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용’ 정진의 길로 나아가다


일체의 의도적 노력 여의어
순경계 좇고 불순경계 멀리해
호오(好惡)가 일어나지 않아

등현스님
등현스님

 

제7지를 원만히 성취한 보살이 ①일체 법의 본래 일어남 없음(不起性) ②태어남 없음(不生性) ③일체 법의 모양 없음(無相性) ④생성되지 않음(不成性, asaṃbhūtatāṃ) ⑤일체 법의 무너지지 않음(不壞性) ⑥다함 없음(無盡性) ⑦일체 법의 움직임 없음(無轉性) ⑧물러남 없음(無退性) ⑨일체 법의 자성 없음(無自性性) ⑩시작과 중간과 끝이 평등함(平等性)을 앎으로써 분별을 초월한 지혜로 제8 부동지에 들어간다.


부동지는 싼스끄리트어로 아짤라 부미(acala bhūmi)이다. cala는 움직임 또는 동요, a는 부정 접두어이다. 그러므로 acala bhūmi는 움직임 없는 지위, 즉 부동지이다. 왜 부동인가 하면 파괴할 수 없기에 부동이고, 결코 물러남이 없는 불퇴전이기에 부동이다. 제6, 7지의 열반에 들려는 강한 유혹으로부터 불지를 서원하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기에 부동인 것이다.


이 보살은 모든 심의식과 분별 사량을 떠나, 집착 없는 허공의 성품에 들어가서 ‘일체 법이 본래 생겨난 것 없음을 확인함’이라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는다. 무생법인을 성취하면 일체의 형상과 생각과 일체의 집착을 떠나 헤아릴 수 없고, 또한 신통을 구족하여 차제로 멸진정에 들어 일체 마음과 생각의 움직임을 떠나게 된다.


이처럼 제8 부동지에 머무는 보살은 일체의 의도적인 신체적·언어적·정신적 노력을 떠나 기억과 상념을 여의고 무공용(無爲, anābhoga dharmatā)의 법을 얻어, 일체의 움직임을 떠나기를 마치 꿈속에서 커다란 거센 물결을 만난 사람과 같이 한다. 물에 빠진 사람이 물결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기 위한 크나큰 정진과 노력으로 강물을 벗어나려다 홀연히 잠을 깬 후에 그 모든 노력을 즉시 멈추는 것처럼, 보살은 중생의 몸이 네 가지 거센 강물의 흐름(慾漏, 有漏, 見漏, 無明漏)에 든 것을 알고, 그들을 건네주려는 의도로 먼저 일체종지의 지혜를 깨우치려는 크나큰 정진과 노력을 일으킨다. 그 정진과 노력으로 부동의 보살지에 이르게 되면 일체의 의도적 노력을 여의어 순경계(順境界)를 좇고 불순경계(不順境界)를 멀리하는 등의 호오(好惡)가 일어나지 않는다. 마치 범천의 세계에 머무는 보살에게 감각적 쾌락이라는 욕계의 번뇌가 전혀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이 부동지에 머무는 보살에게도 일체 심의식(心意識)의 움직임이나, 일체의 깨달음, 보살, 연각, 아라한, 세상의 일들마저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동지에 도달한 보살이 세상에 머무는 것은 과거의 서원력(本願力)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이들 보살이 무생법인(勝義之忍, paramārtha kṣānti)을 성취했을지라도 부처님의 열 가지 힘(十力)·네 가지 두려움 없음(四無所畏)·열여덟 가지 부처님의 고유한 성품(18불공, 佛法) 등의 뛰어난 성취를 갖출 때까지 정진하여야 하는데, 이는 부처님의 인도를 받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유위의 노력을 떠난 이 보살은 가행정진의 마음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보살은 ①갖가지 번뇌 때문에 고통받는 중생들을 보고 연민심을 내어야만 하며, ②본래의 세운 서원(本願力)을 기억하여 중생들을 위해 여래들의 한량없는 몸과 지혜, 한량없는 신통지의 성취를 일으켜야 하며, ③시방의 한량없는 국토와 중생, 한량없는 법의 차별을 보고, 그 모든 것을 여실하게 통달하려는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만약 불·세존들이 이 보살에게 이와 같은 일체지자의 지혜(sarvajñajñānā)를 일으키는 문을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이 보살은 제8지에서 구경의 열반에 들어 일체중생을 이롭게 하는 행위로 나아가지 않겠지만, 부처님들께서 이 보살에게 한량없는 지혜의 길을 보여주셨으므로 애씀 없는(無功用) 정진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는 보살행의 함이 없는 함(無爲以爲)이다.

[불교신문3664호/2021년5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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