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중생 위해 일천 부처님께서 가피를 …


법당안엔 석가모니 약사불 아미타불
삼세불 모셔져 있고 밖으로는 달마산
1만불이 대웅보전을 병풍처럼 두르고
안으로 1000불이 현현…신비스런 세상

도솔암. 미륵보살이 땅끝마을 해남의 달마산 바위틈으로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며 하생의 시기를 기다리는 공간처럼 조용해서 숨소리도 미안할 정도다.
도솔암. 미륵보살이 땅끝마을 해남의 달마산 바위틈으로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며 하생의 시기를 기다리는 공간처럼 조용해서 숨소리도 미안할 정도다.

 

무언가 끝나는 지점엔 향수가 묻어난다. 마지막 열차가, 마지막 사랑이, 더 이상 갈 수 없는 땅끝마을이 그러했다. 끝의 언저리엔 시린 미련과 아쉬움이 남는다. 막연한 그리움이 가슴 한 구석에 남아 있는 곳이 달마산과 도솔암, 그리고 미황사이다.


울퉁불퉁 솟아 오른 기암괴석 사이에 있는 도솔암은 용과 범의 이빨과 발톱사이를 들락날락 거리듯 바위 사이 줄을 잡고 오르내려야 갈 수 있어 산길이 파도 따라 춤추는 인생사와 같다. 수행이란 다름 아닌 걷는 일이다. 그래서 ‘도는 길에 있다’고 한다. 도솔암은 수직 바위들 사이에 새둥지처럼 지어진 한 칸 암자로 도솔천으로 올라가는 길 같은 휘어진 돌계단의 정연한 모습 또한 아름답다. 이곳은 의상조사가 터를 잡고 지은 곳이라 한다. 이런 아름다움을 서거정은 “절간이 푸른 벼랑에 걸쳐 있으니 어느 날 금을 펴고 지었는고” 했는데, 마치 도솔암의 선경을 두고 말 한 말처럼 들린다. 도솔암은 미륵보살이 바위틈으로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며 하생의 시기를 기다리는 공간처럼 조용해서 외려 인간의 거친 숨소리가 미안하다. 어린 날 숨바꼭질 할 때 비좁은 공간에 숨어 있다가 그대로 잠이 든 모습처럼 아늑함이 느껴지는 법당은 큰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알려준다.

 

달마산. 산 이름이 부처님의 설법 또는 경전을 말하는 다르마(dharma)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달마산. 산 이름이 부처님의 설법 또는 경전을 말하는 다르마(dharma)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천상천불 만날 수 있는 금상첨화 일정


아침에 도솔암을 올라 달마산 산길 따라 오후에 미황사를 찾아간다면 하루 동안에 천상의 세계와 천분의 부처님을 만날 수 있는 금상첨화의 일정이다. 달마산은 부처님의 설법 또는 경전을 말하는 다르마(dharma)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725년 8월에 돌로 만든 배 한척이 땅끝마을 사자포구에 닿아 의조화상 등 100인이 나아가 맞이했다. 배 안에는 금불(金佛)과 <화엄경> 80권과 <법화경> 7권과 불보살, 40성중 53선지식, 16나한 등 불화가 있었다. 또한 검은 돌이 갈라지며 검은 암소 한 마리가 생겨났고 금인이 의조화상 앞에 나타나 ‘달마산 꼭대기를 보니 1만 부처님이 모습을 드러내는 곳이므로 그곳에 경전을 봉안하라’고 했다. 의조화상이 경전을 소에 싣고 가는데 처음 소가 누웠다가 다시 일어난 곳에 통교사를 세우고 산골짜기에 이르러 소가 크게 소리치며 말하길 ‘아름답구나!’ 하고는 쓰러져 죽어버렸다. 이곳에 경전과 불화를 봉안하고 이름을 미황사라 하니 ‘미(美)’는 소의 울음에서, ‘황(黃)’은 부처님의 빛깔에서 따온 것이다.”(1692년 9월 민암 ‘미황사 사적비’)


사적기에서 ‘사자’란 부처님의 말씀을, ‘포구’란 경전이 들어온 장소를 일컬어 경전을 모신 산이란 뜻에서 달마산이라 했다. 1만 부처님의 모습은 화엄경을, 검은 소는 법화경을, 미황사의 ‘미’는 소의 울음소리 ‘옴마니반메훔’으로 깨달음에 이르는 방편의 아름다움을, ‘황’은 금빛 나는 부처님 지혜를 말하고 있다. 즉, 미황사는 지혜와 방편으로 최상의 깨달음을 얻는 절이란 의미이다.

 

미황사 대웅보전. 앞뜰에서 달마산을 바라보면 바위의 형상이 마치 만불이 나타난 듯 경이롭다.
미황사 대웅보전. 앞뜰에서 달마산을 바라보면 바위의 형상이 마치 만불이 나타난 듯 경이롭다.

