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몸은 병이고 마음은 물이다”

마음 부처에 귀의하면
현실에서도 동과 서
남과 북이라는 분별
시비로부터 벗어나
불자답게 살 수 있으니
참다운 귀의가 아닐까

우리나라에는 뚜렷한 근거는 없지만 원효와 의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도량이 매우 많다. 그 많은 사찰을 어떻게 지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거기에는 원효, 의상과 그 도량의 인연이 깊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마음이 담겨있다. 이는 한국불교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위대한 삶을 살았다는 방증이다. 신라 당시 원효, 의상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한국불교를 빛낸 뛰어난 인물들이 많다. 이번에 소개할 부설거사(浮雪居士, 생몰미상) 또한 우리의 불교사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인물이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 흔적을 찾아 시계를 거꾸로 돌려 신라 당시로 마음 여행을 떠나보자.
 

부설거사의 딸인 월명(月明)의 이름을 따서 지은 변산 월명암 관음전 벽화. 부설이 물병을 깨트렸지만 물은 그대로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부설거사의 딸인 월명(月明)의 이름을 따서 지은 변산 월명암 관음전 벽화. 부설이 물병을 깨트렸지만 물은 그대로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 거사의 길

중국에 방거사가 있다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거사로 부설을 들 수 있다. 부설은 신라 선덕여왕 때 경주에서 태어났으며, 속명은 진광세(陳光世), 자는 의상(宜祥)이다. 그는 전생에 불교와 인연이 깊었는지 어릴 때부터 흙으로 탑을 만들어 절을 올렸으며, 노을을 바라보면서 선정에 들기도 했다. 작은 곤충이 죽는 모습을 보면 슬퍼했고 수행자를 만나면 기쁜 마음으로 합장을 했다.

이런 인연이 쌓여 그는 불국사에서 출가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부설이라는 법명을 받고 원정(圓淨)의 제자가 된다. 부설이 지금까지 거사라고 불리고 있는 이유는 그가 환속해서 재가자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수행을 잘 하고 있던 승려가 세속으로 돌아온 사연이 우리의 흥미를 끈다. 총망 받던 수행자가 환속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부설은 출가 후 깨달음을 얻기 위해 도반인 영조(靈照), 영희(靈凞)와 함께 지리산(智異山)과 천관산(天冠山), 능가산(楞伽山) 등지에서 열심히 정진했다. 어느 날 그는 문수도량으로 유명한 오대산(五臺山) 상원사(上院寺)로 향하던 중 전북 김제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되었다. 당시 구무원(仇無寃)이라는 불자의 집이었는데, 그에게는 묘화(妙花)라는 딸이 하나 있었다. 그녀는 날 때부터 말을 못하는 장애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부설의 법문을 듣더니 갑자기 말문이 터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말문을 열게 해준 부설을 사랑하지만, 부설은 승려로서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여인은 급기야 자살을 시도하게 된다. 사정이 여기에 이르자 부설은 묘화와의 만남이 인연이라 생각하고 결혼을 한다. 한 여인을 위해 승복을 벗고 거사의 삶을 살게 된 것이다.

부설은 부인과의 사이에서 아들인 등운(登雲)과 딸 월명(月明)을 낳게 된다. 그런데 깨침을 향한 열망과 수행자로서 살아온 업(業)이 그를 가만 놔주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별도의 토굴을 마련해서 정진을 하게 되는데, 그곳이 지금의 김제시 진봉면에 자리한 망해사(望海寺)다. 서해의 아름다운 낙조로 유명한 곳이다. 노을을 바라보면서 그는 열심히 정진한 끝에 한 소식을 얻게 된다. 이때의 마음을 담은 깨침의 노래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데, 그 일부를 소개한다.

“고요 속에 피는 고운 꽃 한가로이 바라보고, 창 밖에 지저귀는 새소리 무심히 듣는다. 곧바로 여래의 땅에 들 수 있거늘, 구구하게 오래 닦아 무엇 하겠는가(閑看靜中花艶艶 任聆窓外鳥喃喃 能令直入如來地 何用區區久歷參).”

한가로운 무심도인(無心道人)의 삶이 느껴지는 시다. 부설은 승복을 벗고 세속의 삶을 살았지만, 오랜 수행으로 인해 도력은 매우 높았던 것 같다. 이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일화가 전한다. 출가 시절 도반이었던 영희와 영조는 부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서 찾아온다. 이때 세 사람은 그동안 수행이 얼마가 깊어졌는지 시험하게 된다.

그 시험은 물병을 메달아 놓고 방망이로 때리는데, 물병만 깨지고 물은 공중에 그대로 떠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영희와 영조가 병을 깨트리자 물이 사방으로 흩어졌지만, 부설이 물병을 쳤을 때는 병만 깨졌을 뿐 물은 본래의 모습 그 상태로 있었다. 이를 지켜본 두 도반은 깜짝 놀라 이게 어찌 된 일이냐고 물었다. 부설은 이렇게 대답한다.

“이 몸은 병이고 마음은 물이다.”

몸은 생겼다가 언젠가는 소멸하지만, 마음은 본래 나지도 멸하지도 않는다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진리를 눈앞에서 보여준 셈이다. 영희와 영조는 비록 승려지만 부설에게 삼배를 올리고 존경의 뜻을 전한다. 이때 부설은 다음과 같은 열반의 노래를 남기고 고요 속으로 떠난다.

