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하면 윤회하지 않습니까?”

“주의작용은 동물에게도 있지만
지혜는 그들에게는 있지 않아”
‘주의’ 외에도 지혜 필요성 강조

삽화=손정은
삽화=손정은

 

“나가세나 존자여! 다음 세상에서 생(生)을 맺지 않는 자는 올바른 주의에 의해 생(生)을 맺지 않는 것은 아닙니까?” “대왕이시여! 올바른 주의와 지혜와 다른 선(善)한 일들에 의해 생(生)을 맺지 않는 것입니다.”


“존자여, 올바른 주의가 곧 지혜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올바른 주의와 지혜는 다릅니다. 주의작용은 양, 산양, 소, 물소 등에게도 있지만 지혜는 그들에게 있지 않습니다.”


“지당하십니다. 나가세나여!”


왕이 질문하고 있는 ‘올바른 주의’란 어떤 사물이나 현상 등에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작용을 말하는 것이다. 존자는 주의와 지혜는 다른 것으로, 다음 세상에서 생(生)을 맺지 않으려면 올바른 주의 외에도 지혜가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과 축생은 모두 주의작용을 가지고 있지만 지혜는 인간만이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윤회의 세계에서 인간과 축생의 차이는 무엇인가?


<잡아함경>15권, <맹구경(盲龜經)>에는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윤회의 세계를 전전하다 인간으로 태어나기가 ‘맹구우목(盲龜遇木)’만큼 힘들다는 비유를 하고 계신다. 망망대해에 구멍이 뚫려 있는 판자가 떠다니고 있는데, 100년에 한 번 바다 위로 숨을 쉬기 위해 떠오르는 눈 먼 거북이가 판자의 구멍에 머리를 넣을 수 있는 확률만큼이나 윤회의 세계에서 인간의 몸을 받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어서, “눈 먼 거북이가 구멍이 있는 판자에 머리를 넣는 것은 오히려 빠르다. 한 번 악처(惡處: 지옥, 아귀, 축생)에 떨어진 중생이 윤회해서 다시 인간의 상태를 얻는 것은 더욱 어렵다고 나는 말한다. 그들에게는 법에 맞는 행위(法行), 바른 행위(正行), 좋은 행위(善行), 공덕이 되는 행위(功德行)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잡아함경>16권에서도 ‘조갑상토(爪甲上土)’의 비유로 인간으로 나기 힘듦을 강조하고 계시는데, 하루는 부처님께서 손톱 위에 흙을 퍼 올려놓고서 이 흙과 대지의 흙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많은지 비구들에게 물으셨다. 너무나 당연히 제자들은 대지의 흙이 훨씬 많다고 대답하자 부처님께서는 ‘사람으로 살다가 인간계나 하늘나라에 태어나는 자는 손톱 위의 흙과 같이 적고 지옥, 아귀, 축생 등 인간계 아래에 태어나는 자는 대지의 흙과 같이 많다’고 가르치셨다. <대반열반경>2권에서도 역시 인간의 몸을 받아 태어나는 것을 ‘섬개투침(纖芥投針)’으로 비유하고 있는데, 바늘을 땅 위에 세워놓고 하늘에서 겨자씨를 던져서 그 겨자씨가 바늘에 꽂히는 극히 힘든 확률로 설명하고 있다.


나가세나존자가 비유하고 있는 축생은 윤회의 세계 가운데 악처(惡處) 중 하나이다. 축생은 주의작용은 할 수 있지만 도저히 지혜를 얻을 수 없다. 지혜는 인간인 상태에서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이 인간마저 존재의 속성인 번뇌를 꿰뚫어 보고 이를 벗어나고자 하는 지혜를 얻어야만 지속적인 윤회의 세계에서 다음 생(生)을 맺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 백천만겁에 인간으로 나기 어렵다 했고, 다행히 인간으로 태어났다 해도 윤회를 벗어나는 지혜를 얻는다는 것은 그만큼 더 어려운 일이다.


[불교신문3669호/2021년6월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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