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으로 본 성도절 전통과 의미

6년 고행 후 유미죽 공양 받고
선정 끝에 깨달은 부처님 기려

중국 6세기부터 성도절 기념해
큰 법회 열고 납팔죽 나눠 먹어

우리나라는 수행에 초점 맞춰
7일 용맹정진, 철야정진 하고

성도절 새벽에 죽 함께 먹으며
깨달음 얻길 염원하며 정진

2016년 광주 무각사 성도재일 철야정진 모습. 불교신문 자료사진
2016년 광주 무각사 성도재일 철야정진 모습. ⓒ불교신문

음력 12월8일(1월10일)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은 성도절이다. 불교 4대 명절 가운데 하나로, 해마다 스님과 불자들은 성도절 하루 전날 철야정진을 하며, 부처님께서 정각을 얻은 날의 의미를 되새긴다. 코로나19로 다 같이 모여 기도하기 어려운 가운데 성도절을 앞두고 전국 사찰들은 기도정진을 이어가고 있다.

조계종 포교원(원장 범해스님)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코로나시대에 맞는 성도절 수행캠페인을 제안했다. 또 조계사(주지 지현스님)는 1월9일 오후9시부터 이튿날까지 철야용맹정진을 하고 이를 유튜브로 생중계 하며, 1월10일부터 2월4일까지 성도절 기도를 이어간다. 서울 도선사(주지 태원스님)는 4일부터 10일까지 성도재일 7일 정진기도를 봉행한다. 국제선센터(주지 법원스님)도 1월8일부터 10일까지 성도재일 3일 기도를 한다. 또 김포 연운사(주지 원명스님)은 1월9일 저녁예불 후부터 촛불걷기명상, 사불프로그램을 하며 부처님 성도재일을 기린다.

전통에 따라 철야정진을 하는 사찰도 있다. 제19교구본사 화엄사(주지 덕문스님)는 1월9일 오후9시부터 각황전에서 3000배 철야정진 법회를 함께 하고, 서울 길상사(주지 덕일스님)는 1월9일 오후9시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철야정진을 한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은 성도에 대한 기록은 <과거현재인과경> <불설보요경> <불소행찬> 등에 여러 경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과경> 권3에는 싯다르타 태자가 깨달음을 얻기까지 과정을 상세하게 기술했다. 6년간 고행을 했음에도 정각에 이르지 못한 싯다르타는 니련선하(尼蓮禪河)에서 몸을 씻었다. 극도의 고행으로 뼈와 살가죽만 남은 태자가 강 밖으로 나오자, 한 여인이 우유를 넣어 끓인 유미죽을 공양한다. 난타바라(難陀波羅)라는 이 여인은 소를 치며 살았는데, 정거천의 천자로부터 제안을 받아 금 발우에 담은 유미죽을 태자에게 올린 것이다.

죽을 먹고 기력을 찾은 싯다르타 태자는 나무아래로 가다가 풀 베는 사람을 만나 길상초 공양을 받는다. 부드럽기가 천의와 같은 길상초 위에 앉아 결가부좌를 한 태자는 정각을 얻을 때까지 일어나지 않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정진했다. 선정 중 마왕의 교란에도 현혹되지 않고, 승리한 태자는 마왕을 굴복시키며 정각에 이른다.

<불본행집경> 권30에는 “샛별이 솟을 때, 밤은 아직 적정(寂靜)하기만 하여, 다니는 것이나 다니지 않는 것들이나 모든 중생이 긴 잠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이때 세존께서는 곧 지견(智見)을 내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셨다”고 전하고 있다. 여러 경전이나 논서에서는 이 날을 2월8일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음력 12월8일로 보는 건 인도와 중국의 역법(曆法)의 차이로 빚어진 것이란 견해가 지배적이다. 중국 주나라 때 자월이 지금의 12월로, 송나라 때부터 음력 12월8일을 성도절로 삼아 성대하게 법석을 열었다고 전해진다.

성도절에 대한 가장 이른 기록은 6세기 중국 양나라 종름이 쓴 <형초세시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후베이 후난성 지역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책에는 “12월8일이 되면 마을사람들이 금강역사를 만들어 북을 치며 역질을 쫓고, 목욕하면서 업을 씻는다(村人竝系細腰鼓 戴胡公頭 及作金剛力士 以逐疫 沐浴轉除罪障)”고 전해진다.

또한 송나라 때는 성도절이 납월(臘月) 팔일이라 납팔절(臘八節)이라고 불렀다. 1147년 맹원로가 쓴 <동경몽화록>에 따르면, 납팔절이 되면 대찰에서 법회를 열고 부처님 성도를 축하했다, 일곱 가지 곡식을 넣은 칠보 오미죽을 끓여 나눠먹었는데, 이를 납팔죽(粥)이라고 불렀다.

또한 스님 3~5명이 무리를 지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불상을 향수로 씻어내는 관불의식과 함께 버드나무가지로 물을 뿌리면서 기도를 했다. 상해 세시풍속을 기록한 <상해현죽지사(上海縣竹枝詞)>에 따르면, 옛날 상해에서도 사찰 스님과 신도들이 성도재일이 되니 납팔죽에 들어갈 재료들을 보시하고, 비구니 스님들은 이를 죽으로 쒀 거리를 가득 메운 신도들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납팔죽을 나눠먹고 법회를 여는 것으로 성도절을 기념했다면 한국불교는 부처님 깨달음에 초점을 맞춰 수행하는 문화로 자리 잡았다. 1661년 개판된 의식집 <오종범음집> ‘성도재작법규식’에 따르면 스님들의 목욕하고 의복을 정제한 후 12월7일 삼경(三更)에 모여 관욕하고 물을 베푸는 시수게(施水偈) 후 죽고 차를 부처님 전에 공양했다. 조선 후기에도 성도절 의식은 중요하게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수행의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지금도 해인사 선원에서 수좌 스님들은 음력 12월1일부터 성도절까지 용맹정진을 한다. 대다수 사찰들은 성도절 하루 전날 사찰에 모여 철야정진을 하고, 자정에 유미죽을 공양하는 게 보편적이다. 코로나19로 사부대중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죽을 나눠먹는 게 어려워졌지만, 성도절 의미를 새기며 기도하고 성불하겠다는 의지만큼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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