“눈으로 보아도 본 바가 없으니 분별이 없고 귀로 들어도 소리가 없으니 시비가 끊어지네. 시비와 분별 모두 내려놓고 오직 마음 부처를 보며 자신에게 귀의할 뿐이네(目無所見無分別 耳聽無音絶是非 是非分別都放下 但看心佛自歸依).”

➲ 참다운 귀의

부설이 입적하자 영희와 영조는 그의 사리를 변산 묘적봉(妙寂峰) 남쪽에 안치했다. 변산은 여름철이면 해수욕을 즐기는 피서객들로 붐비는 서해안의 명소다. 영화 <변산>에서 “내 고향은 폐항. 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건 노을 밖에 없네”라는 멋진 시가 등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 지역에는 월명암(月明庵)이라는 유명한 도량이 있는데, 부설의 딸인 월명의 이름을 따서 지은 절이다. 부설은 영남에서 태어나 출가를 했으며 호남에서 한 소식을 얻고 입적한 인물이다. 아직까지 지역 갈등의 멍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오늘날 부설이 동서간의 화합과 소통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의 열반송에는 이러한 꿈을 이룰 수 있는 길이 제시되어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바로 참다운 귀의(歸依)를 하는 것이다. 지역갈등 해소와 귀의가 무슨 관계가 있냐고 질문할지 모르겠지만,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연관이 깊다. 부설은 이승을 떠나면서 눈과 귀로 보거나 들은 것이 없으면 시비와 분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여기에서 말한 ‘눈(目)’과 ‘귀(耳)’가 무엇이겠는가? 바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편견과 선입견이다. 이것에 집착하는 한 시비와 분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눈과 귀를 텅 비울 때 아무런 편견 없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육조혜능 편에서 살펴본 것처럼, 스승인 홍인은 제자가 찾아오자 어떻게 감히 남쪽 오랑캐가 부처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시비와 분별이 가득한 질문을 통해 혜능이 어떤 물건인지 가늠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때 혜능은 이렇게 대답한다.

“사람에게는 남과 북이 있지만, 불성(佛性)에도 남과 북이 있습니까?”

음미하면 음미할수록 참으로 멋지면서도 오늘의 우리에게 절실한 질문이라는 생각이다. 아직까지 동과 서, 남과 북의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 과정에서 편견과 선입견은 더욱 굳어지게 되었다. 부끄러운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부설이 지적하는 것처럼 이를 모두 놓아버려야(放下) 한다. 이를 위해서는 마음 부처(心佛)를 보고 스스로에게 귀의할 줄 알아야 한다. 그곳에는 본래 동과 서, 남과 북이라는 분별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마음 부처란 편견과 선입견, 시비와 분별이 텅 빈 바탕을 가리킨다. 이러한 불성의 자리에 돌아가는 것이 다름 아닌 스스로에게 귀의하는(自歸依) 일이다.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는 일은 불자의 생명이라 할 만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귀의(歸依)란 범어인 ‘나마스(namas)’를 번역한 말인데, 목숨 걸고 돌아간다(歸命)는 뜻이다. ‘나무아미타불’ 하고 염불할 때 ‘나무(南無)’가 바로 나마스를 음역한 것이다. 삼보는 붓다(佛)와 가르침(法), 승가(僧)를 가리킨다. 이 세 가지를 각자 별도로 보는 것을 별상삼보(別相三寶)라 한다. 이와 달리 삼보를 일심(一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삼보가 마음 밖에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갖추고 있는 일심이라는 뜻이다. 이를 일심삼보(一心三寶)라 한다. 이렇게 보면 삼귀의는 일심으로 돌아가겠다는 굳건한 다짐이 된다. 열반송에 등장하는 마음 부처가 바로 일심이다. 마음 부처에 돌아가는 것이 곧 스스로에게 귀의하는 길이다. 이것이 참다운 귀의이며, 붓다의 마지막 유훈인 자등명(自燈明)을 받드는 일이다. 이처럼 마음 부처에 귀의하면 현실에서도 동과 서, 남과 북이라는 분별과 시비로부터 벗어나 불자다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부설거사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다.

개인적으로 거진이진(居塵離塵), 즉 티끌 같은 세속에 살면서도 세속을 떠난다는 말을 좋아한다. 원나라 때 선사인 몽산덕이(蒙山德異, 1231~1308)는 이것이 바로 참다운 선(禪)이라고 강조했다. 부설은 티끌 속에 몸을 맡겼지만, 그 누구보다 청정한 마음으로 살다 간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떤 시비나 분별로부터 벗어나 마음 부처를 끝까지 간직할 수 있었다. 그가 몸담고 있던 세속은 병이고 마음 부처는 물이었다. 세속은 온갖 분별 속에서 나기도 멸하기도 하지만, 마음 부처는 그대로일 뿐이다. 부설이 휘두른 방망이에 병은 깨져서 사방으로 흩어졌더라도 물은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던 이유다.

오늘의 우리는 병뿐만 아니라 물 또한 여기 저기 흘리면서 살아가고 있다. 불자(佛子)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지역감정에 매몰되어 있다면, 붓다의 딸과 아들이 아니다. 분별하는 마음으로 삼보에 귀의한다고 말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부설이 지적한 참다운 귀의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곧 석가모니 붓다와 부설거사의 뜻을 잇는 길이 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불교신문3684호/2021년9월21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