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고 보면 더 좋을 영화

상월선원 '아홉 스님'의 도전
고요하고 담백한 영상에 담아
소리로 보여주는 깨달음 '눈길'
5월19일 전국 극장에서 개봉

영화 '아홉 스님' 5월21일 밤 12시
KBS 1TV에서 방영

다큐멘터리 영화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감독 윤성준)>.

상월선원 아홉 스님들의 90일 동안거 수행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감독 윤성준)>이 개봉한다. 영화를 공동 제작한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가 513일 서울 압구정동 이봄씨어터에서 시사회를 열어 먼저 선보였다.

한국불교의 중흥과 대한민국의 화합을 화두로 육체적 극한에 도전했던 아홉 스님의 정진 모습을 은은하고 담백한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다. 상월선원 회주 자승스님을 비롯해 무연 진각 호산 성곡 재현 심우 도림 인산스님이 공동 주연이다.  러닝타임은 64. 영화는 519일 개봉 예정이며 현재 상영관을 물색하고 있다한편 지난해 개봉한 영화 아홉 스님521일 밤12KBS 1TV를 통해 방영된다.

상월선원 동안거는 20191111일 시작해 202027일 끝났다. 영화는 안거를 입재하는 날, 대단지 아파트공사장 한복판에 차려진 천막 선원(禪院)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시작한다. 그리고 한겨울을 관통한 아홉 스님들과 그들이 만났던 이런저런 풍경을 12주 동안 지그시 관찰하는 모양새다. 이금희 아나운서의 내레이션이 최소한의 정보만 짤막짤막 소개할 뿐, 해석하지 않는다.

천막의 문이 잠기면서 길고 치열한 여정은 출발한다. 하루 한 끼만 먹고 그것도 성인 평균 식사량의 4분의1만 먹고, 하루 열 네 시간 정진하고, 서로 말 한 마디 안 하고, 체감온도 영하 20도를 견디는 걸 과연 여행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상월(霜月). 서리를 맞으며 달을 벗삼아 수행하겠다는 다짐의 표현이지만, 실상은 서릿발보다 눈보라가 많으며 달은 너무 멀고 차갑기만 하다.

문을 잠글 때 자물쇠 철컹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강조됐다. 제목이 암시하고 있듯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은 소리로 승부를 거는 영화다. 요즘 유행하는 'ASMR'의 향연이 펼쳐진다. 공사판 소음, 잔잔한 빗물소리, 미세한 웅성거림, 여름의 장대비 같은 겨울비 소리, 하루 한 번 청소기 돌리는 소리, 응원하러 온 불자들의 노랫소리 북소리, 유일한 사치인 믹스커피가 찻잔에 담기는 소리, 의사소통을 위해 스님들이 어렵게 벽에 단 화이트보드가 금세 와장창하고 떨어지는 소리, 기도하는 소리와 기도하다 우는 소리, 9주차에 함박눈 내려 눈 밟는 소리, 목탁 독경 그러다 소리만 들어도 추운 바람소리. 세상에 늘 있었던 하지만 바쁘게 살거나 떠들다가 미처 듣지 못했던 소리들은 심오한 즉물(卽物)의 세계로 안내한다. 기왓장 깨지는 소리에 홀연히 깨달았다는 옛 선사의 일화는 상당한 개연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눈 감고 보면 더 좋을 영화다.
 

소리는 스님들의 소름 돋는 극기(克己)를 보여주는 데에도 이용된다. 시종일관 이어지는 삭풍과 어둠의 소리는 지쳐 내뿜는 숨소리 같다. 앰뷸런스의 경음(警音)도 매우 강렬한 소리인데 이것은 안거가 후반부로 갈 때 한 스님이 쓰러졌기 때문이다. 천막 내부에 달린 CCTV 화면 속에서 한 스님이 갑자기 벌떡 일어난다. 다급하게 탕비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느리게 지척거리는 영상에 일순 긴장을 준다. 병원 행을 끝까지 거부한 그 스님은 중도하차할 뻔했다는 자책감과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일 텐데, 휴식시간 연거푸 절을 하며 재발심을 한다. 자세히 보니 오른손 검지가 없다.

마지막 1주일은 아예 자지 않고 텐트 안에서 눕지도 않는 용맹정진 기간이다. 스님들은 휘갈기는 소리가 나는 장군죽비로 서로를 때려가며 버틴다. 깨달음을 향한 열정이란 수사보다는, 솔직히 전우애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바깥의 장삼이사였으면 벌써 죽는 소리하다가 드러눕고 딴짓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막바지에 이르면 수행자들은 거의 돌처럼 굳어 있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 죽어가는데, 밖에 있는 사람들은 응원을 하겠다며 트로트를 신나게 부른다. 하지만 평소엔 흘려들었던 노랫말 덕분에 그게 야속하지 않고 모순의 미학을 유발한다. “내일은 내일 또 다시 새로운 바람이 불 거야.”

서울 봉은사 어린이합창단이 크리스마스 캐롤을 노래하는 장면도 숨은 백미다. 진정한 화합이란 자기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아야만 조금이라도 얻을 수 있는 것임을 시사한다. 상월선원이 최초 지향했던 모습은 서울역 노숙자들과 그냥 같이 부대끼고 사는 것이었다. 자승스님의 제안이었는데 난이도는 약간 조정됐을지언정 소기의 성과는 거둔 듯하다. ‘땅이 노래하고 하늘이 춤추니 수미산이 사바세계로구나.’ 화이트보드에 적힌 스님의 메모는 성()과 속()의 극단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꺼번에 삼켜버리고 있다. 하루 두 끼 이상은 먹고 눕기 좋아하는 입장에서 그 경지를 헤아리기란 불가능하다. 다만 웬만큼 인내하지 않고는 하지 못할 소리라는 건 분명해 보인다.

다큐멘터리의 특성 상 말초적인 재미를 주는 영화는 아니다. 윤성준 감독은 시사회에서 “AI기술을 활용해 실사(實辭)를 부분 부분 추상화나 만화같이 변형시켰다고 밝혔는데 영상의 단조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조치로 여겨진다. 그래도 억지로 가르치려 하지 않는 종교영화라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다만 이 세상에 좋은 소리도 나쁜 소리도 없다. 그냥 소리일 뿐이라는 메시지 하나는 남긴다. 소리를 중심으로 한 영화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겨우겨우 그러나 조금씩은 나아가는 구조를 띤다. 집중해서 관람하고 나니, 알고 보면 개소리와 잔소리가 세상을 흥겹게 하고 세상을 제대로 돌아가게 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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