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정치는 봄바람과 같아서
능히 모든 걸
끌어안아야 한다고 했다

끌어안는다는 말은
생명을 살린다는 뜻

살벌한 얼음칼날은
생명을 살리지 못한다
천산만야 꽃피는 봄인데
사람의 봄은 아직 멀기만 하다

윤재웅 논설위원
윤재웅 논설위원

 

집을 나와 출근하는데 기분이 찜찜하다. 가스 불을 잠그지 않은 것 같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길을 걷다가 잘못된 경로로 들어온 것 같다…, 선방에서 20안거 이상을 했는데 큰 발전이 없다…, 정의감에 부풀어 정책을 밀어붙였는데 민생이 파탄나기 시작한다…. 이럴 땐 이럴 땐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삶의 지혜가 어려운 게 아니다. 아무래도 이게 아니네 싶으면 빨리 돌아 나와야 한다. 자기 신념과 자기 판단의 무오류성에 사로잡혀 있으면 스스로를 수정할 수 없다. 이런 사람들끼리 모이면 ‘우리끼리’의 이상한 생명체가 된다. 무오류의 생명체는 자기나 자기네 편이 무얼 잘못해도 감싸고 옹호한다. ‘우리끼리’를 비판하는 이웃을 증오하고 공격한다. 말폭탄 문자폭탄을 날린다.


편가르기의 전형적인 형태다. 야만적이고 비민주적이다. 나는 항상 옳고 너는 항상 그르다는 바이러스가 이들 뇌에 퍼져 있다. 이해와 관용과 입장 바꿔 생각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없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다는 게 뉴턴이 밝혀낸 만고불변의 진리다. 편가르기를 하면 할수록 다른 편이 또 생긴다. 국민은 분열하고 나라는 쪼개진다. 왼손이 오른손을 때리고 오른손이 왼손을 꼬집는 이 죄업은 얼마나 클 것인가. 사회적 갈등비용이 국민총생산 대비 OECD 최고 수준에 이른다. 연간 246조원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모범을 보여야 할 정치담론이 갈등의 최전선에 서서 공멸을 향한 기차표를 마구잡이로 찍어낸다.


사회정의가 실현되지 않다보니 유권자 권력을 가진 정치담론이 극성을 이룬다. 유력한 정치인들도 이들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처지가 딱하다. 바른 가치를 추구하지 않고 가뭇없는 세력의 눈치를 본다. 옛글에 이르기를 큰 정치는 봄바람과 같아서 능히 모든 걸 끌어안아야 한다고 했다. 끌어안는다는 말은 생명을 살린다는 뜻이다. 살벌한 얼음칼날은 생명을 살리지 못한다. 천산만야 꽃피는 봄인데 사람의 봄은 아직 멀기만 하다.


꾸지람을 내려야 할 사회적 어른도 찾아보기 힘들다. 정파를 초월하여 바른 소리를 해야 하는 게 종교의 몫이다. 종교가 정치와 결탁하고 신세지기 시작하면 바른 소리를 하지 못한다. 혼탁한 사바세계에 한 줄기 빛과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게 종교담론이다. 그게 바로 사람을 사랑하고 구제하는 실천적 가르침이다. 누구라 예외 없다. 아무래도 이게 아니다 싶으면 돌아 나와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


부처님도 시행착오를 겪으셨다. ‘깨달은 이’가 되기 위해 출가한 후 5년 여 동안 극한의 고행을 감내하시다가 이 수행법이 잘못 되었다는 걸 아셨다. 어린 시절 잠부나무 아래서 하던 명상법을 떠올리셨다. 그 방법으로 보리수나무 아래서 마침내 깨달음을 얻으셨다. 부처님처럼 살려면 부처님 시행착오의 참다운 뜻을 잘 헤아려야 한다.


<육조단경>에 이런 말이 있다. 지나간 잘못 뉘우치는 걸 참(懺)이라 하고 앞으로 잘못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걸 회(悔)라 한다. 참회란 온몸에 붉은 땀이 솟고 눈에서 피가 쏟아져야 한다. 수행자의 기백이 간절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과오를 되풀이한다. 어떻게 하면 이 되풀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가? 눈에서 피가 쏟아지는 절절한 참회는 힘들다. 아무래도 이게 아니네 하는 자기 의심과 자기 결단의 연습이 일상화 되어야 한다. 잘못을 빨리 인정하고 고치기. 이것이 점수(漸修)라는 불교수행을 일상에 적용하는 지혜다.

[불교신문3664호/2021년5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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