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동지

찹쌀가루로 새알심 만들어 쑨
팥죽 이웃과 먹으며 새해맞이
대문에 발라 액운 없애기도

고려시대 때부터 동지팥죽과
동지책력 나누는 문화 전해져
오늘날엔 보시문화로 정착돼

2020년 12월 동짓날을 맞아 제25교구본사 봉선사 스님들이 부처님 전에 올리고 사부대중에게 나눠줄 동지팥죽을 쑤는 모습. 불교신문 자료사진
2020년 12월 동짓날을 맞아 제25교구본사 봉선사 스님들이 부처님 전에 올리고 사부대중에게 나눠줄 동지팥죽을 쑤는 모습. 불교신문 자료사진

12월22일은 1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동짓날이다. 작은설(亞歲)이라고도 불리는 이날 옛날 사람들은 찹쌀가루로 만든 새알심을 넣어 쑨 팥죽을 사당에 올려 제사를 지내고, 이웃과 팥죽을 나눠먹었다. 액운을 없애는 의미를 담아 대문에 팥죽을 발랐다. 또한 관리들은 동짓날 임금을 찾아가 하례를 올렸다고 한다. 동지는 음(陰)의 기운이 강한 날이지만, 다음날은 다시 양의 기운이 세지는 날이다. 그래서 동지는 음양이 조화를 이루는 시기로 여겨져 왔다.

동지팥죽에 담긴 벽사의 의미는 <형초세시기>에 유래를 확인할 수 있다. “공공씨(共公氏)에게 어리석은 아들이 있었는데 동짓날에 죽어서 역귀가 되었다. 팥을 무서워하므로 동짓날에는 죽을 만들어 쫓는다”는 기록을 보면 우리 선조들이 역귀를 물리치기 위해 팥죽을 활용했음을 알 수 있다. 지방에서는 새해 아침 떡국을 먹듯이, 새알심을 넣은 팥죽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는 세시풍속도 전해진다.

이런 전통은 오늘날 불교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전국 사찰들은 부처님 전에 동지기도를 올리고, 팥죽을 나눠먹는다. 또한 미리 준비한 새해달력을 신도들에게 나눠주며, 새해 맞을 준비를 한다. 동지팥죽과 달력을 주고받는 문화의 전통을 따라가 보면,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백운거사 이규보(李奎報, 1168~1247)의 문집 <동국이상국후집> 8권에는 “박(朴).정(丁) 두 학사에게 동지력(冬至曆) 몇 권씩을 보낸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의 대학자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은 저서 <익제집> 2권 ‘동지(冬至)’라는 시에서 “우리집 오늘 아침 형과 아우는/ 여러 종을 시켜서 팥죽을 끓일거야(最憶吾家弟與兄 齊奴豆粥咄嗟烹)”라고 전하며 “우리나라 사람은 동지에 반드시 팥죽을 끓여 먹는다”고 주석을 달아 고려시대 이미 동지팥죽 문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말기 문신 목은 이색(李穡, 1328~1396) 또한 동지팥죽에 대한 시를 남기기도 했다. 팥죽에 대한 시를 유독 여러 편 남긴 이색은 ‘동지(冬至)에 팥죽을 먹다’는 제목의 시에서 “동지에는 음이 극도에 이르러서/ 이 때문에 일양이 생기는 것이라(冬至陰乃極 故有一陽生)”며 “팥죽 먹어 오장을 깨끗이 씻으니/ 혈기가 조화 이루어 평온하여라(豆粥澡五內 血氣調以平)” 하고 말했다.
 

광주파라미타청소년협회가 2019년 동짓날 이웃에게 팥죽을 나눠주고 있다. 불교신문 자료사진
광주파라미타청소년협회가 2019년 동짓날 이웃에게 팥죽을 나눠주고 있다. 불교신문 자료사진

조선시대에는 동짓날 관상감에서 달력을 나눠주었다고 한다. <동국세기시>에는 “관상감에서 누런 표지나 흰 표지로 장정하여 역서(曆書)를 올리면 임금이 ‘동문지보(同文之寶)’를 날인하고 백관들에게 나눠주었다. 관리들이 서로 선물한다”고 전하고 있다. 동지에 달력을 나눠주는 것은 명나라 초기 제도를 따른 것인데, 김안로(金安老, 1481~1537)의 문집에도 “매년 동지 이후에 새 역서를 반포”한다고 돼 있어 조선 초기에는 관례화 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동지에 팥죽을 먹거나 달력을 선물하는 문화는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어 오늘날까지 이어온 세시풍속으로, 오늘날에는 불교가 우리 전통문화를 지켜나가고 있다.

절에서 동지에 팥죽을 쑤어 먹은 기록은 고려후기 문인 이곡(李穀, 1298-1351)의 <가정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순암(順菴)의 동지팥죽에 감사하며 아울러 박경헌에게도 증정하다(謝順菴冬至豆粥 兼呈朴敬軒)’라는 시를 썼다. 여기서 순암은 영원사 주지를 지낸 의선스님으로, 이곡은 의선스님이 사찰에서 보내준 동지팥죽이 고대광실의 요리와 비교할 수 없다고 감탄했다. 이를 토대로 14세기 초 고려시대 사찰에서 동지팥죽을 나눠 먹었음을 알 수 있다.

요사이 동지팥죽과 달력은 보시와 나눔의 상징이 됐다. 해마다 동지가 되면 전국 사찰들은 팥죽을 대량으로 쑤어 이웃과 나눠먹고, 달력을 나눠주며 희망찬 새해를 준비해 가고 있다. 요사이 코로나19로 나눔의 행사가 축소됐지만, 여전히 사찰에서는 팥죽을 통해 신도는 물론 이웃과 소통하고 있다. 겨울한파가 찾아온 12월, 따뜻한 팥죽 한 그릇으로 온정과 온기를 나누며, 액운을 없애는 벽사를 넘어 나눔과 보시로 선업을 쌓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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