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견할 때마다 생동감…긍정에너지가 넘친다

인도 초기불교 제석천과 범천
조선시대에 재현된 유일한 상

특히 가로로 긴 동그란 얼굴에
눈매와 입을 야무지게 표현해
보는 이들에게 즐거움도 선사

조선후기 조성된 다른 불상과
확연히 구별되는 독창적 모습
아이와 같은 신체비례도 눈길

 명당에 있다. 천년의 세월, 고고한 청학의 자태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사찰이다. 여기 청곡사에 우리나라 불교조각사에서 아주 귀한 사례인 조선 후기에 조성된 제석천·대범천상이 봉안되어 있다. 이 신상들을 조각한 작가는 인영(印迎)스님으로 1657년 청곡사 업경전(業鏡殿)의 여러 존상들을 조성하면서 제석상과 범천상도 함께 조각한 것이다. 이러한 추정은 이 스님의 작품 세계가 매우 독창적이고, 조각 기술이 뛰어나서 다른 불상들과 확연히 구분되기 때문에 가능하다.

 

곡사 성보박물관에 봉안되어 있는 보물 제1232호 ‘진주 청곡사 목조제석천·대범천의상(晋州 靑谷寺 木造帝釋天·大梵天倚像)’. 관복에 보관을 쓰고 의자에 앉아 있으며 손에는 연꽃을 들고 있다. 사진은 제석천상.
곡사 성보박물관에 봉안되어 있는 보물 제1232호 ‘진주 청곡사 목조제석천·대범천의상(晋州 靑谷寺 木造帝釋天·大梵天倚像)’. 관복에 보관을 쓰고 의자에 앉아 있으며 손에는 연꽃을 들고 있다. 사진은 제석천상.

 

조선후기 유일 제석천·대범천상


인영스님이 남긴 불상은 청곡사에만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청곡사 제석·대범천상’은 조선 후기에 이 존상들을 만든 유일한 사례로 그 휘귀성이 더욱 크다. 이 상들은 여러 면에서 주목되어 1995년에 보물로 일찍이 지정됐다. 현재 ‘청곡사 목조제석천·대범천상’은 대웅전에서 성보박물관으로 옮겨 모시고 있다.


청곡사 만큼 학과 인연이 깊은 곳이 있을까. 청곡사는 879년(신라 헌강왕 5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 도선국사는 남강 변에서 학이 이곳으로 날아와 앉는 것을 보고 천하명당이라 여겨, 여기에 절터를 잡았다고 한다. 학이 찾아와 먹이를 먹는 계곡에 징검다리가 있어 이곳에서 학을 날려 보냈다 하는 방학교(訪鶴橋)가 있다. 학이 목욕을 했다는 학영지(鶴影池)도 있다. 종루 옆에는 환학루(喚鶴樓)가 있는데 학을 부른다는 뜻이다. 이처럼 청곡사는 학과 인연이 깊다.


청곡사는 월아산(月牙山)에 있는데, 달빛이 아름다운 산이라는 뜻이다. 높이가 482m밖에 되지 않아 한나절 산행으로 알맞은 곳이다. 청곡사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계비(繼妃)인 신덕왕후(神德王后)의 원찰(願刹)이다. 청곡사 아랫마을이 신덕왕후의 고향이다. 인근 우물가에서 신덕왕후가 버들잎 가지를 띄운 물을 이성계에게 건넸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청동 청곡사 은입사 향완’은 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1397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대범천상.
대범천상.

 

관복 입은 제석천·대범천상


‘청곡사 제석천·대범천상’은 양 끝으로 용이 장식된 의자에 앉아 있다. 머리에는 화려한 장식이 있는 보관(寶冠)을 쓰고 있다. 범천상은 오른손을 들어 설법인의 수인을 짓고 있고, 왼손은 무릎 위에 놓아 중지와 검지를 구부려 엄지와 맞대고 있다. 제석천은 범천과 대칭적인 손 모양을 하고 있으며, 연꽃가지를 들고 있다. 얼굴은 보살상 같은 자비로운 인상이다. 보관에는 봉황·화염무늬 장식이 달려 있으며, 보관 윗부분에는 구슬형의 장식이 달려 있다.


제석천과 범천의 얼굴은 가로로 긴 방형에 가깝고, 당당하고 명랑한 인상을 준다. 이 상들은 명부전의 시왕상들처럼 문관복을 입었다. 목깃을 접고 허리에는 띠를 둘렀다. 허리띠 자락이 양다리 사이로 흘러내려 발까지 이르고 있다. 정강이 부분에는 불꽃모양으로 아래로 향하게 장식했다.


