은 빠졌는데 길은 외나무 사다리 마른 등걸 가지로구나. 한 번 친 성긴 범종소리 골짜기를 더디 빠져 나가고 구름 끝에는 있는 듯 없는 듯 지붕 희미하게 보이네”라 했다. 

 

구름 끝 우화루 옛 모습 그대로… 

예나 지금이나 화암사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말이나 차를 두고 걸어가야 하는 모습이나 등걸로 만든 외나무 사다리는 철 계단으로 변했고, 지금도 변함없이 울리는 조선전기 범종도, 구름 끝에 걸린 듯 앞을 막아선 우화루도 옛 모습 그대로이다. 

<불설 아미타경>에는 “극락세계에는 밤낮으로 여섯 때에 하늘의 만다라 꽃비가 내린다”고 했다. 바로 화암사 우화루(雨花樓)가 극락세계의 만다라 꽃비가 되어 중생들을 반겨준다. 우화루는 보물로 1611년에 지었는데 낡은 기둥의 휘어짐과 덤벙덤벙 올려놓은 덤벙 주초는 그대로가 편안하다. 앞면은 누각의 형태로 판문을 설치했고, 뒷면은 트인 공간으로 극락전의 분합문을 들어 올리면 극락전과 우화루가 하나의 정토의 공간이 되어 시원하게 느껴진다. 또한 우화루 목어는 욕심을 버린 스님처럼 청빈한 삶을 일깨워 주는데, 바래면 바랠수록, 비우면 비울수록 맑고 청아한 울림을 전해준다.

 

우리나라에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하앙식 공포’ 구조 극락전.
우리나라에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하앙식 공포’ 구조 극락전.

유일의 하앙식 공포 구조 극락전 

하앙식 공포의 극락전 처마의 용 조각.
하앙식 공포의 극락전 처마의 용 조각.

조선 선조 38년(1605)에 세운 극락전은 우리나라에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하앙식(下昻式) 공포 구조여서 국보적 가치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하앙식 구조란 바깥에서 처마 무게를 받치는 부재를 하나 더 설치하여 지렛대의 원리로 처마를 훨씬 길게 내밀 수 있게 한 구조이다.

하앙식 공포의 맨 위에는 8마리 용이 조각되어 있고 살미에는 여의주를 잡고 있는 용의 발과 비늘을 표현하여 극락의 상서로움을 표현했다. 하앙식 부재를 마감한 빗반자에는 7인의 천인들이 향과 과일을 공양하거나 장구, 대금, 동발. 나발, 비파를 연주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어 극락의 아름다운 세계를 엿 볼 수 있다.

또한 하앙식 공포를 살리고 천인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하여 과감히 큰 나무판을 사용하지 않은 극락전 편액은 한 글자 씩 해서채로 따로 써서 공포 사이에 끼워 넣었다. 편액 하나만 보더라도 우리 조상들은 고정 관념을 버리고 상황에 맞는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재주를 지니고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고산현 불우조에 화암사를 말하길 “풍헌(風軒)의 현판에는 용과 교룡이 꿈틀 거리고 세상에 드물고 절묘하다”고 하여 화암사 극락전의 하앙식 공포의 용과 비천의 아름다움을 극찬했다. 

 

극락전 아미타삼존불. 아마타불과 보관에 아미타불을 모신 관세음보살, 보병을 모신 대세지보살이 같은 설법인을 하고 있다.
극락전 아미타삼존불. 아마타불과 보관에 아미타불을 모신 관세음보살, 보병을 모신 대세지보살이 같은 설법인을 하고 있다.

하품중생인 설법인 아마타삼존불 

극락전 내부에는 아미타 삼존불을 모셨는데, 하품중생인의 설법인(說法印)의 아마타불, 보관에 아미타불을 모신 관세음보살, 보병을 모신 대세지보살이 같은 설법인을 취하고 있다. 삼존불의 머리 위에는 화려한 보개(寶蓋)가 극락세계를 장엄하고 있으며 보개 내부에는 모란꽃과 연꽃 가지를 든 2명의 천동이 막 공양을 올리려고 빠르게 비상하는 모습이 속도감을 더해준다. 뿐만 아니라 부처님을 호위하는 황룡의 사실적 표현은 살아 움직이는 듯한데, 이 용은 머리만 나무로 만들고 몸통 속은 짚을 넣고 천으로 감싸 만들었다고 한다. 

극락전 내부 오른쪽에 모셔진 16나한도는 함풍8년(1858)에 그려진 불화로, 법을 설하는 석가모니부처님은 공중에 떠 계시는 듯 대좌를 그리지 않아 갑자기 이 법석에 나타나신 모습이다. 신령스런 기운은 하늘로 뻗치고 좌우 협시 문수와 보현은 보관 보다는 미용실을 다녀와 머리 손질을 한 여성의 모습이라 재미있다. 붉은 색, 푸른 색 천의는 봉황의 깃털처럼 길게 늘어 뜨려져 있고, 삼존불 주변 16아라한들의 각양각색의 표정과 모습은 번뇌를 떨쳐버린 아라한의 자유스런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지장보살 볼 수 있는 조선전기 범종

적묵당 마루에는 조선 전기 범종이 있는데, 용뉴는 한 마리의 용과 음통으로 이루어져 있고 37존불을 표현한 사방 36개의 연꽃 봉오리가 돋을새김 되어있다. 그 사이에는 지장보살님이 오른손에는 긴 육환장을 들고 왼손에는 명주(明珠)를 들어 지옥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몸을 나타내셨다. 지장보살님이 범종에 나타나는 경우는 갑사 범종과 화암사 범종이 유일하여 또 다른 볼거리를 준다. 범종의 울림은 모든 중생들이 평안과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부처님의 음성이다. 

화암사는 옛날 원효와 의상스님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중창은 고려시대 달생(達生)이라는 사람이 절을 크게 지었는데, 또 조선시대에도 달생이라는 사람이 중창을 하였다니 참으로 귀중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전생에 선한 인연의 씨앗을 심어두지 않았다면 후세에 어찌 같은 이름의 사람이 불사를 할 수 있겠는가? 불가사의한 기운이 흐르는 곳, 불명산 화암사는 첩첩산중 별천지로 낙원을 꿈꿀만하다. 극락을 볼 수 있는 그곳으로 발길을 돌리고 싶은 절이다. “깊은 계곡과 골짜기와 봉우리들이 연이어 사방을 둘러보아도 길이 없고 사람과 말의 발자취도 끊겨있으니 참으로 하늘이 땅에 은밀한 곳을 만들어 사람에게 주신 복된 땅인 것이다”고 화암사 중창비는 전하고 있다.

 

[불교신문 3716호/2022년5월17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