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6년 신년 특집’
왕모산 삼소굴 운산스님의 겨울

사진 설명 1 ‘구름처럼 흘러가는 대로 산다’는 운산스님 뒤로 경북 안동 왕모산 자락이 펼쳐져 있다. “가난해야 비로소 천하를 얻을 수 있다”며 농담을 건네는 스님 미소가 편안해 보인다.  2 작은 사진들 1 ‘하루 세 번 웃으면 그 뿐’이라는 스님 철학이 담긴 삼소굴 현판. 2 똘이와 인사를 나누는 운산스님. 3 목화를 재배해 직접 누빔옷을 만들어 입는다.
‘구름처럼 흘러가는 대로 산다’는 운산스님 뒤로 경북 안동 왕모산 자락이 펼쳐져 있다. “가난해야 비로소 천하를 얻을 수 있다”며 농담을 건네는 스님 미소가 평안하다.

경상북도 안동 도산면 원천리와 단천리 그 사이 어디쯤, 산골짜기로 접어드는 좁다란 길을 오른다. 차가 들어갈 수나 있을까 싶을 만큼 좁고 경사가 심한 험로가 계속되길 수십분, “여~!  보소!” 소리와 함께 운산스님이 모습을 드러낸다. “조금 일찍 왔으면 산더미만한 산돼지가 새끼들 데리고 돼지감자 파먹는 모습도 볼 수 있었을 텐데...”하고 호기롭게 웃는 운산스님 뒤로 삼소굴(三笑窟)을 지키는 백구와 똘이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하루 세 번 크게 웃으면 그만이라는 뜻의 삼소굴, 청량사 응진전에서 7년 간 기도하다 10여 년 전 도반 스님 소개로 이곳에 터를 잡고 자급자족의 삶을 사는 운산스님은 ‘백구와 산스님 TV’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특별할 것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데도 유튜브를 시작한 지 1년 사이에 2만명이 넘는 구독자가 생겼다. 최근 들어 쏟아지는 관심에도 운산스님은 “강아지들 사료 값이 나온다 하니 좋다”며 호방하게 웃을 뿐이다.

7년 기도 마친 후 왕모산에 터 잡아
먹거리 입을 거리 모두 자급자족하며
생태친화적 삶 지향하는 자연인으로

곳곳에 산짐승 위한 목욕탕 만들고
산나물 꽃나무 등 씨앗 심으며
작은 미물부터 산짐승까지 보듬어

초야에 묻혀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는 운산스님이지만 알고 보면 다재대능한 실력자다. 사실상 농사가 불가능한 척박한 산간을 오로지 맨 손으로 일궈 친환경 유기농 재배가 가능한 땅으로 만들었다. 왕모산 자락 산 중턱, 황폐하기만 했던 삼소굴 인근이 배추밭 콩밭 목화밭 표고버섯 재배지 등 비옥토가 된 것도 모자라 사계절 내 꽃나무가 자라고 온갖 산짐승이 노니는 터전으로 되살아 날 수 있었던 건 스님 덕이다.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이 여러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알음알음 삼소굴을 찾아 오는 이도 늘었다. 스님이 산에서 직접 기른 농산물과 발효 음식을 구입하고 싶다는 문의도 이어졌다. 그러나 운산스님은 이따금 찾아오는 도반과 나눌 수 있을 정도의 양, 딱 그 정도 양으로 끼니를 잇는다. 수입이라고는 자연에서 거칠게 자란 나무를 직접 다듬어 가구를 제작해 판 돈 뿐이다. 그마저 강아지 사료값, 토굴에 드는 전기요금 등으로 빠지고 나면 손에 쥐어지는 것 없다. 조금이나마 여유가 생기면 씨앗을 사 곳곳에 뿌리고 왕모산을 정비하는 데 보탤 뿐이다. 운산스님은 대가 없이 베풀고 이유 없이 사랑하는 삶, 그 자체에서 기쁨을 얻는다.

운산스님은 “인간만이 아니라 작은 미물 하나에도 충분히 사랑을 쏟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며 “비록 가진 것 하나 없어도 자연과 하나 됨을 느낄 때 오롯이 마음 속 평안함을 느낀다”고 했다. 스님은 “어린 시절부터 삶에 대한 수많은 회의가 있어 출가의 길을 택했지만 출가 후에도 번민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며 “삼소굴에 들어와 동물과 교감하고 작은 생명 하나하나에 정성을 쏟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환하게 웃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고 말했다.

고민 없이 마냥 즐거워 보이는 운산스님이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출가 수행자의 길을 택하기 전부터 삶에 대한 회의가 끊이지 않았다. 괴로웠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어디 하나 마음 붙일 곳 없던 10대 소년, 그 마음에 우연히 집에 탁발하러 온 스님이 들었고 그날부터 요동치던 마음이 신기하게도 잔잔해졌다. 답이 그곳에 있을 것 같았다. 스님만 보이면 졸졸 뒤를 따라다녔다. 학교 공부 대신 미꾸라지를 잡아 판 돈으로 불서를 사 수백번씩 읽었다. 그래도 분명한 것이 잡히지 않았다. 송광사로 금산사로 떠돌다 청량사 회주 지현스님을 만나 기어이 출가를 이뤘다. 운산스님은 “절에 산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한 시절이었다”며 “지금의 삶도 그때와 다르지 않다”고 회상했다.
 

