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과 박헌영과 나-무너진 하늘

유병윤·김용석 지음, 유병윤 그림/ 역사비평사
유병윤·김용석 지음, 유병윤 그림/ 역사비평사

“나는 이 자리에 오기 훨씬 전부터 살아서 나갈 수 없는 신세임을 느끼고 있었다. 이 재판은 말 그대로 요식일 뿐, 어떠한 최후 진술도 너희들의 각본을 뒤집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1955년 12월15일 재판, 박헌영 최후진술 중에서)

최근 출간한 역사만화 <혁명과 박헌영과 나-무너진 하늘>은 조계종 원로회의 부의장 원경 성진대종사가 평생 수집한 독립운동자료를 토대로 아버지 박헌영 선생께 보내는 진혼곡이라 할만하다. 평생을 묵묵히 수행자의 길을 걸어 온 원경스님은 남과 북,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던 비운의 혁명가, 이정 박헌영 선생의 아들로 잘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전후 근·현대사가 순탄치 않았던 것처럼 원경스님의 삶 역시 순탄치 않았다. 반공을 국시로 삼고, ‘공산주의’라는 말이 금기였던 시절이었다. 원경스님은 입을 닫고, 귀를 막고, 눈을 감은 채 살아야만 했다. 가슴 아픈 가족사는 수행의 원동력이 됐다.

박헌영의 독립운동 자료를 발간하기 위해 역사학도들이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 미국문서기록보존소, 러시아문서기록보존소에서 11년간 자료를 찾아 모은 노력의 결실로 2004년 권당 600~700쪽에 달하는 전집 9권이 출간됐다. 이를 통해 일제 강점기에 피 끓는 젊음을 불살랐던 박헌영의 삶에 일반 대중이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리고 남녀노소가 쉽게 근현대사를 이해할 수 있게 하려고 만든 만화 <꽃다발도 무덤도 없는 비운의 독립운동가-만화 박헌영>을 10여 년에 걸친 수정과 보완 과정을 통해 전6권에 담아 2014년 개정판으로 출간했다. 이후 4년의 고된 작업 끝에 해방 후 3년간 박헌영의 활동과 그 역사적 배경을 다룬 이번 책을 펴냄으로써 길었던 대장정을 회향했다.

원경대종사는 “산 자의 그리움이 족쇄가 돼 시작한 일은 전집 작업 11년, 만화 작업 14년, 도합 25년의 사반세기 세월을 보내고서야 온전한 박헌영의 기록으로 남게 됐다”면서 “책을 읽지 않는 세태에 근현대사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역사기록으로 이 만화책이 쓰임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당부했다.

이 책을 그린 유병윤 만화가도 “만화를 그리면서 역사에 누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픽션을 최대한 자제하고 사료와 여러 인물들의 진술에 입각한 사실적인 이야기를 그리려 노력했으며, 극적인 구성들은 합리적인 수준에서만 그리려 최선을 다했다”면서 “이 책이 근현대사를 그리는 역사만화의 시작이 되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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