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가피 가슴에 안고 미래를 준비한다면…

제주 관음사는 고려 때 이미 존재했던 사찰로
입구부터 퍽 이국적이다. 푸른 삼나무 숲 사이에
머리위에 보개를 얹은 수많은 부처님이 앉아 계신다

내가 부처님을 사열하는 것 같아 좀 쑥스럽지만
부처님과 일일이 눈을 맞추면 번뇌가 사라지는 …

제주 관음사 일주문을 지나면 양쪽으로 도열한 듯한 삼나무길 미륵불상이 장관이다.
제주 관음사 일주문을 지나면 양쪽으로 도열한 듯한 삼나무길 미륵불상이 장관이다.

 

우리나라의 봄은 제주 영등할망의 치맛자락에서부터 불어온다. 영등할망은 2월 초하루에서 보름날까지 제주 이곳저곳 다니며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안겨주고 봄을 불러 꽃을 피게 한다. 꽃피는 제주에는 관음사, 존자암, 법화사, 불탑사 등 아름다움 사찰이 불교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한라산 650m 기슭에 자리한 우리나라 왕벚꽃의 원조 제주 관음사는 고려 때 이미 존재했던 사찰로 입구부터 퍽 이국적이고 인상적이다. 푸른 삼나무 숲 사이에 머리위에 보개를 얹은 수많은 부처님이 앉아 계신다. 내가 부처님을 사열하는 것 같아 좀 쑥스럽지만 부처님과 일일이 눈을 맞추면 번뇌가 사라지는 기쁨을 맛볼 수 있어 좋다. 또한 관음사 왕벚꽃이 꽃비를 내려 해탈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한 때 일본이 미워서 길거리의 우리토종 왕벚나무를 ‘사쿠라’라 하여 마구 베어버려 애꿎은 분풀이도 하였지만 왕벚나무가 무슨 죄가 있겠나? 1908년에 프랑스 에밀 타케 신부가 관음사 부근에서 왕벚나무를 발견하여 독일에 알렸고, 일본의 식물학자 고이즈미 겐이치는 1933년에 왕벚나무 원산지가 일본이 아닌 제주도 한라산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왕벚나무의 원산지가 제주도였음을 확인한 바 있다.

 

관음사 법화사 등을 중창하며 제주불교 중흥의 초석을 놓은 봉려관스님.
관음사 법화사 등을 중창하며 제주불교 중흥의 초석을 놓은 봉려관스님.

 

‘제주불교 발전 초석’ 놓은 봉려관스님


제주도에는 ‘당 오백, 절 오백’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라산을 중심으로 수많은 사찰과 굿당이 있었다. 그러나 1702년 제주목사 이형상이 미신 타파란 명목으로 굿당과 사찰을 불태우고 파괴했다. 다름을 인정치 않는 몰상식한 그의 행동으로 그 후 재해가 거듭되고 민심이 흉흉해지자 제주목사 정동후가 1719년 11월에 다시 ‘풍우뢰우단’을 설치하고 한라산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런 수난을 딛고 봉려관스님은 제주에 불교를 다시 일으켰다. 스님은 1865년 제주 화북동에서 태어나 불교와 인연을 맺은 뒤 1907년 해남 대흥사에 출가해 1908년 봄 제주로 돌아와 제주불교를 중흥시키고자 관음사 해월굴에서 3년간 관음기도 성취로 관음사와 사라진 법화사, 불탑사, 법정사, 월성사, 백련사 등 제주지역에 사찰을 중창하여 제주불교 발전의 초석이 됐다.


그러나 제주 4·3사건으로 토벌대가 관음사 대웅전을 비롯한 모든 전각을 불태워 버렸다. 20여 년간 묶였던 한라산 입산금지가 해제되자 관음사는 새로운 모습을 갖추게 됐다. 특히 대웅전에는 1698년 조성되어 해남 대흥사에 봉안됐다가 봉려관스님에 의해 1925년 제주 관음사로 옮겨 모셔진 관음보살님이 유명하다. 삼산보관에는 아미타불을 정대하고 꽃무늬 보주와 휘날리는 관대가 있고, 머리카락은 세 갈래로 땋아 양어깨로 늘어뜨렸으며, 입가에 살짝 미소를 머금은 단아한 모습이 아름답다. 대웅전 뒤쪽에는 제주 4·3의 아픔을 치유하고 새로운 용화세계를 갈망하는 뜻에서 미륵대불과 함께 현겁천불을 모시는 불사가 진행 중이다. 이처럼 관음사는 제주 4·3 비극을 온몸으로 느끼며 제주의 중심사찰로 불법(佛法)을 전하고 있다.


한라산 중턱 영실에서 숲길 약 1km를 걸어 올라가면 해발 1200m에 존자암(尊者庵)이 나온다. 한라산은 제주사람들이 나한의 가피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산이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바위들이 인도 영취산(靈鷲山)에 있는 오백나한 모습 같아 영실(靈室)이란 이름이 생겨났다. 존자암은 영실기암의 아름다운 모습과 울창한 숲이 어울려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명승지로도 유명하다.

 

한라산 영실 오백나한 바위. 영실은 불래악(佛來岳)으로불렀다고 한다.
한라산 영실 오백나한 바위. 영실은 불래악(佛來岳)으로불렀다고 한다.