사진 설명 1 ‘구름처럼 흘러가는 대로 산다’는 운산스님 뒤로 경북 안동 왕모산 자락이 펼쳐져 있다. “가난해야 비로소 천하를 얻을 수 있다”며 농담을 건네는 스님 미소가 편안해 보인다.  2 작은 사진들 1 ‘하루 세 번 웃으면 그 뿐’이라는 스님 철학이 담긴 삼소굴 현판. 2 똘이와 인사를 나누는 운산스님. 3 목화를 재배해 직접 누빔옷을 만들어 입는다.
강아지 똘이와 인사를 나누는 운산스님. 
사진 설명 1 ‘구름처럼 흘러가는 대로 산다’는 운산스님 뒤로 경북 안동 왕모산 자락이 펼쳐져 있다. “가난해야 비로소 천하를 얻을 수 있다”며 농담을 건네는 스님 미소가 편안해 보인다.  2 작은 사진들 1 ‘하루 세 번 웃으면 그 뿐’이라는 스님 철학이 담긴 삼소굴 현판. 2 똘이와 인사를 나누는 운산스님. 3 목화를 재배해 직접 누빔옷을 만들어 입는다.
 목화를 재배해 직접 누빔옷을 만들어 입는다.
사진 설명 1 ‘구름처럼 흘러가는 대로 산다’는 운산스님 뒤로 경북 안동 왕모산 자락이 펼쳐져 있다. “가난해야 비로소 천하를 얻을 수 있다”며 농담을 건네는 스님 미소가 편안해 보인다.  2 작은 사진들 1 ‘하루 세 번 웃으면 그 뿐’이라는 스님 철학이 담긴 삼소굴 현판. 2 똘이와 인사를 나누는 운산스님. 3 목화를 재배해 직접 누빔옷을 만들어 입는다.
 ‘하루 세 번 웃으면 그 뿐’이라는 스님 철학이 담긴 삼소굴 현판.

어렵게 돌고 돌아 찾은 길, 스님의 확고한 신념 만큼 삼소굴 생활도 단출하다. 동이 트면 제일 먼저 강아지 네마리 밥부터 챙긴다. 별다른 이름도 없다. 하얀 강아지는 백구, 나머지는 모두 ‘똘이’로 통일해 부른다. 아침 일과는 밤새 자란 식물, 부러 심어놓은 농작물을 확인하며 산돼지며 꿩이며 산짐승이 잘 왔다갔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밭을 한 바퀴 둘러 본 뒤 그날 수확한 작물은 모두 스님 손을 거쳐 밥상에 오르고 누빔옷 재료로 쓴다. 

주문 받은 가구는 직접 제작, 수제 기타를 만드는 것도 스님의 또 다른 재능이다. 산 속을 오가며 산돼지를 위해 곳곳에 구덩이를 파 목욕탕도 직접 만들고 구렁이가 잡아 먹을까 산새들이 머물 새장도 수십개씩 만들어 놓는다. 산골짜기 생활이 외롭지 않냐는 질문에 “봄부터 가을까지는 할 일이 많아 좋고 겨울엔 고립무원이라 좋다”는 운산스님은 “이기의 인간 문명이 극심해지고 있는 시대에서 나 하나라도 자연에 해가 되지 않도록, 위대한 자연이 더 이상 인간 욕심에 의해 파괴되지 않도록 노력할 뿐”이라고 했다.

스님에겐 산중 생활의 불편과 고단이 곧 수행이기도 하다. 자연 속에서 살면서 비로소 스스로 내려 놓는 법, 아낌없이 베푸는 법을 배웠다는 운산스님은 “출가 수행자로서 한 발자국도 못 나가던 때가 있었다”며 “정해진 틀에서 볼 때는 내 삶이 자칫 괴객 행위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법문을 통해 부처님 법을 알리는 길이 있는 반면 나처럼 온 몸을 사용해 마음의 평안을 찾고 깨달음을 구하는 이도 있다”고 말했다. 왕모산 삼소굴은 스님이 지었지만 스님 것이 아니다. 삼소굴 인근 밭도 스님이 10년 간 경작해 일궈낸 것들이지만 주인은 따로 있다. 

‘모두 잠시 빌린 것’이라는 스님에겐 사실상 지금 당장 눈 앞의 일도 장담할 수 없는 삶. 그럼에도 운산스님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것, 가난에서 오는 즐거움을 오롯이 느낀다”며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소유하지 않을 때 자연속에서 비로소 진정한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내 삶 자체로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 운산스님 ‘백구와 산스님 TV’는...

운산스님이 키우는 강아지들과의 산중 생활을 가감 없이 담아낸 유튜브 채널이다. 5~15분 사이의 짧은 영상들 모두 스님이 직접 촬영한 것으로, 편집은 서울 호서대 학생들 도움을 받는다. 산나물을 채취하거나 발효액을 만들고 구렁이와 산새들 간의 앙숙 관계 등 다채로운 자연 속 이야기를 담은 영상 중에서도 스님과 백구의 일상을 담은 영상은 조회수 45만을 기록하며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안동=이경민 기자 kylee@ibulgyo.com

[불교신문3698호/2022년1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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