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원효

이지현 지음/ 불광출판사
이지현 지음/ 불광출판사

법학자 이지현 작가
‘K-불교’를 꿈꾸며
그려낸 원효의 마음

“승속, 수행자, 범부
조금도 다르지 않아”

의상스님과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오르던 중 간밤에 달게 마신 물이 알고 보니 해골에 고인 물이었음을 알고 깨달았다는 이른바 ‘해골 물’ 일화로 잘 알려진 신라시대 고승 원효스님(617~686). 신라에서 일심(一心)과 화쟁(和諍) 사상을 중심으로 불교 대중화에 힘쓰고 수많은 저술을 남겨 불교사상의 발전에 기여하며 한국불교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이런 가운데 인생의 전환점에서 ‘불교하는 사람’이 됐으며, 불교를 통해 ‘차별 없는 세상’에 대한 오랜 꿈을 일깨웠다는 헌법학자 출신 이지현 작가는 ‘원효스님의 일화가 뜻하는 바를 우리는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라는 의문을 던진다. 원효스님의 <판비량론>을 탐독한 뒤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판비량론>은 원효스님이 당대의 유명한 고승 현장 법사의 논리를 비판하며, 인간의 심신을 치밀한 논증 방식으로 파헤친 책이다. 책을 읽은 뒤 원효스님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승가에서 속세로, 지아비이자 자식을 낳은 평범한 거사로, 거지들 속으로 들어간 원효의 파계가 당연한 선택이었음을 비로소 이해하게 됐다. 논리와 이성을 중시하는 법학자로서 바라본 원효는 만법의 이치, 즉 깨달음과 실천이 한 치 어긋남 없는 완벽한 인간이었다. 그래서 법학자의 시선으로 <판비량론>을 읽은 뒤 원효스님의 삶을 소설로 그려낸 <소설 원효>를 최근 출간했다.

법학자인 이지현 작가가 원효스님의 삶을 소설로 그려낸 ‘소설 원효’를 최근 출간했다. 사진은 경주 분황사 원효스님 진영.
법학자인 이지현 작가가 원효스님의 삶을 소설로 그려낸 ‘소설 원효’를 최근 출간했다. 사진은 경주 분황사 원효스님 진영.

저자는 먼저 ‘해골 물 일화’에서 벗어나, 원효스님이 평생의 삶을 통해 전파하고자 한 가르침을 통사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전기 소설의 형식을 빌렸다. 원효스님의 저서와 논문, 설화 등 각종 문헌을 섭렵해 역사적 사실을 줄기로 삼되, 스님의 삶에서 공백으로 남은 부분은 당대 역사와 정치 상황을 바탕으로 상상해 채웠다. 삼장 법사와 손오공, 용왕과 용, 살아 있는 시체들, 요석과 의상대사, 당 태종, 문무왕 등 실재와 허구를 넘나드는 다양한 인물과 사건이 엮여, 마치 1400여 년 전 서라벌 땅으로 되돌아간 듯 거대한 판타지로 펼쳐진다.

그렇다면 저자가 찾고자 한 원효스님의 깨달음은 무엇이었을까. 원효스님을 깨달음에 이르게 유명한 해골 물의 일화는 스님의 사상적 핵심인 일심과 화쟁, 무애(無碍)의 뿌리를 두고 있다. 이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간밤에 달게 마신 물이 알고 보니 해골에 고인 물이었음을 알고 깨달았다는 일화에서 나왔다. 종종 ‘모든 일은 마음먹기 나름이다’라고 오독되는 ‘일체유심조’의 본래 뜻은 ‘마음이 모든 것을 지어 낸다’이다. 즉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사물 자체에는 깨끗함과 더러움, 참과 거짓, 옳고 그름이 없다. 마음이 모든 것을 지어낼 뿐이다’라는 것, 각자의 마음이 현상계를 만들어내고 마음이 사라지면 이 현상계도 사라지는 것이다. 모든 분별이 떠난 그 자리, 공(空)의 자리를 깨치면 나와 남, 나고 죽음, 옳고 그름 등 분별로 인한 번뇌에서 벗어나 종국에는 그 번뇌조차 자유자재로, 바르게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근본 자리를 깨친 원효스님에게 승과 속, 수행자와 범부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그에게 중생은 구제와 교화의 대상이 아니었으며, 고단한 삶을 어루만지며 자유와 해탈로 함께 가고자 하는 스승이자 도반이었다. 이 맥락에서 원효스님은 파계는 물론 모든 것을 버리고 거지들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단지 원효스님의 파계와 요석과의 혼인 등 파격 행보만을 가리켜 비난한다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처럼 원효스님은 생의 모든 순간을 향상(向上)과 깨달음의 지평을 넓히는 기회로 삼았다. 그래서 이 책은 원효스님 마음으로 들어가기 위한 작은 주춧돌이자, 오늘 이 자리에서 내 마음을 어떻게 쓰며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저자는 “이 책은 원효대사께 바치는 헌사”라며 “원효는 모든 사다리를 미련 없이 걷어차 버렸다. 화랑으로 승려로 출세해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출구를 스스로 닫아버리고, 중생 속으로 들어가 고통받는 이들과 온전히 함께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러므로 이것은 부처를 대하듯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이며, 그 남자는 신라에서 태어나 보살이 된 역사 속 인물“이라고 의미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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