 

오후3~4시엔 미황사 대웅보전


달마산의 1만불(佛)은 달마산에서는 볼 수 없다. 오후에 달마산을 내려와서 미황사 대웅보전 앞뜰에서 달마산을 바라보면 바위의 형상이 마치 만불이 나타난 듯 경이롭다. 달마산의 자연을 부처님으로 보는 안목을 넓힌다면 내가 부처임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미황사이다. 법당 안에는 석가모니불, 약사여래불, 아미타불 등 삼세불이 모셔져 있다. 밖으로는 달마산 1만불이 대웅보전을 병풍처럼 두르고, 안으로는 1000불이 현현하여 중생을 감싸 안는 놀랍고 신비스러운 세상이 펼쳐진다. 각양각색의 부처님들은 앞면과 좌우면 벽속, 그것도 모자라 대들보 속에서도 나타나 중생들을 기쁘게 맞이한다. 한 명의 중생을 위해 일천의 부처님께서 신령스런 기운 속에서 갑자기 나타나 가피를 내린다. 이뿐인가 중생은 세 번만 절해도 부처님은 삼천 배를 받으시니 못난 중생 사랑하심에 가슴이 먹먹해 진다.


올망졸망 모여 있는 모습에서 어린아이들의 천진함이 배어나고 부드러운 채색은 부처님 품안의 편안함을 그대로 전해준다. 미황사 대웅보전 법당가득 금빛 부처님을 만나려면 오후 3시에서 4시 사이가 좋다. 서향 대웅보전 문을 통과하여 들어오는 빛이 마룻바닥에 반사되어 천장을 환하게 비출 때 석양의 황금색과 어우러진 무수한 부처님이 사방에서 갑자기 나타나 환상과 감동 그 자체이다. 다시 한 번 우리 곁에 있는 깨달음의 세계를 느끼게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1년에 한 번쯤은 미황사 ‘야단법석’에 나타나시는 부처님을 뵙는 것 또한 중생의 기쁨이다. 대웅보전은 좁아서 많은 대중들이 부처님을 우러러 예경할 수 없다. 그래서 넓은 전각 앞뜰에 단을 설치하고 높게 찰간을 세워 큰 그림의 부처님을 모시고 공양을 올려 중생의 소원을 성취할 수 있도록 한다. 바로 야단법석이 펼쳐진 것이다. 미황사는 매년 가을 ‘괘불재’라는 이름으로 야단법석을 열고 있는데, 이는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하실 때 왕사성 기사굴산에 운집한 대중이 큰 비구 대중, 보살, 천인, 여래팔부중 등 256만6000명이나 되는 수많은 성중들이 야단에 법석을 마련한 것을 말한다. 그런데 ‘괘불(掛佛)을 모셨다’고 한다면 이 말은 아주 잘못된 표현이다. 점안을 한 신앙의 당체인 부처님을 단순히 ‘괘불’, ‘걸어 둔 부처님’이란 뜻으로 폄하한다면 종교적인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야단법석에 나타나신 부처님은 ‘괘불’이 아닌 ‘야단법석불’로, 또한 이때의 불화는 ‘괘불화’가 아닌 ‘야단법석불화’로 그 명칭을 고쳐서 신앙적 의미를 되찾아야 할 것이다.

 

미황사 대웅보전 안으로는 1000불이 현현하여 중생을 감싸 안는 놀랍고 신비스러운 세상이 펼쳐진다.
미황사 대웅보전 안으로는 1000불이 현현하여 중생을 감싸 안는 놀랍고 신비스러운 세상이 펼쳐진다.

 

미황사에는 세 가지 아름다움이 있다


미황사 야단법석 불화는 1727년에 탁행 등 일곱 스님들이 조성한 길이 11.7m, 폭 4.86m의 대형불화이다. 커다란 체구와 당당한 모습의 석가모니 부처님은 손바닥 크기만 한 천신과 용왕을 대동하고 갑자기 미황사 야단법석에 나타나셨다. 광배에서는 불꽃이 일고 푸른 하늘 사이로 상서로운 기운들이 일어났다. 부처님의 오른손은 중생의 원을 들어 주는 여원인과 왼손은 법화경을 설하시는 설법인을 하셨다. 얼굴은 이목구비가 작으며, 뾰족하게 솟은 육계에는 붉은 띠를 두른 계중명주가 있다. 이는 법화경 안락행품에서 일체의 번뇌를 물리친 자에게 부처님께서 주는 선물이다. 머리 끝 정상 계주는 끝없는 서기를 발산하여 중생의 두려움을 소멸시켜 준다. 두광 옆에 좌우 여섯 화불은 합장인을 하고, 용왕은 근엄한 표정으로 여의주가 든 함을 받들고, 천신은 고운 얼굴에 보주를 담은 호리병을 받들고 서 있다.


미황사에는 세 가지 아름다움이 있다. 새벽예불, 참선 등 깨달음에 이르는 방편의 아름다움, 대웅보전의 내부 포벽, 대들보에서 중생을 감싸 안는 천불 부처님의 아름다움, 극락세계를 보는 듯 넘어가는 석양과 동백꽃의 아름다움이 있다. 달마산 도솔암과 미황사는 부처님 보시기에 참 좋은 절이다.

 

* 이 글은 유튜브 ‘불교신문TV’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불교신문3672호/2021년6월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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