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문화진흥원’...가야의 복원을 위한 지역 불교계의 연대

“가야를 정사에 편입하면
불교 전래시기 324년 앞서”

2017년 2월 김해지역
스님·재가자들이 결성
연구와 답사 지속하며
불교중흥·민족중흥 앞장

조계종 종정예하 중봉 성파대종사(앞줄 가운데)를 초청해 개최한 2019년 가야문화진흥원 학술세미나 기념촬영 모습.
조계종 종정예하 중봉 성파대종사(앞줄 가운데)를 초청해 개최한 2019년 가야문화진흥원 학술세미나 기념촬영 모습.

삼국시대에 있었던 가야(伽倻)는 흔히 신비의 나라또는 미완의 제국이라 불린다. 제법 그럴듯한 수사 같지만 내막을 살펴보면 비극적이다. 남아있는 사료가 거의 없어 그 실체를 알기 어렵다. 그러므로 왜곡하기도 쉽다. 결국 현대인들의 뇌리에는 고대 왕국의 체계를 갖추지 못해 주변 강대국들에 내내 시달리다가 끝내 멸망한 나라로 각인돼 있는 형편이다. 물론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특히 가야의 역사를 복원하면 한국불교의 시작이 완전히 달라지기에 불교계에는 매우 중요한 화두다.

경남 김해에 서 있는 파사석탑(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227)’이 단서다. 고려시대 일연스님이 저술한 <삼국유사>에도 언급돼 있는 파사석탑은 가야의 시조인 김수로왕의 왕비 허황후 황옥이 기원후 48년 음력 7월에 서역 아유타국에서 싣고 온 것이다. ()는 바(bha)의 음사로 드러내다는 뜻이고 사()는 사(sa)의 음사로 진실한 도리를 의미하는 범어이다. 즉 파사는 진리가 모습을 드러냄을 뜻한다. 불교에서 탑은 불상이 제작되기 전까지 신앙의 주요한 상징물이었다. 곧 우리나라에 탑이 들어 왔다는 것은 불교가 전래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식적으로 우리나라에 최초로 불교가 전해진 시기는 고구려 소수림왕 2(372)으로 본다. 하지만 대륙유입설이 아닌 가야에 의한 해양유입설을 따르면 무려 324년이 앞당겨진다.

가야에 불교가 흥했음을 시사하는 흔적은 많다. 김해 은하사, 장유사, 성조암, 해은사, 모은암, 밀양 부은사, 하동 칠불암 등 20여 개가 넘는 연기 사찰이 현존한다. 삼국유사라는 서지적 증거, 파사석탑이라는 물적 근거를 비롯해 장유, 선암, 별포, 능현, 기출변, 범왕리, 대비촌, 불모산, 칠왕소 등의 지명에도 민담이 얽혀 있다. 궁극적으로 인도와의 활발한 교류, 일본과의 밀접했던 관계를 고려하면, 가야는 한반도의 조그만 약소국이 아니라 태평양을 누비던 탄탄한 무역국가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리고 오늘날 이러한 영광을 규명하고 되살려내려는 스님과 불자들이 있다.

가야불교 복원의 중요한 실마리인 ‘파사석탑’
가야불교 복원의 중요한 실마리인 ‘파사석탑’

가야불교와 가야의 역사·문화를 복원하려는 흐름의 중심에 가야문화진흥원이 있다. 사단법인 가야문화진흥원은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가야불교를 새롭게 조명하고 관련 문화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 설립됐다. 현재는 가야불교의 기반이 되는 가야문화의 원형을 탐색하는 활동으로 외연을 확장하는 중이다.

그 시작은 2016년 부산 동명대학교 문화융복합콘텐츠연구소가 주관하고 김해 여여정사가 주최한 가야불교 학술대회였다. 20172월에는 법등회를 중심으로 지역의 스님, 재가자들이 가야불교의 발굴과 홍보를 위해 가야불교문화진흥원을 결성해 사단법인을 등록했다. 이듬해 11월 불교를 넘어 가야문화로 활동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가야문화진흥원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가야문화진흥원은 초대 이사장을 역임한 통도사 승가대학 학장 인해스님(김해 바라밀선원 주지)과 제2대 이사장 불인사 주지 송산스님을 비롯한 스님 5명과 재가자 20여 명으로 출발했다. 출범 이후 현재까지 가야학술대회, 전문가 초청 세미나, 가야 유적답사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학술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지역사회의 복지를 위한 활동도 병행한다. 법인 설립 전인 201610가야불교 중흥을 위한 제13000배 참회 대법회를 봉행한 것을 시작으로 2017년부터 현재까지 매년 가야 효 문화축제를 개최해 지역문화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다.