범천상에는 양 어깨에서 내려온 옷자락이 손목을 거쳐 무릎 옆으로 흐르는 듯하다. 반면에 제석천은 무릎 부분에서 엇갈리고 발목 부분에서 다시 한 번 교차되면서, 허리에서 늘어진 띠로 휘감겨져 있다. 얼굴과 피부는 호분으로 칠해 하얗다. 옷과 의자는 붉은색과 초록색으로 채색되어 선명하고 밝은 색채감으로 경쾌한 인상을 준다. 이처럼 ‘청곡사 제석천·대범천상’은 관복에 보관을 쓰고 의자에 앉아 있으며 손에는 연꽃을 들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명부전이나 시왕전에 있는 시왕상의 모습과 아주 흡사하다.


그러면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다른 제석천·대범천상은 어떤 모습일까.

 

또 다른 제석천·대범천상 모습…


대범천은 고대 인도 브라만교에서 ‘세계창조의 신’인 동시에 수행자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에 비해 제석천은 무사적 성격을 지닌 ‘신들의 왕’이었다. 불교에 수용되어 불법(佛法)을 지키는 신상이 되었다. 사천왕상 등과 더불어 불교미술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제석천과 범천은 간다라나 인도 초기 불교미술에서는 석가여래의 탄생, 범천이 석가여래에게 설법을 청하는 이야기, 제석굴에서 설법하는 이야기, 석가여래의 열반 등 석가여래의 일생의 주요 장면을 조각한 불전도에서 등장한다.


한국에서 범천과 제석천상이 함께 등장하는 것은 751년경 조성된 토함산 석굴암이다. 본존인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향좌측에는 범천상이, 향우측에는 제석천상이 배치되었다. 석굴암에 등장한 모습은 우아한 보살형이다. 범천상과 제석천상은 공통적으로 오른손에는 불자(拂子)를 들고 있다. 범천상은 왼손에 인도 수행자의 지물인 정병(淨甁)을 들으며, 제석천은 끝이 다섯 갈래로 된 금강저(金剛杵)를 들고 있다. 이 지물들은 <다라니집경>에 근거한 것이다. 제석천이 들고 있는 금강저는 벼락을 형상화한 것이다. 옛 인도 신화에서부터 제석천이 지녔던 강력한 무기를 상징하고 있다.


통일신라 후기와 고려 초기 불교조각에서 범천과 제석천상은 석탑과 승탑, 사리기에 부조상으로 조각됐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단독상으로 제석천상을 모신 예가 나타났다. 1645년 상원사 목조 제석천상이다.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1612~1645)의 명복을 빌기 위해 조성된 것이다. 관복을 입고 보관을 쓰고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청곡사 제석천·대범천상’과 비슷하다. 또한 1656년(효종 7)에 완주 송광사 나한전에는 범천과 제석천상을 함께 모시지 않고, 제석천상만 2위를 봉안했다고 한다. 이처럼 조선시대에는 상원사처럼 제석천상만 단독으로 모셔지기도 하고, 완주 송광사 나한전처럼 2위의 제석천상만 봉안되기도 했다.

 

보물 제1689호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가운데 도명존자상. 진주 청곡사 업경전에 있다.
보물 제1689호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가운데 도명존자상. 진주 청곡사 업경전에 있다.

 

개성파 인영스님의 유일 조각


‘청곡사 제석천·대범천상’은 얼굴과 신체의 표현 등에서 조선 후기에 조성된 다른 불상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독창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특히 가로로 긴 동그란 얼굴에 눈매와 입을 야무지게 표현하여 보는 이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어린아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며, 신체비례도 아이와 같이 귀엽게 표현했다. 나무라는 재질의 특성을 잘 이용하여 만든 활달한 선들은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깔끔하고 섬세하게 마무리했다.


이 상들을 조각한 작가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청곡사 제석천·대범천상’은 현재 업경전에 있는 지장보살과 시왕상들의 모습과 워낙 흡사하여 같은 작가의 작품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업경(業鏡)’은 살아생전에 지은 죄를 비쳐주는 거울을 뜻한다. ‘업경전’은 명부의 세계를 관장하는 지장보살과 권속을 봉안하는 전각이다. 일반적으로 지장전과 명부전으로 편액하는 것에 비해 특이한 사례이다.


다행히도 업경전의 지장시왕상 등에서 복장물이 발견되어 1657년 인영스님을 수화승으로 하여 여러 화원에 의해 조성된 사실이 밝혀졌다. 인영스님이 조성한 다른 작품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의 작가적 개성을 보여주는 유일한 작품인 것이다.


그러나 제석천·대범천상은 명부전에 모시는 존상이 아니다. 아마 제석천·대범천상은 석가여래를 모시는 전각인 대웅전과 나한전 등에 봉안했을 것이나 현재 모셔져 있는 불상들과 달라 여러 궁금증을 자아낸다.


도선국사가 택한 명당, 청곡사에 모셔져 있는 ‘청곡사 제석천·대범천상’을 친견하시길 권한다. 인도의 초기 불교미술에서 한 쌍으로 조성되던 제석천과 범천상이 조선시대에 재현된 유일한 상이다. 뵐 때마다 생동감 넘치는 긍정에너지를 받을 수 있고, 미소를 머금게 하는 상이다. 여러분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불교신문3660호/2021년4월6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