 

한국불교 남방전래설 뒷받침 존자암


옛날에는 한라산 영실을 불래악(佛來岳)으로 불렀다고 한다. 불래악은 부처님이 한라산으로 들어오신 산이란 의미인데 대장경 ‘탐몰라주 존자도량’ 조 법주기에 “석가모니의 6번째 제자인 발타라 존자가 900 나한과 더불어 탐몰라주에 산다”고 했다. ‘탐몰라주(耽沒羅洲)’는 곧 ‘탐라(耽羅)’를 의미하고, 나한이 머무르는 곳이 바로 존자암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고운 최치원이 지은 지증화상비에 “비구는 서쪽으로 배우러 가고 나한은 동쪽으로 와서 노닐었다” 했으니 오백나한이 계심 즉하다. 특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세존사리탑이 있어 더욱 수승하다. 이 사리탑은 제주 현무암으로 조성되었는데, 8각 지대석과 기단석을 놓고 보주형 탑신과 지붕을 얹었다. 지붕 낙수면은 제주 초가지붕 형태처럼 두껍고 부드러운 곡선이며, 정상의 보주는 연꽃 봉오리로 장식한 소박한 모습이다. 제주 존자암은 인도 발타라존자가 부처님의 사리를 모셨고, 불래악, 오백나한 바위 등 설화를 통해 한국불교의 남방전래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서귀포 법화사는 신라 때 지어진 사찰로 불두화가 필 때도 좋고, 칠석 무렵 구품연지에 핀 백련과 수련을 바라보는 것 또한 좋다. 대웅전 앞에 백련이 필 때 연못을 가로지르는 돌다리를 걸어보면 추억에 남을 만하다. 법화사는 특히 고려 때 번창했는데 옛 절터에서 대규모의 금당지가 발견되었고, 1297년 충렬왕 5년에 다시 중수했다는 기와편과 용무늬 암막새 등 유물이 출토됐다. 법화사는 조선 전기까지 번창했던 사찰로 태종 6년(1406) 중국사신 황엄이 법화사의 아미타 삼존불이 탐이 나서 명나라로 가져갔다. 동(銅) 삼존불의 크기는 높이와 너비가 각각 7척(210cm)이며, 이와 더불어 연화좌, 광배, 보단 등을 15개의 감실에 넣어 수천 명의 짐꾼이 옮겼다고 한다. 그때의 삼존불이 지금 법화사에 계셨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서자복 미륵불. 제주성 동서쪽 미륵불을 ‘자복미륵’으로 부르기도 한다.
불탑사 오층석탑. 제주의 특성을 잘 살린 국내 유일의 현무암 불탑이다.

 

국내 유일 현무암 불탑


한라산 원당봉에 지어진 불탑사는 풍수지리적으로 물기가 많아 음기가 강하고, 그 아래쪽은 양기가 솟아오르는 지형이라 양기가 음기를 받쳐주어 아들 낳기 딱 좋은 지형이라고 한다. 1333년 원나라 공녀(供女)로 끌려가 황후로 변신한 기황후(奇皇后)가 자식을 얻기 위해 북두칠성의 정기가 서린 이곳에 원당사(元堂寺)를 짓고 불탑을 조성하여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그 결과 1338년 아들 아유시리다라를 낳았고, 이런 명성으로 원당사는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여인들의 기도처가 되었는데 제주목사 이형상에 의해 폐사되었던 것을 1914년에 불탑사로 재건했다.


불탑사 오층석탑은 제주의 특성을 잘 살린 국내 유일의 현무암 불탑이다. 불탑은 1단의 기단 위로 5층의 탑신을 두고,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했다. 기단의 세 면에는 연꽃 봉오리를 얕게 새겨 고려시대의 유행을 따랐으며, 지붕돌은 짙은 회색, 몸돌은 엷은 붉은색으로 지붕과 집을 구분했다. 1층 탑신 남쪽 면에 감실을 두어 부처님이 계시는 곳임을 표현했고, 지붕돌은 처마 끝을 치켜 올려 날렵하게 보이도록 했다.

서자복 미륵불. 제주성 동서쪽 미륵불을 ‘자복미륵’으로 부르기도 한다.
서자복 미륵불. 제주성 동서쪽 미륵불을 ‘자복미륵’으로 부르기도 한다.

 

또한 제주성의 동쪽, 서쪽에서 백성을 보호하고 재물과 복을 주는 미륵부처님이 있어 특이하다. 마을사람들은 ‘자복미륵’, ‘미륵불’, ‘큰 어른’으로 불렸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조성한 이 미륵부처님은 제주의 마스코트 돌하르방의 원조로 머리위에는 둥그런 보관을 얹고 튀어 나온 눈, 길쭉한 귀, 미소 띤 얼굴과 선 듯 안아줄 것만 같은 두 손엔 정감이 묻어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주목 불우(佛宇)조에 “해륜사 일명 서자복(西資福)이 서쪽 독포(獨浦) 어귀에 있고 만수사 일명 동자복(東資福)은 건입포(巾入浦) 동쪽 언덕에 있다”고 했다. 자복 미륵부처님에게 치성을 드리면 득남한다하여 여인들이 극진히 모셨다고 한다. 산이 높고 바다가 어질며 사람 심성이 밝은 섬, 제주는 부처님의 가피를 가슴에 안고 현재의 고난보다 미래의 희망을 꿈꾸는 신화의 섬이 되었다.
 

[불교신문3670호/2021년6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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