학술분야에서는 2016년 가야대학교에서 열린 1회 가야불교 학술대회를 시작으로 지난해 인제대학교에서 진행된 제6회 가야불교 학술대회까지 총 6회의 가야불교 학술대회를 개최했으며 앞으로도 학술대회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가야불교 학술대회는 그동안 동명대 장재진 교수를 좌장으로 동국대 황순일·석길암 교수, 선문대 이거룡 교수 등 전문가와 스님 등 총 22명이 발제 및 토론자로 참석했다. 지난 5년간 진행된 가야불교 학술대회에서는 총 22편의 학술논문이 발표됐다.

이를 통해 가야불교 연구의 방향을 설정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특히 고대 인도-가야 해양루트, 파사석탑, 쌍어 문양, 아유타국의 지명, 불교의 남방 해양 전래설 등에 대한 심도 있고 활발한 토론이 진행됐다. 이외에도 가야문화진흥원은 조은금강병원 허명철 이사장을 비롯한 관련 전문가를 초빙해 6회에 걸친 가야불교 관련 세미나와 좌담회를 열었다.

이와 같이 가야문화진흥원은 가야불교 관련 학술행사와 문화축제를 지속적으로 진행하면서, 가야불교 복원과 대중화의 기반을 내실 있게 다지고 있다. 궁극적인 목표는 한국불교사 속에 가야불교의 진입이다. 최근 가야문화진흥원 제3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김해 여여정사 주지 도명스님은 가야불교를 바로 세우는 일은 곧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는 일이라며 앞으로도 다각적인 활동을 이어가며. 외연을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역설했다.

 

 

도명스님
도명스님

가야불교는 한국불교의 당당한 역사

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도명스님

가야문화진흥원 이사장 도명스님(김해 여여정사 주지)은 가야와 가야불교를 복원하려는 주역 가운데 하나다. “가야와 가야불교를 바로세우는 일이 대한민국과 한국불교를 바로세우는 일이라는 굳건한 믿음의 소유자다. 불교중흥과 민족정기 회복을 동시에 성취할 수 있는 과제라는 생각에 오늘도 연구와 답사를 거듭하고 있다. 처음엔 소박했다.

그저 내가 사는 김해에 파사석탑, 은하사, 장유사 등 가야의 옛 불교 흔적이 있으니 이를 지역과 불교계의 문화 콘텐츠로 활용하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깊이 들여다볼수록 가야의 진면목이 점점 드러나는 겁니다. 가야불교는 내 삶에서 처음에는 가느다란 물줄기로 시작됐지만 지금은 커다란 강물이 되어 나의 삶을 이끌어 가고 있어요. 이제는 내가 이번 생에서 계속해야 하는 하나의 사명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반면 주류 역사학계에서 가야는 여전히 정사(正史)의 바깥에 방치되어 있다. 가야불교의 문헌적 근거가 없고, 유물이 없으며 유사 역사라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도명스님은 이 같은 주장은 역사를 보는 편협한 서양의 실증사관에 머물러서 범하는 오류라며 가야불교의 역사가 야사로 폄훼돼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역사학계에서 가야는 여전히 미답의 개척지와 같은 영역이다. 가야는 찬란했던 역사를 가졌지만 오랫동안 그 실체와 가치를 드러내지 못했다. 도명스님은 새로운 길을 만드는 과정이 비록 녹록치 않을지라도 가야는 이미 규명된 삼국의 역사보다 더 갚진 열매를 수확할 수 있는 분야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스님은 불교계에서도 삼국불교보다 앞선 가야불교의 역사를 종단 차원에서 연구해 필경에는 한국불교의 당당한 역사로 기술하였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불교신문 제3715호/2022년 5월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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