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 키우기

한승원 지음/ 문학동네
한승원 지음/ 문학동네

한국문학 대표 소설가
한승원 작가의 자서전
‘구도적 생애’ 담아내

“이야기로 구원을 받고
이야기로 구원한 사람”

“오래전, 영산강을 탐사하려고, 전라남도 일대의 25,000분의 1 지도 조각들을 넓은 거실 바닥에 늘어놓고 붙이니 그 강의 전체적인 조망이 가능해졌다. 나목이 된 노거수(老巨樹)를, 목포에서 담양 쪽으로 가로눕혀놓은 듯싶은 영산강을 일 년여에 걸쳐, 담양 북편의 시원에서부터 목포 앞바다까지 흘러가면서, 강의 잔가지들에 주렁주렁 열린 신화, 전설, 정치, 경제, 문화의 풍경들을 읽어냈듯이, 나는 나의 강을 그렇게 탐사하기로 했다.” (한승원 작가의 자서전 <산돌 키우기> 중에서)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우리 시대의 거목으로 자리매김한 소설가 한승원.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김동리문학상(현 동리문학상) 등 굵직한 문학상을 통해 한국문학에 족적을 남긴 거장으로 꼽히는 한승원 작가가 최근 자서전 <산돌 키우기>를 펴냈다. 올해로 등단 55주년, 반세기가 넘도록 소설을 써온 그는 수년째 불교신문 신춘문예 소설부문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며 불교문학 발전에도 남다른 기여를 하고 있다. 특히 이번에 펴낸 자서전에는 그 동안 왕성한 필력으로 시, 소설, 동화, 인문서, 에세이를 망라하는 수십 종의 책을 써낸 전방위적 작가의 시작과 끝을 만나볼 수 있어 주목된다. 한 작가의 딸이자 2016년 소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은 “아버지 자신의 삶이 여기 있다. 그가 직접 추려내고 힘을 다해 윤을 낸 유리 기둥들이 있다. 오직 글쓰기라는 외통수의 열의-해법-구원으로 삶의 모든 순간들이 수렴되었던 한 생애가 있다”고 아버지의 자서전을 추천했다.

불교신문 신춘문예 소설부문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문학계의 거장 한승원 작가의 자서전 ‘산돌 키우기’가 최근 출간됐다.
불교신문 신춘문예 소설부문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문학계의 거장 한승원 작가의 자서전 ‘산돌 키우기’가 최근 출간됐다.

이 책은 한승원 작가의 태몽으로 시작한다. ‘하늘복숭아같이 탐스러운 유자를 주워 치마폭에’ 담는 어머니의 꿈이다. 어머니는 그에게 여느 유자보다 크고 탐스러웠다는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말해주고, 작가는 이를 여느 사람과는 다른 특출한 삶을 살게 될 것이란 예언처럼 받아들인다. 어머니의 자식 사랑이 묻어나는 곰살궂은 태몽을 작가는 허투루 흘려듣지 않고, 그것을 마치 신탁이자 의지로 삼아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간다. 엄혹한 일제 식민지 시절을 유년기로 보낸 그는 자신의 눈으로 목격한 삶의 긴박감, 생과 사의 무자비함, 폭력과 야만의 풍경을 고스란히 옮겨놓는다. 해방이 되고도 한반도의 남쪽 끝까지, 아이에게까지 대물림되고 침투한 이념의 대립을 몸소 겪어내며 시대의 아픔을 몸과 종이에 새긴다.

이후 그는 학창시절 문예반에 가입해 할아버지의 옛날이야기로만 길든 세계를 벗어나 한국 현대문학으로, 세계문학으로 성큼 도약한다. 감수성과 경험이 풍부할 수밖에 없었던 예외적인 내력, 자신의 눈에 담긴 풍경을 언어로 표출하고자 했던 시심, 자신을 구원했던 이야기의 힘을 타인과 나누고자 했던 마음은 이윽고 그에게 문학이라는 병으로 발현한다. 결국 그는 아버지를 설득해 서라벌예대(현 중앙대) 문예창작과에 입학, 장차 시인 소설가가 되는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다.

대학 졸업 후 교직을 부업으로 삼으며 신인 작가로 살던 시절, 한 작가에게 또 한 번의 변곡점이 될 시련이 찾아온다. 갓난아이를 여의는 일을 겪은 뒤 새로운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심에 이르게 됐다. 이후 상경해 전업 작가로 살며 주옥같은 명작들을 쏟아낸다. 광주민주화운동을 통과하며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은 한층 치열해진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동학제>, <원효> 등을 써내며 소설가로 승승장구하고, 시집 <열애일기>, <꽃에 씌어 산> 등 펴내며 명실상부 ‘시인-소설가’로 자리매김한다.

더불어 남은 생을 오롯이 문학에 헌신하기 위해 한 작가는 고향인 장흥으로 되돌아가 ‘해산토굴’에 자신을 가둬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쓴다. 그는 책 서문에서 “아들의 등에 업혀 가는 어머니가 자기를 버리고 귀가할 아들이 길을 잃을까봐 돌아갈 길 굽이굽이에 솔잎을 따서 뿌리듯 이 글을 쓴다”고 밝혔다. 이어 “아마도 나의 마지막 진술이 될지도 모르는 이 책은 내가 이야기를 통해 삶의 빛을 얻고, 순전히 이야기의 힘으로 살아왔음을 증명해주는 것일 터이다”라고 소회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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